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2013.09.02

아홉 마디 @오메가

제14화 꼬마들의 세상 보기

  • 입력2013-09-02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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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림은 방미의 색다른 초대에 선뜻 응했다. 좋은 기삿거리라는 것도 동참 이유 중 하나였다. 방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려고 해요. 유아원에서만 놀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모습은 좀 달라도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해요.”

    다림은 카메라를 메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보라가 걸어오며 손을 흔든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둘은 초콜릿과 쿠키를 사 가방에 넣었다. 오한방이라고 했던가? 방미가 전해준 아들과의 대화가 귓전을 스쳤다.

    “엄마, 세상이 뭐예요?”

    “세상? 우리가 사는 여기가 세상이야.”



    “그럼 말하는 소가 어디 있어요?”

    “말하는 소라니?”

    “배고프면 할~매~ 하고 불러서 밥 달라고 말하는 소요.”

    “음, 그런 소를 봤구나. 어디서?”

    “텔레비전에서요.”

    “그랬구나. 세상이란 많은 사람, 많은 동물, 그리고 예쁜 꽃이 모여 사는 곳이야.”

    그 모자의 풍경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방미는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를 좋아해요. 괴상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을 세상으로 알고 있나 봐요.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방미는 아이들 앞에 섰다. 컴퓨터에서 ‘사람들’이라는 폴더를 열려다 말고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동그랗게 뜬 맑은 눈이 깜박거렸다. 방미는 입을 열었다.

    “동영상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틈을 주자 아이들끼리 쳐다보며 깔깔 웃는다.

    “누구냐 하면 형과 누나, 오빠와 언니들이에요. 아주 착한 사람들이에요.”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스크린을 향했다. 한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스무 살은 넘긴 것 같았다.

    “안녕! 반갑습니다. 달수라고 해요.”

    카메라에서 돌아오는 달수는 말이 어눌하고 걸음걸이는 어색했다. 모여 앉은 친구들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김연수예요. 친구들, 있다가 봐요.”

    그녀의 몸에는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이 많이 걸려 있었다. 연수는 앉으려다 말고 다시 카메라 앞으로 왔다.

    “이 목걸이 엄마가 해준 거예요. 예쁘죠?”

    한 남자가 연수에게 빨리 끝내라고 성화다.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일어나 연수를 제치더니 카메라 앞에 섰다.

    “내 차례인데 연수가 말을 너무 많이 해요. 나는 이삼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삼수는 돌아가다가 카메라 앞에 다시 섰다.

    “연수는 노래를 잘해요. 동균이는요, 연수 노래만 들으면 신이 나서 춤을 춰요. 동균아, 빨리 와.”

    삼수는 동균을 향해 손짓을 했다. 동균은 다운증후군 아이처럼 보였다. 선한 모습이어서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주는 얼굴이었다. 동영상이 끝나자 방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만날 사람들이에요. 자, 나가요.”

    일제히 마당으로 달려 나가 대기하던 승합차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판수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생활시설에서 약간 떨어진 공터에 주차했다. 시설로 들어가려는데 손세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들어가기가 어색해 기다렸어요. 처음이거든요.”

    “그랬구나.”

    둘이 들어서는데 생활시설 사람들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둘은 사회복지사 안내로 생활시설의 거실로 향했다. 아침식사 후 휴식시간인지 모두 편하게 쉬고 있었다. 텔레비전 보는 사람, 컴퓨터 앞을 서성이는 사람….

    한 남자가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을 동료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말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판수가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고통스러운 듯 얼굴만 찡그렸다. 판수와 세미는 안절부절못했다. 뉴스를 보며 말을 전해주던 사람이 그를 일으켜 세워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밝은 표정으로 둘이 손을 잡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말은 못해요.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얼굴을 이렇게 찡그려요.”

    그는 어눌한 투로 말하며 판수와 세미를 쳐다보았다.

    “오빠, 감동적이다.”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마당으로 향했다.



    승합차에서 한방미와 아이들이 차례로 내렸다. 생활시설 사람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했으나 순수한 마음이 통했는지 금방 친해졌다.

    언제 도착했는지 다림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생활시설 사람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치~ 하라는 소리, 아냐 치~즈야 하는 소리도 들렸다.

    생활시설 저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모두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자 한 명이 이층 베란다에서 ‘꽃밭에서’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방미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분 부모님은 주말에 본가에 데리고 가요. 하루 이틀 재우고 오거든요. 부모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아서인지 사랑을 베풀려는 마음이 많습니다. 힘들어하면 안마를 해주겠다고 오기도 하고, 화가 난 사람이 있으면 다독이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줘요. 여기 오신 분들을 환영하는 노래인가 봐요.”

    “아, 연수 씨군요.”

    방미는 동영상에서 본 얼굴을 떠올렸다. 노래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를 쳤다. 연수는 가수처럼 멋진 포즈로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생활시설 원장의 안내로 강당으로 들어섰다. 강당 한쪽에는 얇은 놀이매트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매트 네 귀를 잡고 앉은 뒤 아래위로 흔들었다. 필승과 여옥도 매트 한쪽 끝을 잡고 있었다.

    생활시설에서 나이가 어린 열 명, 유아원 아이 중에서도 열 명이 나왔다. 총 열두 명의 매트 잡이가 아래위로 매트를 흔들자 원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매트 아래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첫 게임에서 생활시설팀이 이겼다. 한 번 더! 다음에는 유아원팀이 연달아 이겼다. 한 번 더 하자고 졸라 생활시설팀이 이겨 게임은 무승부로 끝났다.

    다른 쪽에선 코코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리더는 연수. 보라가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연수 옆으로 아이들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연수가 코, 코, 코 하다가 귀를 잡으며 입이라고 하자 한방만 입을 가리켰다. 사진을 찍던 다림이 선물로 초콜릿을 내놓았다.

    한방은 초콜릿을 들고 뛰었다. 매트놀이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매트 태워주기를 하는 방미에게 달려갔다. 초콜릿을 껍질을 까 방미의 입에 밀어 넣었다. 돌아와 코코코 놀이를 하는 연수의 입에도 넣어주었다.

    “고맙다, 한방아.”

    연수는 한방을 안고 볼을 비빈다.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누나, 울면 미워지고, 웃으면 예쁘진대요.”

    언제 왔는지 필승이 보라에게 말을 건넨다.

    “보라야, 개성공단이 열렸는데 순이 없어서…. 중국 가기로 했다.”

    ※ 내용 중 일부는 이혜경의 중앙대 행정대학원 석사 논문 속 면담자료를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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