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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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전속결 CJ그룹 비자금 수사 비결은

해결 실마리는 망가진 USB 복원과 그룹 압수수색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3-09-02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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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전속결 CJ그룹 비자금 수사 비결은

    2100억 원대 횡령,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

    수사가 난항을 겪을 때 작은 메모 하나가 흐름을 뒤바꾸는 경우가 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도 해결 실마리는 수첩에 적힌 백악관 전화번호였다. ‘방통대군’으로 불리던 이명박(MB) 정부의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도 비슷한 경우였다. 최 전 위원장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은 다른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브로커 이동율 씨의 수첩에서 최 전 위원장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우연히 드러나게 됐다.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이후 착수한 수사 가운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CJ그룹 비자금 수사에서도 이런 작은 단초가 흐름을 바꿨다. CJ그룹에는 재앙이 된 이 단초는 이지영 전 CJ그룹 재무팀장의 USB(개인용 컴퓨터 주변기기 연결 포트) 저장장치였다. 이 메모리 안에는 이씨가 CJ그룹 이재현 회장에게 보내는 편지가 담겼는데, 거기에는 비자금 관리를 암시하는 글이 들어 있었다.

    차명계좌 목록 등 수사에 물꼬

    이 USB 저장장치는 2008년 사채업자 살인청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이씨 자택에서 발견됐다. 살인청부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7년 5월이었다. 당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사채업자 박모 씨가 미상의 남성 2명으로부터 스패너로 머리를 맞고 1억 원 상당의 수표와 수첩 등이 든 손가방을 빼앗겼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는데, 이 사건의 배경에 이씨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즉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던 이씨가 박씨에게 170억 원을 빌려줬다 자금 회수가 어렵게 되자 살인 청부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증거 불충분 등으로 미제사건이 됐다. 당시 경찰이 압수했던 이씨의 USB 저장장치는 망가진 상태라 증거로 활용되지 못했고, USB 저장장치를 복원하지 않은 채 수사는 종결될 뻔했다. 최근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경찰이 이씨의 USB 저장장치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고도 이를 눈감아줬다는 정황을 단독 보도했다.



    당시 이 사건을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문제가 된 의심쩍은 USB 저장장치가 방치된 것을 발견하고 복원을 지시했다. 5년 뒤 비자금 사건을 담당한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도 그 USB 저장장치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 USB가 비자금 수사에 물꼬를 터준 단초이긴 했으나 CJ그룹 본사와 이 회장 자택 등에 대한 본격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가 더 중요했다”고 밝혔다.

    CJ그룹 비자금 수사는 속전속결이었다. 본사 압수수색과 함께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35일 만에 이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고, 기소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에 비해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초로 재벌총수의 해외 비자금 운용을 통한 역외탈세 혐의를 규명한 데다, 그룹 회장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전담조직이 동원된 조직적 기업비리 실태도 적발했다.

    이처럼 검찰이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내사로 자료를 충분히 축적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이 CJ그룹 본사와 경영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할 때 내부 사람이나 알 수 있는 각 층별 부서와 조직도, 재무팀 금고 위치, 심지어 당시 업무를 담당한 주요 인력까지 속속들이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회장의 로비를 받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을 구속하고 현직인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옷을 벗게 만든 제2라운드 수사도 성공적이었다.

    전 전 청장이 CJ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청장 취임 직후였다. 2006년 6월 국세청장으로 지명된 그는 취임 후 직원 경조사비, 해외 출장 경비 등으로 사용할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허 전 차장과 논의했다. 허 전 차장은 “친구가 CJ그룹 임원으로 있는데 그쪽에서 모금을 해보겠다”며 CJ그룹 측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허 전 차장은 CJ그룹의 비자금 관리인이던 신동기(57·구속기소) 전 부사장에게 “청문회 준비 등으로 이것저것 비용이 많이 든다”며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허 전 차장은 신 전 부사장으로부터 3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2억8397만 원 상당)를 받아 전 전 청장에게 건넸다. 같은 해 10월 전 전 청장과 허 전 차장은 돈을 준 이 회장과 만나 모 호텔 일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신 전 부사장은 이 회장의 지시를 받아 3570만 원 상당의 프랭크뮬러 손목시계를 전 전 청장에게 건넸다. 허 전 차장에게도 2000만 원대의 여성용 프랭크뮬러 시계를 전달했다. 비용은 모두 이 회장의 개인 비자금에서 충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자료와 진술에 두 손 든 CJ

    속전속결 CJ그룹 비자금 수사 비결은
    이 회장과 전 전 청장이 회동한 뒤인 2006년 8~11월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CJ그룹의 주식 이동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으나 차명주식을 발견하지 못해 세금을 한 푼도 추징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전 전 청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전 전 청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실무라인에 있던 국세청 직원들도 “외압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CJ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시기와 금품수수 시기가 겹치는 점 등 여러 정황상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전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금품수수 혐의는 인정했지만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허 전 차장에 대해선 특가법상 뇌물방조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송 전 청장은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신 부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뒤 자진 사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송 전 청장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맡기 직전 국세청 내부의 공직기강과 비리를 적발하는 감사관을 역임했다.

    검찰은 국세청 로비 관련 수사에서 CJ그룹 측이 꼼짝없이 백기를 들게 만들었다. 이씨가 작성한 금전출납 기록에 ‘국세청 3억 원’이라고 적힌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됐다. 검찰은 또 이씨로부터 전 전 청장과 허 전 차장의 ‘4인 회동’에 대한 진술을 받은 후 이 회장 측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과 신 전 부사장이 이를 완강히 부인하려 했지만 검찰이 이씨의 진술과 메모, 심지어 4인 회동 당일 호텔 면세점에서 프랭크뮬러 시계를 샀던 세금계산서까지 들이댔기 때문에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검찰 조사를 받았던 한 CJ그룹 관계자는 “검찰이 각종 자료와 진술 등 워낙 많은 것을 확보해놓아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CJ그룹 측 변호인단은 향후 공판에서 이 회장이 ‘횡령한 금액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이 없고 대부분 회사 임직원들에게 격려금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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