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2013.09.02

4050 남자, 피부를 탐하다

‘성공한 사람은 피부 미남’ 인식 확산…미백과 주름 개선 등 피부 관리에 열중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3-09-02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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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50 남자, 피부를 탐하다

    삼성생명 재무컨설턴트 박동수 씨는 고객을 만나기 전 반드시 거울을 보고 외모를 점검한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이상수(29) 씨는 1년째 꾸준히 피부 관리를 받고 있다. 그동안 투자한 돈이 500만 원이 넘는다. 이씨는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피부가 얼룩덜룩해 평소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았다. 아토피 피부염은 컨디션에 따라 상태가 호전되거나 악화되는데, 프로젝트를 맡으면 밤새울 일이 많고 술자리도 잦아 다음 날 그 여파가 바로 피부에 나타난다”고 했다. “업무 능력 못지않게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려면 피부 관리가 필요하다”는 그는 되도록 자극이 없거나 적은 화장품을 쓰고 ‘피부에 나쁘다’는 커피를 자제한다. 이씨는 “술 마시고 취미 활동하는 데 돈 쓰는 것보다 피부에 투자하는 게 훨씬 현명한 것 같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연스레 피부 관리에 신경 쓰게 된다”고 말했다.

    도자기 피부가 곧 경쟁력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해 자기 관리에 적극 나서는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부하직원으로 둔 중년 상사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원 한승태(43) 씨는 “요즘 젊은 직원들은 멋 내기를 좋아하고 자기 관리를 잘한다. 그에 비해 자기 관리도 제대로 안 하는 후줄근한 상사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치겠는가”라고 했다. 최근 그는 “여름이라 얼굴이 많이 타고 피부 탄력도 떨어진 것 같아 피부 관리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후 평소 쓰지 않던 영양크림과 자외선차단제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그는 “피부에 신경 쓰고 난 뒤 직원들로부터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만족해했다.

    ‘제2 사춘기’라는 중년에 들어서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살아온 날을 돌아보게 된다. 거울 앞에 서면 젊은 시절 팽팽하고 생기 있던 피부는 어디로 가고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과 ‘심술보’, 여기저기 자리 잡은 검은 반점으로 거뭇해진 피부가 먼저 눈에 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하는 푸념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지금 우리 사회 풍조는 그렇지 않다. ‘꽃중년’ ‘도자기 피부’ ‘노무(No More Uncle)족’ 같은 유행어가 그동안 먹고살기 바빠 외모에 관심 없던 중년을 초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운에이징’을 적극 추구하는 ‘루비(RUBY·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ng)족’까지 등장했고 여기에 중년 남성이 가세하면서 피부 관리 열풍이 불고 있다.

    삼성생명 재무컨설턴트(FC) 박동수(47) 씨는 3년째 꾸준히 피부 관리를 해오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영업맨으로 사는 그는 “그동안 얼굴에 별 신경을 안 썼는데 마흔 살이 넘어가니까 ‘얼굴색이 검다’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오늘 만날 사람들한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평소 스킨과 향수만 사용하던 박씨는 피부 관리를 시작한 이후 2~3개월에 한 번씩 TV 홈쇼핑을 통해 필요한 화장품을 세트로 직접 구매한다. “보신탕이 피부에 좋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챙겨 먹는다”는 그는 주 2~3회 얼굴 각질 제거를 하고 미백과 주름 개선에 좋은 팩도 주 1회 빼먹지 않고 한다. “피부 관리를 시작한 이후 거울을 보면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걸 느낀다. 고객을 만나면 첫인상이 중요한데, 밝고 생기 있게 보이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직업이 주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만족시키는 차원에서 피부 관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이자 회사를 경영하는 모은호(42) 씨는 “말이 디자이너지, 우리가 하는 일은 늘 현장을 돌아다니는 ‘노가다’이기 때문에 피부가 거칠고 검게 타는 걸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반인은 인테리어디자이너 하면 세련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는 “직업상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따로 피부 관리를 할 엄두를 못 내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우연히 친구를 따라갔다가 피부 관리를 받게 됐다. 집에서 혼자 하는 건 잘 안 되더라”고 했다.

    비즈니스엔 첫인상이 중요

    4050 남자, 피부를 탐하다

    중년 남성이 외모를 가꾸는 이유는 외모가 능력의 한 부분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비즈니스 업무에서 좋은 첫인상을 남기려고, ‘젊고 스마트한 상사’라는 이미지를 부하직원에게 심어주려고, 100세 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등 제각각의 이유로 외모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중년 남성이 늘면서 최근 피부관리실이 붐비고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부근에 위치한 남성전용 피부관리실 ‘M’의 신진옥 대표는 “원래 남녀 구분 없이 20년 넘게 운영한 피부관리실이 따로 있는데, 남성 고객이 절반을 넘으면서 지난해 7월 그들을 위한 전용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이유는 “피부 관리를 받으려면 탈의를 하고 가운을 착용하는데 20~30대와 달리 그런 모습으로 여성들과 섞이는 것을 중년 남성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을 찾는 손님 가운데 중년 남성은 3명에 1명꼴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나이라 수백만 원을 투자하는 것에도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김도훈(43·가명) 씨는 머리숱이 없어 가발을 쓰다 보니 평소 피부관리실에 가는 걸 꺼렸다. 여성 손님으로 북적이는 곳에서 가발을 벗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직업상 화려하고 개성 강한 젊은 친구들 틈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피부 관리는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남성 전용 피부관리실이 생기면서 김씨는 3월부터 주 2~3회 꾸준히 피부 관리를 받고 있다.

    일반 피부관리실에서 커플룸을 따로 만드는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서울 강북구 미아역 부근 피부관리실 ‘R’의 김영주 매니저는 “요즘 결혼이 늦어지면서 40대 미혼 남성이 많은데 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애인과 함께 커플룸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피부 관리’와 ‘휴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중년의 맞벌이 부부가 퇴근 후 나란히 손잡고 커플룸을 이용하기도 한다.

    20대 초·중반 남녀 484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아름다움의 권력’(박은아 공저)이라는 책을 펴낸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들은 아름다울수록 지적 능력이 높고, 업무 능력뿐 아니라 직장 내 대인관계도 좋으며 문화를 선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성 교수는 “남성화장품 광고를 처음 접한 남자들이 이제 중년이 됐다. 이들은 외모 관리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고, 특히 요즘 직장에서 젊은 친구들이 외모 등 자기 관리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40~50대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외모가 능력의 한 부분으로 평가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최근 세태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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