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8

2013.07.29

친인척 재산은 全씨가 빼돌린 돈?

검찰, 전두환 씨 일가 1조 원대 추정…미술품·증권 등 새 은닉처 발견에 수사 주력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김재형 동아일보 인턴기자·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repg000@naver.com

    입력2013-07-26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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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인척 재산은 全씨가 빼돌린 돈?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사흘째인 7월 18일 오전 경기 파주시에 있는 장남 재국 씨의 출판사 시공사에서 압수한 미술품들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압수한 작품들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군부독재의 묵은 체증은 언제쯤 가라앉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2205억 원 선고가 있은 지 어언 16년. 하지만 환수 금액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추징금을 낼 돈이 없노라”고 잡아떼 온 그와 그의 가족은 이후에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았고, 그럴수록 국민의 불만은 거세져만 갔다.

    ‘전두환의 숨겨둔 재산 찾기’에 새로운 불씨를 지핀 건 박근혜 정부다. 추징금 환수 공소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범죄에 따른 수익인 줄 알면서도 취득한 제3자의 재산도 몰수할 수 있게 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일명 ‘전두환 추징법’)이 6월 27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전두환 추징금 환수 전담팀’(추징금 환수팀·팀장 김형준)을 꾸리며 추징 의지를 다진 검찰은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자 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친인척 20여 명을 출국금지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전 전 대통령의 자택과 큰아들 재국 씨 소유의 ‘허브빌리지’ 등 17곳을 압수수색해 고가 미술품 140여 점과 도자기 30여 점, 재국 씨 자택에 있던 불상까지 압수했다. 특히 압수한 미술품 중에는 유명 화백 이대원의 작품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화백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홍익대 총장을 지낸 원로작가로, 그의 작품은 점당 1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징금 환수팀은 “7월 23일 현재 전두환 일가의 증권거래 명세를 수사 중이며 은행 대여금고를 압수해 고가 귀중품과 거액 통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친인척 재산은 全씨가 빼돌린 돈?
    “전 재산 29만 원” 기가 막혀

    전 전 대통령이 반란과 뇌물수수죄 등으로 무기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은 시점은 1996년 4월이다. 공소시효는 3년. 따라서 당초 그의 추징금 환수 시효는 1999년 4월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분할 추징’ 방식으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시효를 늘려갔다.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 집행사무규칙’에 따르면, 추징금을 단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추징금 공소시효 만기일이 자동 연장된다. 검찰은 환수 시효를 연장함으로써 숨은 재산을 찾을 시간을 벌어온 것. 그런 방식으로 2013년 5월까지 추징한 금액은 모두 532억7348만4436만 원이고, 올 10월이 공소시효 만료 시점이었다. 6월 말 국회는 공소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추징금을 대규모로 환수한 첫 사례는 1997년 전 전 대통령의 무기명채권 188억 원과 그에 대한 이자 100억 원을 몰수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일로, 단일 추징금 사례로는 최고액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2000년이 되자 두 번째 추징 시효가 다가왔다. 그러자 검찰은 전두환 소유의 벤츠 자동차와 재국 씨 명의의 콘도회원권 등을 경매에 올려 2억2000만 원가량의 추징금을 거둬들인다.

    친인척 재산은 全씨가 빼돌린 돈?
    장남 재국 씨 재산 약 600억 원

    친인척 재산은 全씨가 빼돌린 돈?

    7월 17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시공사 사옥.

    2004년 검찰은 또 다른 대규모 추징금 환수 기회를 잡았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당시 불거졌던 불법 대통령선거(대선) 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와중에 전두환 비자금을 포착한 것. 당시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167억 원(무기명채권 73억 원 포함)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증여세를 포탈한 것이 들통 나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2007년 대법원이 해당 돈이 ‘전두환 비자금’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음에도 검찰은 추징에 실패했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130억 원을 추징금으로 납부했고 다른 친인척 이름으로 70억 원을 대납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씨 명의의 연희동 별채를 경매로 넘겨 16억 원 상당의 추징금을 더 거둬들이기도 했다.

    2006년 참여정부 때는 서울 서초동에 있던 전 전 대통령 명의의 땅을 찾아내 1억 원 상당의 추징금을 더 거둬들인다. 검찰은 당시 전 전 대통령의 가재도구와 진돗개까지 챙겨 추징금을 환수했으나 지금까지 전체 추징금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금액만 거둬들였을 뿐이다. 아직까지 미납된 추징금은 총 1672억2651만5564원. 17년 동안의 추징 결과치고는 미흡한 수준이다.

    이런 결과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에게 추징 의지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 성난 여론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좀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총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전 전 대통령의 말과 달리 그의 일가 친인척들이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산을 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형성했다는 점도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 각종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된다.

    검찰은 최근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조 원에 다다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들은 모두 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됐다.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와 그의 부인 홍정녀 씨는 전 전 대통령 ‘곳간지기’와 ‘5공녀’라 불리며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전담 관리한 인물로 알려졌다.

    현재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전 전 대통령의 자녀는 재국 씨다. 그는 국내 메이저 출판사로 손꼽히는 ㈜시공사의 대표이사로, 2011년 기준 시공사의 자산총계는 약 296억 원이다. 시공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재국 씨는 단순계산으로 자산 148억여 원을 보유한 셈이다. 그는 이 밖에도, 국내 최대 허브농장 ‘허브빌리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시공사 계열사가 위치한 경기 파주시 인근에 상당한 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민주당은 “재국 씨가 최소 30억 원 이상을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로 빼돌렸다”고 주장한다. 모두 합하면 재산이 600억 원에 다다를 것으로 추정된다.

    차남 재용 씨는 2004년 200억 원의 조세포탈 혐의를 받았는데, 어머니 이씨가 대납했다. 하지만 당시 재용 씨 명의의 채권 73억5500만 원은 환수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1992년 서울 반포동 신반포아파트 45.6평을 매입했다가 1년 뒤 시공사 계열사의 사업본부장을 지낸 전모(55) 씨에게 팔았다. 이 건물은 나중에 전 전 대통령 장녀 효선 씨에게 넘어갔는데, 이는 가족 간 거래에 제3자를 끼워 넣는 전형적인 ‘명의세탁’ 방식이다. 재용 씨는 현재 부동산개발 업체 비엘에셋 대표이사로, 검찰은 그의 자산총액이 400억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처남 이창석 씨, 비자금 관리 의혹

    3남 재만 씨는 서울 한남동에 고가 빌딩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재미동포 언론인 안치용 씨는 저서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재만 씨가 장인인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1000억 원대 와인양조장을 운영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40억 원 상당의 경기 안양시 소재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장녀 효선 씨, 37억 원대인 서울 연희동 자택 안채를 소유한 부인 이씨, 자택 별채를 12억5000만 원에 양도받은 셋째 며느리 이윤희 씨도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 관리자로 의심받는다.

    이창석 씨는 1988년 전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마자 바로 비리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자신이 경영하던 ㈜동일의 자금 10억700여만 원을 빼돌려 유용한 사실이 들통 났던 것. 그는 이후에도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을 배후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추징금 환수팀이 조사에 들어간 첫날, 이씨는 재용 씨와 함께 주유소 사업을 하며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을 사 검찰에 불려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과 도곡동, 경기 이천에 위치한 각 주유소 땅의 소유자 명의는 이씨의 부인 홍정녀 씨와 재용 씨의 삼원코리아, 전 전 대통령의 사돈 윤광순(79) 씨 등 모두 전 전 대통령과 연관된 사람 또는 그들이 세운 법인이다. 이 때문에 주유소 땅을 매입하는 데 쓴 종잣돈은 ‘전두환의 비자금’이며, 실질적인 운영은 재용 씨가 하는 것으로 의심받는다. 이씨와 재용 씨가 협력해 ‘전두환 비자금’을 세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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