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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이가 무슨 상관 우린 레포츠 중독자거든

치과의사 인라인동호회 ‘덴틴(Dental Inline club)’…50~60대 회원들 4계절 내내 익사이팅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나이가 무슨 상관 우린 레포츠 중독자거든

나이가 무슨 상관 우린 레포츠 중독자거든

6월 27일 정기모임에서 함께 인라인스케이팅을 즐긴 ‘덴틴’ 회원들. 왼쪽부터 원덕희, 김재형, 권금희, 윤일중, 김봉현, 박영준, 김진아 씨와 이들의 자녀들.

“2000년대 초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고 중반에 전성기를 맞았다. 인기 절정일 때 한강으로 로드 런(road run)을 나가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줄이 수km씩 이어져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김재형 원장)

“전성기 때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 인라인스케이트 인구가 300명씩 몰렸다. 서로 부딪치고 다치는 일도 많아 앰뷸런스가 하루 2~3번씩 출동할 만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윤일중 원장)

“초보 때는 서울 잠실에서 반포까지 왕복 20km를 끌려가다시피 했다. 지금은 로드 런을 나갔다 오면 기분이 달라진다. 출발할 때는 언제 반환점을 도나 싶지만, 달리고 나면 완주했다는 성취감이 엄청 크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중독성이 있다.”(박영준 원장)

한강 로드 런 그 짜릿한 시간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모처럼 인라인스케이트(인라인)를 탈 기회를 놓쳐버린 50~60대 남자 10명이 주점에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 내 인라인동호회 ‘덴틴(Dental Inline Club)’의 핵심 멤버들이 실로 오랜만에 가진 정기모임(정모)이었다. 2003년 6월 출범한 덴틴은 취미, 문화예술, 컴퓨터, 학술연구 등 70여 개 클럽이 활동 중인 치협에서 대표 클럽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현재 치과의사와 가족 외의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넓혀 온라인 회원 200여 명을 두고 있다. 김봉현 원장은 “시솝(운영자)인 박영준 원장이 클럽 홈페이지에 공을 들인 덕분에 댓글과 페이지뷰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모임이 활성화했다. 치협 여러 클럽 가운데 최고상을 받아 협회 차원의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며 고마워했다.



수많은 회원 가운데 매주 화·목요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정모에 꾸준히 참석하는 핵심 멤버는 개업 치과의 박영준 시솝을 비롯해 윤일중, 김재형, 원덕희, 김봉현, 서학원, 심재한, 이원창, 김인걸, 김진아 원장과 원 원장 소개로 2년여 전 합류한 영어과외교사 권금희 씨 등 11명이다. 권씨는 “아직도 로드 런을 나가면 멤버들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모임 결성과 함께 정식으로 인라인을 배우기 시작한 회원들을 가르친 사람은 윤일중 원장. 당시 윤 원장은 회원 중 유일하게 인라인 강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병원 진료가 끝난 뒤 강북, 심지어 경기도에서 오는 회원들이 모두 평화의광장에 모여 인라인 강습을 하면 밤 11시가 넘어야 끝났다. 박영준 원장은 “윤 선생님은 회원들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강습 전 헬멧과 무릎보호대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인라인스케이트를 아예 신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엄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철저한 가르침 덕에 박 원장은 강사 자격증을 땄고 이후 신입 회원들을 상대로 기초훈련 강습에 나섰다. 윤 원장은 로드 런 강습에 집중했다.

맹훈련을 거친 회원들은 강습 시작 3개월 뒤 서울 잠실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20km를 왕복하는 첫 한강 로드 런에 나섰다. 뒤늦게 합류해 두 차례 강습만 받고 로드 런에 나섰다는 김봉현 원장은 “모임 가입 전부터 아이들과 인라인을 탔기 때문에 ‘강습에서 뭘 더 배울 게 있나. 그냥 달리면 되지’라고 만만하게 봤다. 첫 로드 런 이후 장시간 인라인을 탈 때는 기본자세가 중요하고, 기초가 튼튼해야 힘이 덜 들고 다칠 위험도 적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운동하다 과로사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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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진 인라인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덴틴 회원들. 2 도예가로 전시회를 다섯 번 가진 서학원 원장(오른쪽). 3 윤일중, 김봉현, 김재형 덴틴 회원과 가족들.

생애 첫 장거리 로드 런을 무사히 마친 후 의욕에 불탄 회원들은 여세를 몰아 모임 발족 4개월 만에 충남 당진에서 열린 인라인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참가자는 박영준 원장을 비롯해 원덕희, 심재한, 고창관, 윤성태 원장과 가족 10여 명이었다. 20km 하프코스에 도전해 회원 가운데 최고 기록을 세운 이는 윤 원장이었다. 윤 원장과 고 원장은 초창기 회원으로 현재는 모임 활동에서 빠진 상태다. 박 원장은 “회원들 다리에 쥐가 나서 고생을 좀 했지만 생애 첫 마라톤대회 출전에서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전원 무사히 완주한 것에 만족했다”고 회상했다.

50~60대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회원들은 인라인 외에 계절에 따라 스키, 윈드서핑, 패러글라이딩, 스킨스쿠버, 웨이크보드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긴다. 인라인에서 출발해 다양한 레포츠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던 건 회원 중에서 강사를 자체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원 가운데 열혈 스포츠 마니아인 윤일중, 김재형 원장이 윈드서핑과 패러글라이딩 강사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윤 원장은 스키, 김 원장은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갖고 있다. 윤 원장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습은 무조건 공짜다. 그 대신 식사 대접을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그는 “처음엔 인라인을 신고 서지도 못했던 사람이 한강변을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박영준 원장이 인라인 강사자격증을 딴 건 큰 보람”이라고 했다.

같은 치과대 동기이자 40년 지기인 김재형 원장과 대학 산악반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레포츠 활동을 즐겨온 윤일중 원장은 “운동하다 과로사하겠다”고 농담할 정도로 사계절 내내 운동에 빠져 지낸다.

“스키를 탄 지 40년이 넘었다. 초창기 때는 용평스키장도 없었고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만 스키를 타곤 했다. 스키장 대신 강원 횡계의 30~40m 높이 언덕에서 스키를 탔는데, 리프트가 없던 시절이라 꼭대기까지 장비를 메고 걸어 올라갔다. 나중에 집 근처에 천마산스키장이 생기면서 겨울이면 매일 스키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진료가 끝나고 집에 들러 저녁을 먹은 뒤 스키장에 가서 밤 11시까지 야간스키를 탔다. 그때 강사자격증을 땄는데 ‘뭔가 목표가 있으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 해서 도전했다.”

국내에 스노보드가 등장한 초창기, 학회 참석차 방문한 일본에서 관련 비디오를 구해 독학으로 기술을 익힌 김재형 원장은 “어릴 때 기계체조를 했고 고교 시절에는 스케이트 선수로 뛰었는데, 운동하는 사람은 뭔가 하나를 배우면 한 단계 도약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해냈다는 그 맛을 못 잊어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된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외발자전거 등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스포츠에 많이 도전한 그는 자칭 ‘스포츠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 그는 어느 날 용평스키장에서 큰 원통형 파이프를 반으로 나눈 모양의 슬로프 양측 끝 정점에서 점프 턴(Jump Turn)을 하며 기술을 발휘하는 하프파이프(스노보드 종목)의 고난도 기술을 연마하다 활강 도중 균형을 잃고 머리부터 떨어져 슬로프에 세게 부딪친 적이 있다. 김 원장은 “그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다행히 기절하진 않았는데 눈 주위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2주간 고생했다. 마침 겨울방학 때라 환자가 많았는데, 멍든 걸 눈치 챌까 봐 자꾸 눈길을 피하니까 이상하게 보더라. 그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 하는 걸 절감했다”고 했다. 뜨거운 여름날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다 엉덩이로 잘못 떨어져 그 충격 때문에 숨이 턱 막힌 아찔한 순간도 경험했다. 당시 덴틴 회원은 아니었지만 다른 패러글라이딩 팀원 2명은 착지 때 뼈가 부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김 원장은 “몇 차례 위험한 순간을 겪으면서 2~3년 전부터 고난도 기술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처럼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더라. 그래도 술 마시는 것보다 스포츠에 투자하는 게 건강에 더 좋고, 운동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운동은 잠시나마 동동대는 현실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게 해준다”고 했다.

“눈빛만 봐도 이심전심 통할 만큼 회원끼리 친하고 끈끈하다”는 김인걸 원장은 그들과 함께 윈드서핑과 스키를 즐길 뿐 아니라, 스킨스쿠버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바닷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부력으로 몸 전체 땀구멍에서 노폐물이 빠져 나오는데 엄청 홀가분하고 정화된 느낌이 든다. 10m 정도 내려가면 파도가 없어 물속이 아주 조용하다. 산책하듯 한가롭게 노닐다 보면 도 닦는 기분마저 든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속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스킨스쿠버는 마력이 있다”고 했다.

한편 검도 공인 4단인 원덕희 원장은 병원 출근 전 이틀에 한 번꼴로 검도장에 들러 한 시간 정도 몸을 푼다. “검도를 한 지 15년 정도 됐는데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인 것 같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그는 7월 한국사회인검도연맹이 주최하는 전국사회인검도대회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 6일 근무에 늦게까지 환자가 밀려들 때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바쁘고 피곤하게 살아가는 치과의사들이 ‘중독’ ‘마력’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레포츠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박영준 원장은 “직업상 앉아서 환자를 보는 일이 많다 보니 치과의사 대부분이 등이 아프고 어깨 통증이 많다”고 했다.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어깨와 허리 통증이 심해 물리치료를 받던 중 2006년 덴틴에 합류한 이원창 원장은 “물리치료를 받기 전까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누군가 ‘인라인을 타니까 좋더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인라인을 탄 뒤로 잔병치레가 없어졌다. 회원들과 함께 윈드서핑도 하는데 덴틴에 합류하면서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기쁨을 알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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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김재형 원장.

땀 흘리는 기쁨 이제야 알아

함께 운동을 즐기는 것 외에 다양한 취미와 독특한 이력을 가진 회원들도 있다. 여러 차례 전시에 참가한 중견 도예가 서학원 원장은 최근 목공예 매력에 푹 빠졌다. “나무로 샤프나 볼펜 외장을 깎는데, 지금까지 100개 정도 만든 것 같다. 혼자 앉아 뭔가에 몰두하는 일을 좋아해서 도자기와 목공예를 취미로 삼았다”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연극동아리(연희극회)에서 활동한 원덕희 원장은 한국연극배우협회에 등록한 배우이자 극단 노을 소속으로, 1년에 한두 차례 무대에 오른다. 그동안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서 의사 역, 손턴 와일드의 ‘우리 읍내’에서 노박사 역,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광대 역을 맡았다.

김재형 원장과 서학원 원장은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왔다. 2004년 경기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은 김 원장은 집이 완공될 무렵 한 목사 부부와 인연이 닿아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 7명에게 집을 선뜻 내줬다. 주말이면 부부가 서울과 양평을 오가며 김 원장은 아빠 노릇을 하고 아내는 요리사로 변신해 아이들을 살뜰히 거뒀다.

김 원장은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일찌감치 재능을 발견해주려고 주위 전문직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스키, 피아노 등 예체능을 두루 익히게 해줬는데 그사이 아이들이 자라 2명이 마이스터고교에 진학했다. 조리학교에서 한식을 배우며 해외 취업의 꿈에 부푼 아이도 있다. 이미 취직이 확정된 한 아이는 졸업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며 대견해했다. 8년여 동안 김 원장 부부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올해 초 목사 부부를 따라 보금자리를 옮겼다.

한편 서학원 원장은 14년째 올림픽공원 근처 복지관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료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군 입대 전까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그는 제대 후 한참 동안 봉사활동을 잊고 살았다. 그 대신 골프 재미에 푹 빠져 살았는데, 어느 날 골프가 더는 재미없었다. 그는 “골프를 그만두면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복지관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문을 보고 예전 기억을 떠올려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는 숨 쉬고 사는 일처럼 일상인 것 같다”고 했다.

“노는 것도 모여서 놀아야 재미있다”고 말하는 덴틴 회원들은 최근 의기투합해 새로운 종목에 도전 중이다. 7월 중순 자전거를 타고 7080세대의 대학 시절 추억과 낭만이 서린 강원 강촌 길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로드에 나서기로 한 것. 이를 위해 회원들은 최근 자전거 공동구매에 나섰다. 박영준 원장은 “앞으로 우리 회원들이 어떤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



주간동아 2013.07.15 896호 (p36~38)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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