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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인비 전성시대

필드를 지배한 세리 키즈들

박인비·신지애·최나연 등 한국 여자골퍼들 LPGA 최강자로 자리매김

  • 주영로 스포츠동아 레저경제부 기자 na1872@donga.com

필드를 지배한 세리 키즈들

필드를 지배한 세리 키즈들

박세리와 함께한 세리 키즈들. 윤채영, 임지나, 유소연, 박세리, 신지애, 최나연(왼쪽부터).

박인비(25·KB금융그룹)의 대기록 달성으로 한국 여자골프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 LPGA) 투어에서 8승(14개 대회 종료 기준)을 합작했다. 박인비 6승, 신지애(25·미래에셋 자산운영)와 이일희(25·볼빅 골프단)가 1승씩을 더했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한국 여자골프의 비결은 무엇일까.

“(전 재산을 털어 골프를 배웠다는) 아빠 말씀을 듣고서 ‘골프가 내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골프가 제 인생에 벼랑 끝 승부수가 된 거죠.”

신지애는 몇 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프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털어놨다. 말처럼 신지애는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힘들게 골프를 배우던 중 더 큰 아픔을 겪었다. 신지애가 중학생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 동생도 크게 다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더는 골프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신지애 아버지는 그러나 더 독하게 마음먹었다.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딸의 골프 연습비용으로 사용했다. 새 골프채를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는 비용으로 썼던 것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그 보상금으로 골프선수의 꿈을 키운 신지애는 아픔을 뼈에 새긴 채 골프에만 전념했다.

최나연(26·SK텔레콤 스포츠단)의 아버지는 딸에게 골프를 가르치려고 모든 걸 바쳤다. 하던 일까지 포기하고 딸 뒷바라지에만 전념했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딸이 반드시 골프선수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나연은 어린 시절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는 “주니어 시절 어느 대회에 나갔을 때다. 나만 여관방에서 자고 아빠는 차에서 주무셨다. 그때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돈이 없어 방을 하나만 빌린 사실을 알게 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 골프대디의 헌신

5월 바하마 클래식에서 L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한 이일희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집안형편도 좋지 않았고 LPGA 투어 진출 초기엔 돈도 제대로 벌지 못했다. 자연스레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비를 줄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값이 싼 비행기를 골라 타고 다녔고, 호텔에서 자는 게 부담스러워 무료로 방을 빌려주는 ‘하우징’을 이용하기도 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놨다.

힘들었던 과거는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멘털 스포츠인 골프에서 강인한 정신력만큼 큰 무기는 없다.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의 성공신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그 성공신화에서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박세리 아버지는 원조 골프대디로 통한다. 그는 혹독하게 딸을 훈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스토리는 ‘공동묘지 훈련’이다. 담력을 키우려고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찾아갔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만큼 박세리 아버지는 딸에게 엄했다.

박세리의 성공 뒤에 아버지가 있듯, 한국 여자골프의 성공스토리에서 골프대디의 구실을 빼놓을 수 없다. 골프대디는 1인 다역을 맡는다. 그들은 때론 엄한 코치가 되기도 하고, 필드에선 20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캐디가 되기도 한다. 또 경기가 끝나면 운전사, 매니저, 요리사가 된다.

#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 효과’

필드를 지배한 세리 키즈들
한때는 이런 골프대디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극성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골퍼의 성공으로 한국식 골프대디에 대한 시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외국 선수들도 한국식 골프대디를 본받고 있다. 폴라 크리머, 모건 프레슬 등 아버지와 함께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가 많아졌다.

“전설이라고 부르는 (박)세리 언니를 보고 나뿐 아니라, 모든 한국 선수가 영감을 받았다. 나도 (세리 언니처럼) 그렇게 되고 싶었다. 앞으로 목표는 세리 언니처럼 되는 것이다.”

최나연의 2012년 US여자오픈 우승 소감이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시대를 활짝 연 주인공은 ‘세리 키즈’다. 이들은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을 펼치며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장면을 보고 골프에 입문했다. 대부분 초등학교 3~5학년 어린 학생이었다. 박인비, 신지애, 김인경(25·하나금융그룹), 김하늘(25), 이보미(25·정관장)는 88년생 동갑내기다. 87년생인 최나연, 90년생인 유소연(하나금융그룹)도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세리 키즈’다.

박세리라는 우상을 보고 골프에 입문한 세리 키즈는 확실한 목표를 지녔다. 바로 LPGA 투어 진출이 그것이다.

박세리는 국내 골프 환경에 큰 변화도 가져왔다. 골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이 이때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해외 유명 골프코치들이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국내 지도자들도 해외 연수 등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

박세리 시대는 지금과 달랐다. 무조건 연습하고 땀 흘리는 것만이 최고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리 키즈는 달랐다. 전담코치와 전문캐디는 물론, 체력을 관리하는 트레이너, 멘털 코치 등도 따라붙어 체계적인 선수 육성 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세리 키즈는 빠르게, 그리고 무섭게 성장했다. 그리고 이미 박세리를 넘어섰다. 신지애는 2009년 LPGA 진출과 동시에 신인왕과 상금왕을 휩쓸었다. 한국 선수로 LPGA 투어 상금왕을 차지한 건 신지애가 처음이다. 그는 이듬해 5월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오르며 한국 여자골프의 두 번째 전성시대를 열었다.

2010년엔 최나연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상금왕에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까지 거머쥐면서 LPGA를 평정했다. 2012년엔 신지애, 최나연에 이어 박인비가 주역으로 떠올랐다. 상금왕과 베어트로피를 품에 안았던 그는 올해 타이틀 독식을 노린다.

# 조기교육과 국가대표 시스템

‘한국 골프는 왜 강한가.’ 3년 전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 같은 내용을 집중 취재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김경태(27·신한금융그룹)와 안선주(27·투어스테이지)가 남녀 투어를 석권하며 한국 돌풍을 주도했다. 일본 골프 시장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스타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일본이 내린 결론은 한국의 국가대표 시스템이었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대한골프협회를 찾아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을 집중 취재했다. 실제로 한국 골프를 이끄는 주요 선수들은 대부분 국가대표를 거치며 성장했다. 박세리, 김미현(36), 장정(33·볼빅 골프단), 최나연, 신지애, 안선주(26·투어스테이지), 유소연 등이 모두 국가대표를 거친 스타들이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은 국내 오픈대회 우승의 90%를 차지할 정도 맹활약한다. 국가대표는 선발 과정부터 치열하다.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려고 숱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승부욕과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한편 한국 여자골프가 오랫동안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려면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줄리 잉크스터(54), 캐리 웨브(39), 카트리오나 매슈(44)는 20~30년간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지금도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며 20대 선수들과 경쟁한다. 반면, 우리 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에 집중돼 외국 선수에 비해 조로 현상을 보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니어 시절부터 이어져온 많은 연습량, 성적에만 집중하는 경기 방식, 부모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리고 성공 이후 헝그리정신의 실종 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주간동아 2013.07.08 895호 (p58~59)

주영로 스포츠동아 레저경제부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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