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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의 ‘망달당달’(망가지느냐 달라지느냐,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은밀하게 거대하게 너도나도 스테로이드 중독

지구촌 거대 근육 신화 지배, 슈워제네거 너마저…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은밀하게 거대하게 너도나도 스테로이드 중독

은밀하게 거대하게 너도나도 스테로이드 중독

2004년 10월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연설하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1977년 영화배우 데뷔 직후의 슈워제네거(상자 안).

보디빌딩(bodybuilding)이란 글자 그대로 몸을 만든다는 뜻이다. 적절한 운동 및 식이요법을 통해 보기 좋고 건강한 근육을 만드는 것은 사실 모든 이의 꿈이다. 최근에는 남성뿐 아니라 좀 더 탄력 있는 몸매를 갖기를 원하는 여성들도 이 열풍에 동참한다. 바야흐로 보디빌딩은 현대생활을 제대로 즐기는 데 필요한 필수조건 중 하나가 돼가는 추세다.

그런데 이런 보디빌딩의 세계에서 암약하는 고질적 유령이 있다. 바로 스테로이드로 대표되는 불법약물이 그것이다. 관계당국에서 꾸준히 단속을 강화하지만, 이들 약물은 근절되기는커녕 좀 더 은밀한 방법을 통해 점점 확산된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보디빌딩은 약물로 만든 근육 자체가 경기력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근래에는 우람한 근육을 동경하는 일반인까지 이런 풍조에 자발적으로 뛰어들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불법약물 사용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불법약물 사용자의 변명을 추려보면 대략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세계화 시대에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 순진하게 운동만 해서는 약물로 만든 외국 선수의 거대한 근육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첨단과학 사회에서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성형수술이나 지방흡입술과 뭐가 다르냐는 당위론이다. 셋째는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훌륭한 근육을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한 번 눈감아주면 안 되느냐는 동정론 또는 호소론이다. 넷째는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저절로 근육이 생기는 게 아니라 남다른 운동을 동반해야만 한다는 면피론이다.

근육만 커진다면 뭐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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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처방이 금지되는 전문의약품이다.

이런 변명의 모순점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명한 일이지만,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 처지에선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그들은 빠져나오기 힘든 덫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스테로이드 보디빌더는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



약물로서의 스테로이드는 1930년대 개발돼 초창기만 해도 주로 의료 목적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1950년대 옛 소련 역도선수들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경기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면서 스포츠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과 첨예한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 올림픽 역도 대표팀의 주치의 지글러도 몇몇 선수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처방해봤지만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사용을 중단했다. 그 대신 그는 당시 자신이 제약회사 시바와 공동개발해 1956년 예비검정을 마친 다이애나볼이라는 약물을 사용해보기로 결정했다.

다이애나볼은 기존 테스토스테론이 갖고 있는 부작용은 없애고 근육을 만드는 단백동화(anabolic) 작용만 강화한 일종의 합성 스테로이드였다. 다이애나볼이 나온 비슷한 시기에 다른 제약회사에서 만든 ‘닐레버(Nilevar)’라는 또 하나의 합성 스테로이드 제품이 시중에 소개된다. 말하자면 1956년부터 스포츠계에 합성 스테로이드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

1959년 지글러는 정상급 선수들을 제외한 일부 역도 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다이애나볼을 투여했다. 처음 사용해보는 약물의 효능에 자신이 없던 그와 대표팀 책임자 호프먼은 혹시 잘못된 처방으로 일류 선수들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 것을 우려해 안전한 대상을 고른 것. 그런데 투약 실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스테로이드 근육의 종착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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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상용화로 보디빌딩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샌도의 몸조차 평범해 보이게 됐다.

그때부터 다이애나볼에 대한 소문은 역도선수들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가 될 보디빌딩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보디빌더들은 그 경이로운 효과에 감탄하며 다투듯 합성 스테로이드에 달려들었다.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 초대 우승자이자 전설적 보디빌더 중 한 사람인 래리 스콧은 약물을 복용한 지 두 달 만에 근육만 4kg 가까이 늘리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이에 그는 1960년 미스터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를 눌렀던 두 사람을 제치고 미스터 캘리포니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1960년대 들어 보디빌더들의 근육은 약물의 도움으로 가공할 만한 크기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스테로이드는 바야흐로 보디빌더들의 꿈을 이뤄주는 ‘마법의 약’으로 인식되면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 바로 그때부터 보디빌딩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황금기를 이끈 사람은 영화계의 대스타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역임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였다. 1968년 보디빌딩 사업가 조 웨이더는 오스트리아 출신인 슈워제네거를 미국으로 데려와 적극 후원했다. 사람들은 순박한 표정의 청년에게 단박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슈워제네거가 본격적으로 활약하던 1970년대는 보디빌딩계에서 스테로이드 사용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한 어떤 법적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보디빌더들은 운동 중에 물을 마시듯 체육관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스테로이드를 자유롭게 복용했다. 사람들은 스테로이드 남용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미처 알지 못한 채 눈앞에 나타나는 놀라운 결과에만 환호했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여자들도 스테로이드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남자 같은 근육을 가진 선수들이 속출했다. 스테로이드 사용의 문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때가 그즈음이다. 매스컴에선 구체적인 비판 기사들을 내놓았고, 규제도 점점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외부 요인과는 관계없이 보디빌딩 세계에서의 약물 사용은 점점 보편화, 지능화되고 전문 선수들의 근육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런 모습에 익숙해진 이들의 눈에는 ‘보디빌딩의 아버지’로까지 불리는 유진 샌도(1867~1925)의 몸조차 평범하게 여겨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만 해도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잡지 속에서만 거대한 외국 보디빌더들의 근육을 접했을 뿐 사회적으로 약물 복용이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었다. 스테로이드 복용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약물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인터넷의 폭발적인 발달로 각종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상황은 점차 심각하게 변했다. 선수들의 몸도 어느새 국제적(?) 수준으로 바뀌었다.

이런 추세라면 스테로이드 확산이 구미 수준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이들 스테로이드 보디빌더들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주간동아 2013.09.02 903호 (p78~7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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