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4

2013.09.09

치명적 부작용 “나 어떡해”

불법 성형 피해자들 쉬쉬 여전 실태 파악 어려워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9-09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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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성형에 따른 부작용 사례가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소비자원에는 보톡스 피해가 접수된 적이 없고, 필러 피해 접수 건수는 2010년 2건, 2011년 0건, 2012년 3건, 2013년 2건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수많은 불법 성형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이 유통한 가짜 보톡스, 필러 양만 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관세청 인천공항본부세관이 8월 초 검거한 구모 씨 일당만 해도 지난해에 중국산 보톡스 2만5000여 점과 필러 400여 개를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불법 시술이 늘면서 이물질 제거 클리닉을 운영하는 성형외과는 물론, 이물질 부작용을 치료하는 한의원도 성행한다. 병원 관계자들은 피해자 상당수가 피부관리실, 미용실 등에서 시술받았다고 전한다.

    서울 중구에 사는 김모(56) 씨의 첫인상은 평범하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은 성형중독자의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얼굴을 찬찬히 보면 이물질이 들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눈 밑 지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이물질이 한 줄로 드리워져 있는 데다, 이마가 매끄럽지 않고 중간 부분이 유난히 불룩하다. 코와 볼 사이를 손으로 누르자 살이 복원되지 않고 쑥 들어간 채로 있었다.

    병원보다 비싼 비용에 오히려 신뢰 가

    “눈 밑 이물질이 너무 튀어나와서 성형외과에서 이물질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도 흔적이 남았다. 담당의사가 내 눈 밑에 있는 것은 공업용 실리콘이고, 이물질이 피부조직과 연결돼 있어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사가 이마에 들어 있는 건 파라핀이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내려와 코와 볼 사이에 있는 살을 채운다. 이건 제거할 엄두도 못 낸다. 없어지지도 않고, 그것을 없애려다 얼굴에 더 큰 상처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이 변한 건 그래도 참을 수 있다”고 했다.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서다. 문제는 유방이다. 양쪽 가슴에 공업용 실리콘을 주입한 그는 통증이 극심해 그 부분을 절개했다. 실리콘을 주입하려고 주사바늘을 찌른 부위도 같은 이유로 도려냈다. 수술 후 6개월 동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고, 우울증이 심해 가족이 교대로 그를 지켜야 했다. 다행히 병원 치료는 1년 전 마친 상태다. 이따금 통증이 느껴진다는 그는 와이어 있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못하고, 흉터 탓에 목욕탕에도 가지 못한다. 그동안 운영했던 도매 가게를 정리하느라 막대한 손해를 입은 데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사람도 잘 만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2009년 이혼한 그는 당시 극심한 상실감에 빠졌다. 탈모가 진행됐고 눈 밑 지방도 처졌다. 평소 작은 가슴도 콤플렉스였다. 김씨는 성형외과를 찾아가 견적서를 받았는데, 마침 그즈음 지인 A씨의 소개로 강남에 있는 한 미용실에서 탈모 방지 마사지를 받았다. 몇 차례 미용실을 찾아가 미용실 원장 B씨와 안면을 텄고 자연스레 성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B씨는 대뜸 “요즘 누가 성형외과에서 성형을 하느냐”면서 “성형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할 정도로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수술이 아닌 시술을 하기 때문에 시술 후 바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그를 설득했다. 김씨의 불행은 바로 시술을 해줄 그 사람이 이번에 인천공항본부세관이 구속한 구씨였다는 데서 시작했다. 김씨는 미덥지 않았지만 미용실에 다니다 구씨와 만나 친해졌다. 그리고 A씨가 시술을 받자 김씨는 2009년 5월 7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피부관리실에서 구씨에게 시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견적이 750만 원 나왔는데 구씨는 1000만 원이라고 했다. 쌌다면 의심했을 텐데 실력이 좋으니까 비싼 거라고 여겼다. 시술받은 다음 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렸다. 자식들하고 사는데 성형수술을 했다고 며칠 누워 있는 것도 꼴사납지 않나. 시술할 때 아파서 얼굴 필러는 3~4차례 나눠서 맞았다. 가슴 수술은 가슴 밑을 1cm 째서 약을 넣었다.”

    후유증은 곧바로 찾아왔다. 시술하고 한 달이 지나자 가슴에서 고름이 흘러나와 거즈를 대고 다녔다. 김씨가 구씨를 매일같이 찾아가 하소연하자 구씨는 그를 회유했다. 김씨는 구씨를 더는 믿을 수 없었고, 사건 발생 1년 반이 지난 2010년 12월 경찰에 구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구씨가 시술 사실을 부인하고, 지인 A씨와 미용실 원장 B씨, 구씨의 만행을 알리겠다는 C씨마저 종적을 감춰 증인을 찾지 못하자 수사는 진척되지 못했다. 김씨의 문제제기로 관할 보건소가 구씨의 피부관리실에서 불법 시술에 따른 정황을 파악, 경찰 수사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형외과 아닌 곳에서 불법 시술 성행

    치명적 부작용 “나 어떡해”

    인천공항본부세관이 8월 검거한 구모 씨로부터 불법 시술을 받은 신모 씨. 부작용으로 재건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원상복구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인천공항본부세관이 올해 8월 초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인천공항본부세관이 8월 검거한 구모 씨로부터 불법 시술을 받은 신모 씨. 부작용으로 재건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원상복구가 되지 않았다. 보톡스, 필러, 국소마취제를 밀수입한 구씨를 구속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씨는 “경찰이 방치한 사건을 인천공항본부세관이 발 벗고 나서줘 고맙다”며 울먹였다. 인천공항본부세관 조사 결과, 김씨의 가슴에는 구씨 일당이 자체 제작한 재봉틀 윤활유 성분이 든 공업용 실리콘, 얼굴에는 폴리아크릴아미드라는 중국산 가짜 필러가 투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인천공항본부세관은 김씨와 신씨 단 2명의 피해자 진술만 확보했다. 신씨는 동네 이웃의 소개로 6명과 함께 얼굴에 필러를 맞아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이마 부분은 뇌신경과 연결돼 있어 제거 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상태다. 인천공항본부세관이 접촉한 그 외 피해자들은 시술받은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불법 성형시술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감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2월 부산 서부경찰서에서 미용실과 피부관리실을 돌며 공업용 실리콘으로 불법 성형시술을 해온 여성 2명을 붙잡았을 때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소극적이었다. 사건 담당 경찰은 “60~70대인 피해자들은 시술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경찰이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병원을 알려줬는데도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조차 꺼렸다”고 했다. 1월 청주 상당경찰서가 불법 성형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김모 씨를 구속했을 때도 피해자들의 태도는 비슷했다.

    물론 불법 성형시술을 받은 피해자만 부작용을 쉬쉬하는 건 아니다. 성형외과에서 보톡스, 필러를 맞은 뒤 부작용을 호소하는 극소수의 피해자조차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안티성형카페(성형부작용피해자모임) 등에서 피해 사실을 공유할 뿐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기자가 부작용 사례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쪽지 등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그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불법 시술에 따른 이상 반응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시술 후 부작용이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는 10%도 채 안 되고, 대부분 5년 이후 발생한다. 김세진 성형외과 전문의는 “이물질을 제거하면 오일, 젤, 공업용 실리콘, 로션 등 다양한 성분이 나오지만 시술할 당시 어떤 물질을 주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 “이 물질이 피부조직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마저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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