공적연금 개혁 유럽을 봐라!

15년 전부터 손보기 시작, 납부와 수급 조정…사적연금시장 활성화 노력도

  • 이새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serom.lee@woorifg.com

    입력2013-09-30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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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적연금 개혁 유럽을 봐라!

    8월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

    100세 시대 도래와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부동산시장 위축, 경기 둔화 등으로 생활이 빠듯한 상황에서 개인의 노후준비는 ‘해야 하긴 해도 현재 여력이 없는’ 일이 돼버렸다. 그나마 가장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국민연금이라고들 하지만, 벌써부터 국민연금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로 국민연금은 2044년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수지적자를 기록한 후 2060년 재정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그래프 참조). 일부에서는 재정이 고갈되면 연금액이 크게 줄거나 지급 불능사태가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최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등은 국민연금의 재정고갈 문제를 해소하려면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개시 연령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령화로 국민연금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1998년 이후 유지되는 9%의 보험료율을 14%로 인상하고, 수급 개시 연령 또한 기대수명 증가에 비례해 약 67세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기한 것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현재의 47.5%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8년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수급 개시 연령 또한 현재 61세에서 2033년 65세로 높아질 예정인 만큼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가계부채, 자녀양육비 등에 시달리는 30~40대 납부자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과연 국민연금 재정고갈 문제를 해소하면서 그와 동시에 납부자의 부담을 늘리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실 공적연금의 재정부담은 우리나라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우수한 복지제도를 자랑하는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공적연금의 재정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일부 유럽국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했고,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로 공적연금 개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독일의 경우 2007년 17.7%였던 보험료율을 2012년까지 19.9%로 인상(2013년의 경우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0.7%p 인하)했으며, 현재 65세인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29년까지 67세로 조정된다. 영국은 현재 남성 65세, 여성 60세인 수급 개시 연령이 2020년까지 여성 65세, 2046년까지 남녀 모두 68세로 조정된다.

    프랑스는 완전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가입기간을 2020년까지 41.5년으로 유지하되, 이후 2035년까지 43년으로 연장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당초 2010년 발표한 개혁안에서는 수급 개시 연령을 기존 61세에서 62세로 조정하는 방안을 포함했지만 8월 프랑스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이는 근로자들의 강한 반대를 비롯해 완전노령연금 가입 기간이 늘어난 만큼 생애근로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프랑스의 출산율이 약 2명으로 지속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럽국가들이 진행하는 공적연금 개혁은 납부와 수급에 대한 제도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공적연금의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를 통해 그 기능을 대체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는 것이다. 스웨덴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국가가 지급보장을 하는 공적연금제도를 유지하는 대신 개인의 보험료 납부 실적에 비례해 연금을 수급하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개인의 기여에 따라 연금 수급 방식과 액수가 달라지는 것은 사적연금에서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스웨덴 정부는 공적연금에 사적연금 기능 일부를 추가해 국가의 재정부담을 줄인 것이다. 그 대신 저소득층을 위한 새로운 ‘최저보증연금(Guarantee Pension)’을 통해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했다.

    공적연금 개혁 유럽을 봐라!
    적절한 합의점 도출 필요

    영국과 독일은 새로운 사적연금제도 도입을 통해 공적연금의 기능을 대체하는 데 주력한다. 영국은 ‘네스트(NEST·National Employment Savings Trust)’라는 세제혜택이 있는 퇴직연금제도를 신설했으며, 2012년부터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했다. 독일에서는 근로자가 사적연금제도 중 하나인 ‘리스터연금(Riester Pension)’에 가입하면 국가가 납부금에 대해 일정 부분 보조금을 지급한다. 리스터연금 덕에 전체 연금시장에서 약 80%였던 공적연금 비중이 50%대로 하락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에 국한된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사적연금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듯, 우리나라도 공적연금의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사적연금시장을 키워 개인 스스로 노후준비를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보험료율 인상, 수급 개시 연령 조정 같은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개혁에 앞서 국민연금이 가진 여러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지급보장이다. 지급보장이란 적립금 고갈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서라도 연금액을 책임지고 지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정부가 지급보장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급보장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개시 연령 조정을 동시에 한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신뢰 하락은 불가피하다.

    또한 최근 국민연금 체납, 과·오납, 과다지급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큰 만큼, 해당 문제에 대해 명확하고 투명한 해결 방안을 신속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은 국민의 행복한 노후를 위한 자금인 만큼 그 제도 개혁은 시간이 오래 소요되더라도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현재 같은 공적연금제도를 위해 약 15년에 걸친 논의 과정을 거쳤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개시 연령 조정 과정에서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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