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8

2013.07.29

“자신의 천재성 흔들어 깨워 드림 잡(Dream job) 찾아라”

헤드헌터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 정리=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7-29 10: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급 두뇌를 사냥하는 여자 유순신. 항공사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가 헤드헌터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비결은 뭘까.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가 ‘열정樂서’ 강연자로 나서 자신의 비밀수첩을 공개했다.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열정樂서’는 저명인사들이 멘토로 나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토크콘서트다.

    유앤파트너즈 유순신입니다. 유앤파트너즈는 유엔 산하기관이 아닌 인사전문회사입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도, 유관순 열사도 아닌 유순신입니다(웃음). 만나뵙게 돼 반갑습니다. 정말 많은 분이 오셨네요. ‘깜놀’(깜짝 놀랐다)했어요. 여기에 오기 전 여러분이 쓴 질문지를 봤는데 “찾다 보면 길이 많다는데, 그 길은 어디에서 찾나요?”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네요. 이 자리에 고등학생도 있나요? 대학 1, 2, 3, 4학년? 취업반? 네, 다양한 분이 오셨군요. 이제 파악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저만의 취업 비밀수첩을 열어보겠습니다.

    스펙 아닌 스토리 필요

    제 직장 경력 기간은 34년입니다. 20년 전부터 기업과 임원급의 고급인재를 연결하는 헤드헌터로 일하며 한 달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을 만나 지금껏 5000여 명이 넘는 사람을 기업체에 연결했습니다. 또한 기업의 최종 사장단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면접에서 떨어지는 친구는 2% 정도 부족한 듯 보였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고심하다 책도 몇 권 출간했습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회사에서 인턴 제도도 운영하고 있고요. 결과적으로 10여 년간 인턴 100여 명을 배출하며 청년들을 사회에 연결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했습니다.

    지난해 한 방송국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 1000여 명이 지원했는데, 그중 1명을 뽑아 자기계발비 3000만 원, 해외기업 인턴 자격, 회사 취업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최종 우승한 사람이 어떤 스펙을 가졌는지 궁금하죠? 놀랍게도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본인은 “항상 아이디어를 생각하면서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더군요. 개척정신, 창의력, 글로벌마인드, 열정이 있으니 잠재력이 끓다가 오디션 과정의 어느 순간 발현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천재성 흔들어 깨워 드림 잡(Dream job) 찾아라”

    ● 1957 서울생<br>● 1979 성신여대 불어교육과 졸업<br>● 1997 핀란드 헬싱키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졸업<br> ● 대한항공 승무원, 프라마톰 코리아 행정 보좌역, NCH 코리아 세일즈 매니저, 유니코써어치 대표이사 등<br> ● 저서 ‘변화의 두려움을 사랑하라’ ‘나는 희망을 스카우트한다’ 등

    여러분,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곰곰 생각해보세요. 예전에는 스펙을 요구했는데 지금은 스토리를 강조하죠. 이건 사회가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인재의 조건은 외모, 학력, 집안 배경이었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인재는 ‘베스트 피플(best people)’, 즉 우수한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라이트 피플(right people)’, 다시 말해 우리 회사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바뀌었죠.

    얼마 전 한 기업의 최종 사장단 면접에 들어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대 출신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이력이 1.5배 더 많았고, 대학 4년 동안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필리핀 쓰나미 현장에 가서 구조를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고요. 토론도 잘했고 원어민만큼은 아니지만 본인 의사를 영어는 물론 중국어로 표현하는 것도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사장단에서 이 친구의 합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어요. 어떻게 인지도가 없는 대학 출신자를 뽑느냐는 거였죠. 하지만 저는 “이 학생을 뽑지 않는 건 회사에 마이너스다. 당연히 뽑아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회장님도 같은 생각이라며 합격시켰습니다. 이 학생처럼 잠재력이 엿보이는 사람이 바로 모든 회사에서 찾는 인재입니다.

    여러분이 작성한 질문지를 보니 인상 깊은 구직자가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증권회사 최종면접에서 본 여학생이 있었는데요, 그 여학생은 자기소개 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개를 하고는 “여러분, 지루하시죠? 이왕 일어난 김에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하면서 노래를 하더군요. 영업직 지원자가 그렇게 밝으니 좋아 보일 수밖에요. 한 번은 자기소개 시간에 미리 만들어놓은 자료를 심사위원에게 나눠주는 친구도 봤습니다. 이런 게 바로 차별화입니다. 스펙에서 벗어나 잠재력으로 승부를 걸어보세요.

    일하는 여성에 대한 로망

    그렇다면 유순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궁금하세요?(웃음) 1970년대 후반은 직장 다니는 여성을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선지 당시 저도 첫 직업이던 승무원 생활을 시집가기 전 1년 정도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비행을 하며 세계 이곳저곳 나가보니 정말 많은 여성이 일하고 있더군요. 한 번은 미국 뉴욕 월가에서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일을 하는 여성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때 ‘인생의 닻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승무원 생활을 3년 반 정도 하자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됐습니다. 저는 계속 일을 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에 이력서를 100통 넘게 보냈죠. 결혼하고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프랑스 원자력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서울사무실의 행정 보좌역으로, 외국인 기술자 100여 명과 그 가족의 행정 절차를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해외 경험과 외국어 실력을 무기로 인터뷰에 최선을 다한 결과 합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출근 첫날 상사가 “우린 기혼자를 안 뽑는데 당신이 사기 쳐서 취업했다”고 말하더군요. 화가 나서 “인터뷰할 때 결혼했는지 물어봤느냐”고 따졌죠. 다행히 저를 뽑은 프랑스인 상관이 “외국은 기혼 여성도 다 일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중재해 별 탈 없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가 문을 닫는 그날까지 끝까지 근무하겠다는 강단으로 일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1982년부터 89년까지 일하며 성장 기반을 구축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10개를 원하면 저는 11개를 했습니다. 동료들이 해결사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했죠. 실제로 이 회사는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 사무실을 철수하는 것이 조건이어서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보다 열 살이나 많은 데다 아이까지 딸린 기혼자였으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조건이었죠. 그래도 일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계속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미국 회사의 한국지사에서 오피스 매니저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어서 면접을 보러갔는데, 다른 지원자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을 보니 떨어지겠구나 싶었죠. 인터뷰를 하는데 사장님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묻더군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아무런 생각이 안 나다, 갑자기 남편과 아이 얼굴이 떠올라 “가정을 꾸린 게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죠. 집으로 돌아와‘왜 그런 대답밖에 못 했나’ 싶어 후회했지만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가정을 이룬 사람이 안정적이고 책임감도 있어서 뽑았다”고 하더군요.

    그 후 사장님이 영업직을 제안해 그때부터 세일즈 매니저로 살았습니다. 사장님이 “미세스 유, 한국 여성은 우수한데 왜 남자 서포팅만 하나. 영업 한 번 해보지 않겠나. 영업하면 연봉이 오르고 승진도 할 수 있다”고 하기에 자발적으로 영업을 택했는데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회사는 100억 원을 판다는 목표를 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100억 원을 파는 곳이었어요. 사장님에게 인정도 받고 일도 재미있었지만, 제가 취급한 품목이 대부분 수입금지 품목으로 묶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새로 구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다니던 미국 회사에서 영업 간부를 외부에서 채용할 때 이용하던 인력회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급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헤드헌팅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운 좋게도 평소 친분이 있던 사장님이 입사를 제의해 헤드헌터로서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헤드헌터로서의 첫 단추

    “자신의 천재성 흔들어 깨워 드림 잡(Dream job) 찾아라”
    처음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사무실에서 15명이 일했는데, 그중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전 미국 회사는 목표 실적을 채우려고 다들 악착같이 일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제 눈에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이 보였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후 나이키, 코카콜라, 샤넬, 월트 디즈니 등과 컨설팅 회사 같은 다국적기업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인재 찾는 일을 가장 어려워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인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손을 들어서 원을 크게 그려보세요. 대부분 시계 가는 방향으로 그리죠? 그런데 외국인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그린답니다.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커요. 저는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외국계 회사들의 설립 작업 과정에서 주요 인재들을 추천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무수한 외국계 기업과 일하며 신뢰를 쌓다 보니 그들 사이에서 “사람 찾기 어려우면 미세스 유를 찾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점점 자신감이 붙고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전략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2003년 최고의 클라이언트와 최고의 후보자만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구직자들은 하나같이 나와 잘 맞는 직장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많이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뭘 하고 싶고, 뭘 잘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대학 1, 2학년 때는 신나게 전략적으로 놀라고 권합니다. 이 시기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뭘 잘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대학 1, 2학년 때 자기 탐구를 하고 3, 4학년 때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인턴 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일을 확인해봐야죠. 이렇게 드림 잡(Dream job)을 찾고 나면 향후 30~40년간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20대는 천직을 찾는 시기입니다. 천직은 하늘에서 이런 일을 하라는 부름을 주는 것으로, 사명감을 갖고 찾아야 합니다. 꼭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천직은 아니에요. 중소기업, 비정부기구(NGO)에 취업할 수도 있고 창업을 할 수도 있죠.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30대는 어떤 곳에서 일하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찾을 정도로 경력과 능력을 갖춰야 하죠. 40대에는 어떤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올라야 합니다. 별을 달아야 하는 거죠. 50대는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하고요. 그러니 로드맵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의 차이는 굉장합니다. 저는 비록 30대에 로드맵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때라도 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미래를 계획한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명품보다 더 좋은 건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 즉 걸작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분을 한 번 둘러보세요. 똑같이 생긴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걸작입니다. 모두 각자의 천재성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요. 자신 속에 잠자는 사자를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천재성을 흔들어 깨워야 하는 거죠.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