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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폭탄 제조·총기 준비·주요 시설 타격 등 구속된 이석기 북측 지령 받은 정황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9월 5일 수원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내란음모 및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9월 5일 구속되면서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김두한 전 의원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로 내란음모 혐의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되면서, 그동안 부정경선 및 종북 논란 등의 중심에 섰던 이 의원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 의원의 혐의는 검찰수사와 법원 판결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주간동아’가 과거 공안사건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판결문과 왕재산 간첩단 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공안당국이 확보한 RO (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비밀회합 녹취록 속 모습은 과거 민혁당 사건,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닮은꼴이라 눈길을 끈다.

5월 12일 서울 합정동 한 종교시설에서 가진 RO 비밀회합의 녹취록에는 이 의원 등 참석자들이 대한민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선봉에 나서서 주요 기간시설을 습격, 파괴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북이 공격하면 선봉에 나서자”

이 의원은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 정규전이 아닌 비정규전, 이런 상태가 앞으로 전개될 것이다. 정치·군사적으로 전쟁을 준비하자”고 제안했고, 참석자들은 “폭탄을 제조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참석시키자. 저격용 총을 준비해야 한다.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자”며 논의를 이어갔다. 참석자들은 경기 평택물류기지와 KT 혜화지사, 분당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경부선 등 주요 철도시설 등을 타격 대상으로 열거한다. 이 의원의 발언 녹취 일부를 들어보자.



“지난 보스턴 테러에 쓰였던 압력밥솥에 의한 사제폭탄 매뉴얼 공식도 떴다고. 관심 있으면 보이기 시작한다. (중략) 그야말로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속도전으로 일체감으로 강력한 집단적 힘을 통해 각 동지들이 자기 초소에 놓여 있는 창조적 발상으로 한순간에….”

녹취록에는 이들의 논의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나온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평택 유류저장소가 니켈합금과 90cm 콘크리트로 돼 있다”면서 “시설이 실제 경비가 엄하지는 않아 (중략)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기 평택항 해군 2함대사령부 인근에 위치한 평택물류기지에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 SK가스 등 수십 개 업체의 유류저장소가 모여 있고, 한국가스공사는 23개 저장탱크에 세계 최대 규모인 336만t의 LNG 가스를 저장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공안당국은 RO가 북한과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남한 내 폭동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는 북측 지령을 받은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정원은 압수수색을 통해 도청탐지기와 오디오테이프, CD/ DVD 17장, 플로피디스크 등을 확보해 북한과의 연계성을 찾고 있다.

2011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왕재산’ 사건의 총책이던 김덕용 씨의 수사 결과 자료와 판결문에도 무장봉기 준비계획이 등장한다. 당시 검찰 공소장에는 “‘(왕재산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은) 결정적 시기에 인천연유창, 주안공업단지, 경찰서 등 주요 기관과 시설을 타격한다’는 임무를 받았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특정 지역을 거론하면서 임무 지령을 내렸다. 인천 남동구는 지역 케이블방송국과 경찰서 등에서 2013년까지 관련자를 포섭해 유사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남구는 인천지역 저유소, 보병사단, 공병대대 등에 핵심 성원 1~2명을 배치하거나 경비원과 장교 등을 매수해 2014년까지 폭파 준비를 완료하며, 동구는 지역 케이블방송 등 핵심 인물을 끌어들이고 좌파 청년학생단체를 육성해 공산혁명을 위한 무장대를 결성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령했다.

#“국회는 계급투쟁의 최전선”

이에 대해 왕재산 조직은 대북보고문을 통해 “인천지역을 주요 혁명 거점으로 삼기 위해 대중운동 단체들을 장악하는 사업을 전투적으로 벌여나가고 있으며, 노조(노동조합)와 제반 단체에 대한 사업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의원은 각종 RO 회합에서 “국회는 계급투쟁의 최전선” “작년 4·11 총선에서 원내 교두보를 확보하는 대담한 혁명의 진출을 했다”고 자평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RO는 1단계로 경기지역 좌파 단체인 경기동부연합 경기진보연대의 핵심부를 장악한 뒤 지역 사회단체에 조직원들을 꾸준히 확산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민주노동당(민노당)에 계획적으로 침투해 경기지역당 위원장과 대의원으로 대거 당선됐다.

RO 경기중서부 지휘책인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부위원장은 “이석기 동지는 선거라는 것도 중요한 투쟁의 공간이라고 말씀하시며 과학적인 선거운동을 지도해왔다”고 말했다. 결국 RO는 지난해 4월 총선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당권을 장악했고 이 의원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에도 정치권 개입 활동이 적시돼 있다.

“북한은 정치권 상층부 공작은 국내 정국 혼란 등 대남적화혁명에 있어 중심 구실을 한다고 판단하고 이에 주력하고 있다. (중략) 북한 대남공작기구인 225국은 왕재산 조직에 각종 선거 지령을 하달하면서 이른바 ‘진보세력’ ‘개혁민주세력’의 역량을 확대하고, ○○당을 중심으로 진보 대통합정당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북한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2007년 대통령선거를 내다보고 인천지역 세력이 우세를 차지하도록 왕재산 조직의 영향 하에 있는 지역 운동단체들을 망라해 동원하라”고 지시했으며, 2011년 4월 재·보궐선거 때는“승리 성과를 토대로 당을 강화하면서 진보대통합 건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제시했다. 총책 김씨 등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포섭대상인 시·구의원을 당선시켰다”고 대북보고를 했다. 정치권 내 안정적인 지위 확보를 위해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을 지낸 ‘왕재산’ 조직 서울 지역책 이모 씨가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2005년 3월과 2007년 3월 이 의원의 방북 행적을 캐는 이유도 왕재산 간첩단 사건처럼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국정원은 RO의 설립 배경으로 비춰볼 때 이 의원과 RO가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됐을 개연성이 짙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 전 핵심 당직자 A씨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정원은 ‘RO산악회’를 1997년 해체된 민혁당 잔존 세력이 조직을 재건하려고 만든 모임이라고 보지만, RO는 전국연합이 민노당을 장악하기 훨씬 이전, 96년 전에 이미 결성된 조직이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은 2000년 1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던 권영길 대표 등 평등파(PD) 주도로 창당했지만, 뒤늦게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자주파(NL) 지역연합체가 대거 민노당에 합류해 당을 장악하지 않았나. 이때 경기동부연합과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이 무척 강했고, 경기동부연합은 민노당을 접수하면서 RO를 대거 심었다. 북한 지령인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이즈음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 시도가 본격화됐다. 이후 민노당은 2006년 10월 NL계열 간부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내통한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종북 성향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중정당으로서의 입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도 경기동부연합은 북한 핵실험 당시 당이 유감 성명을 발표하려 하자 무산시켰고,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등 종북 성향을 노골적으로 고수했다. 이때도 RO의 입김과 구실이 컸다.”

당시 PD계열 인사들이 대거 민노당을 탈당했다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모였지만, 이번에는 비례대표 부정경선으로 다시 통합진보당은 분당 사태에 이르게 된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남한 사회주의혁명을 목적으로 활동한 점도 유사하다. 5월 12일 서울 합정동에서 가진 회합에서 이 의원이 했던 발언을 들어보자.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의 정전협정 백지화 성명 발표로 조성된 현 정세는 혁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강력한 혁명적 계기이며, 조국통일, 통일혁명은 남북의 자주역량에 의해 할 수 있다.”

앞서 김홍열 경기북부 지역책은 “미제의 전쟁 책동은 우리 민족 공동의 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원수가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반미 대결전을 승리로 결집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혁명을, 압도적 우위를 보장해야 한다. 조국 현실은 전쟁이냐 평화이냐고 하는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9월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무기명 투표를 하고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건설”

이처럼 남한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하고 자주, 민주, 통일투쟁을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 후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2002년 민혁당 사건 판결문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평소 남한 사회는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민족 자주권을 상실하였고, 식민지 파쇼정권에 의해 민주주의가 말살되었으며, 미 제국주의는 군사적으로 동아시아 방위전략이라는 미명하에 (중략) 모든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목표로 남한 민중을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주체형 새 세대 청년혁명가를 양성해 미군을 축출하고 현 정부를 타도한 후 조국통일을 이룩하여 공산정권을 세우는 데 있어, 북한의 김일성과 북한 대남혁명 전위대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지도를 받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으로 꾸려나가기로 하고….”

여기에 정보기술(IT) 관련 업체를 위장 운영해 유죄를 선고받은 왕재산 간첩단 사건처럼 이 의원도 선거광고 대행사인 CN커뮤니케이션즈(CNC)를 통해 북한과 접촉한 의혹을 받는다는 것도 유사점이다. 홍순석 부위원장 등 내란음모 혐의 구속 관련자 3명이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점, 공안당국의 수사망을 피하려고 해외에 서버를 둔 e메일 계정을 활용해 ‘e메일 세탁’을 한 점도 과거 왕재산 간첩단 사건, 민혁당 사건 때와 닮았다.

TIP

왕재산 간첩단 사건


북한 지령을 받아 간첩행위를 한 혐의로 김덕용 씨 등 5명이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 정보기술(IT) 업체 대표 김씨는 북한 225국의 국내 지하당 조직 총책으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2011년 7월 검거됐다. 김씨는 1993년 8월 김일성을 만나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 전파’ 등의 지령을 받아 반국가단체인 ‘왕재산’을 결성한 뒤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내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전달했다. 왕재산은 함북 온성에 있는 산으로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유적지라고 선전한다.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2011년 8월 25일 이진한 공안1부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왕재산 간첩단 사건’ 수사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민혁당 사건

내란음모 RO 비밀회합 민혁당·왕재산 사건 판박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은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과 하영옥, 이석기 등이 주축이 돼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NLPDR)을 달성하려고 1992년 3월 ‘북한 지령’임을 내세워 결성한 지하조직이다. 이석기 의원은 99년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3여 년간 숨어 지내다 2002년 5월 검거돼 징역 2년6월(국가보안법 위반)을 언도받았지만, 3개월 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민혁당을 80년대 학원가의 주사파 핵심 세력이 북한에 포섭돼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남한 내 혁명전위조직으로서 결성한 지하당이라고 규정했다.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가 과거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주축이 돼 결성됐고, ‘남한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삼은 만큼 북한과 연계됐다고 국정원은 판단한다.




주간동아 2013.09.09 904호 (p8~10)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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