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4

2013.09.09

아태전쟁 상흔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워킹투어 프로그램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 평화연구회 연구위원 riversideshin@hanmail.net

    입력2013-09-09 10:3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태전쟁 상흔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광주 가네보 공장을 찾은 참가자들. 1925년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 가네보 공장은 전남방적과 일신방적으로 분할됐다.

    8월 29일은 국치일 103주년이었고, 9월 1일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90주년이었다. 이 시기와 맞물리기라도 하듯 언론에서는 관동대지진과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을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최근 알려진 위안소 관리인의 친필 일기 같은 기록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럼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인식은 ‘몰(沒)역사’ 그 자체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의 역사인식도 수준 이하라는 점이다. 일부 한국 청소년은 ‘야스쿠니 신사’를 신사복 상표로 안다. 이는 침탈당하고 어려웠던 역사를 되돌아보기 두려워한 결과다. 역사는 거울인데, 그대로 두면 탁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거울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답은 쉽다. 해답을 찾아보자.

    식민지 조선 민중이 경험한 최초의 근대전(近代戰)은 아시아태평양전쟁(1931~45)이다. 일본이 저지른 이 전쟁은 조선 민중에게 ‘공출’이라는 짐을 지웠다. 당시 공출 대상에는 물자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됐다. 사람과 물건이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전쟁은 군인들 힘만으론 치를 수 없었다. 전쟁을 하려면 물자가 있어야 하고, 물자를 생산하고 수송할 사람이 있어야 하며,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고, 열차와 선박 등 수송 수단을 갖춰야 했다. 병사 1명당 필요한 민간인은 13~18명이었다. 한편 군비를 마련하려고 임금을 통제하고, 강제로 저금하게 하며, 채권을 강매했다. 즉 물자와 인력, 비용은 전쟁의 필수요소였다.

    공출은 일본 본토와 남사할린은 물론, 조선과 타이완 등 일본 제국이 점령한 식민지 지역민들이 짊어져야 했다. 특히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희귀 광물이 다량 매장된 한반도는 화수분 같은 곳이었다. 조선 민중은 가뭄과 홍수로 곡물 생산량이 줄었음에도 부담해야 할 공출양은 오히려 늘었다. 장정 약 200만 명이 국내외로 나가 참호를 파고 격납고와 고사포 진지를 만들었으며, 비행장을 닦고 곡물, 철광석, 목재, 약품 등 물자를 생산 및 수송했다.

    이러한 전쟁 상흔이 남은 현장은 남북한 전체에서 7000곳이 넘는다. 한반도 전역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현장이 아니었던 곳이 없을 정도다. 두만강 수력발전소는 물론, 해남 땅끝까지 광산과 군사시설,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한 전체 7000곳에 상처

    아태전쟁 상흔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아사다화학공업이 1930년 설립한 전남 해남 옥매산 광산에 강제동원됐다가 집단 사망한 이들을 기억해달라”는 유족 박철희 씨(맨 오른쪽).

    이런 곳을 찾아 평화를 나누는 이들이 있다. 2011년 8월 6일 한일문제 관련 학자 50여 명이 일제강제동원 연구센터이자 학자와 시민 간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창립한 일제강제동원 · 평화연구회(cafe.naver.com/gangje·연구회)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회는 창립 후 2년간 연구서 8권을 발간하고 세미나반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일본 홋카이도 유해발굴에 참여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최근에는 지역민 대상의 워킹투어(walking tour·도보여행) ‘일제강제동원 현장을 가다’를 진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1년 12월 경북 대구지역을 시작으로 올 상반기(5~7월)에는 전남지역에서 광주, 해남, 여수 도보여행을 각 한 차례씩 실시했다. 이런 방식의 도보여행은 오래전 일본에 정착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연구회원들은 도보여행을 진행하면서 연구자들만의 ‘행사’가 아닌, 지역 프로그램으로 확산 및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도보여행의 첫발은 연구회가 떼도, 그 이후는 시민이 만들어가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의미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바람은 올 상반기 연구회가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과 공동으로 전남지역 도보여행 ‘시민과 함께 하는 일제강제동원 광주전남 현장답사’를 통해 이뤄졌다. 기획은 연구회가 하고, 운영은 시민모임이 맡은 이 도보여행은 광주 시내(5월 11일), 해남 옥매산 광산(6월 15일), 여수 일대(7월 27일) 등 세 지역에서 진행했다. 시민모임은 1944년 미쓰비시(三菱)중공업으로 동원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배상문제 지원을 목적으로 2009년 만든 시민단체로, 역사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도보여행은 서울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연구회 회원뿐 아니라, 광주시의 지원을 받아 일반 시민이 참가하면서 전국 단위 행사가 됐다.

    5월 11일 열린 첫 번째 도보여행은 필자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을 주제로 한 특강으로 시작해 광주신사, 가네보 방적공장(현재 전남방적과 일신방적), 학파농장, 광주비행장 등 광주시내 현장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 가운데 광주신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징용 가는 청년들의 출발 장소이자 학생들을 동원한 근로보국대 강제동원 작업 현장이었다. 해방 후에는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공원 조성 공사에 참여하며 생계를 잇던 공사판이었으며, 최근에는 시민모임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해결을 위해 매주 일요일 서명을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유족 마음 달래는 참가자들

    아태전쟁 상흔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전남 해남 옥매산 광산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명반석을 적재했던 14m 높이의 콘크리트 건축물을 바라보는 참가자들.

    이러한 공간에서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봉사를 하던 소녀와 ‘더럽혀진 여자’라는 오해로 남편의 폭력과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을 먹여살린 새댁을 떠올렸다. 이 여행에는 “드라마 ‘각시탈’을 보고 엄마에게 가자고 졸라서 왔다”고 당차게 말하는 일곱 살짜리 개구쟁이도 함께 했다.

    해남의 옥매산 광산 여행에는 많은 여고생이 참가했다. 이들의 존재는 ‘옥매산 광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제주 군사시설지로 다시 동원돼 귀환 도중 선박 사고로 집단 사망한 사건’을 기억해주길 바라던 유족들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토요일 오전 9시 광주를 출발한 참가자들은 해남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옥매산 광산에 올랐다. 일행을 숙연케 한 것은 광산 대장간이나 다이너마이트 저장 창고가 아닌, 유족 박철희 씨의 소망이었다. “보상금도 필요 없으니 이 선창에 추도비와 역사관을 세워 우리 할아버지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게 해달라”는 그의 절절한 소망을 누가 들어줄까.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사다화학공업은 지금도 일본에 있고, 그들이 남기고 간 광산 부지는 조선대 차지가 됐지만, 유족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진행한 여수 여행은 이순신 장군부터 여수엑스포(국제박람회)까지 여수의 지역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한 기회였다. 광주형무소 수형자들을 동원해 만든 물자 수송 터널은 현재 자동차학원의 명물인 넘너리 터널이 돼 있었다. 주철희 박사의 입담을 통해 콘크리트 덩어리로 남은 수상비행장, 인근 돌산에서 석재를 조달해 지은 오동도 방파제, 마래터널 등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한걸음 더 다가왔다.

    일제 침탈과 전쟁 참상 나눠

    아태전쟁 상흔 새기고 반전평화를 이야기하다

    워킹투어를 하기 전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는 필자.

    도보여행 참가자들은 역사현장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개근상 커플, 공장 쉬는 날이라고 찾아온 청년들, 광주에 5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역사 현장이 있는지 몰랐다는 광주시 인권담당관 등이 침탈당한 역사를 되새기는 데 함께 했다.

    연구회는 국내외에 산재한 아시아태평양전쟁 현장을 통해 얻은 역사 및 평화 인식을 시민 스스로 확산하고 지역 문화콘텐츠로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취지로 도보여행을 기획했다. 이러한 의도는 운영 과정에서 효과를 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마을에 있는 전쟁 유적지를 찾아 일제 침탈과 전쟁의 참상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반전평화실천가가 된다.

    어디 그뿐이랴. 현장에서 전문가 특강을 열거나 토론을 하고, 관련 영화나 공연까지 추가로 진행한다면 문화 프로그램으로도 손색없다. 아울러 답사를 통해 얻은 현장 사진, 팸플릿 등을 토대로 차근차근 관련 자료를 채워나가면, 훌륭한 문화콘텐츠와 교육 자료가 완성된다. 땅 짚고 헤엄치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여정을 위해 연구회는 지역사회 스스로 도보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문화콘텐츠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면서 길라잡이를 자처할 것이다. 올 하반기에는 전남지역 도보여행 가이드북을 공동 발간하고, 문화콘텐츠에 필요한 콘텐츠 채우기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인천과 서울, 부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행사를 접목한 워킹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해 지역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놀이마당을 펼칠 구상도 갖고 있다.

    주말 늘어지게 늦잠을 잔 후 간편복과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워킹투어. 지역 역사를 이해하고, 식민지 역사와 전쟁의 상흔을 되돌아보며, 반전평화를 실천하는 길이다. 어렵지 않고, 생각보다 재미도 쏠쏠하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 동네에는 이런 곳 없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