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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제습기의 불편한 진실 02

습도 낮추면 병이 안 생긴다고?

‘각종 전염병 억제와 예방’은 과장…민감한 체질, 백혈병 환자 등은 제습기 필요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습도 낮추면 병이 안 생긴다고?

습도 낮추면 병이 안 생긴다고?

야외에서 날리는 꽃가루(위)와 집 안에 핀 곰팡이는 각종 감염병의 한 원인이 된다.

“요즘 정말 상술이 과하죠. 습도만 낮추면 진드기, 곰팡이(진균)로 인한 감염병을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각 병원에서 모두 제습기를 들여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조한 게 훨씬 문제죠. 각 병원이 가습기는 모두 갖춰도 제습기를 쓰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습니다.”

요즘 제습기업계가 ‘진드기와 곰팡이로 인한 각종 감염병을 억제 또는 예방할 수 있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등 ‘건강 마케팅’을 하는 데 대해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김 교수는 6개월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하는 등 국내 감염병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는 명의다.

제습기업계가 제습기를 사용하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광고하는 건강상 편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습도를 낮춤으로써 진드기와 곰팡이로 인한 각종 감염병을 억제 또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불쾌지수를 떨어뜨림으로써 짜증을 줄이고 집중력을 향상하며 일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세 번째는 쾌적한 수면 환경을 만들어 잠을 잘 잘 수 있게 한다는 것 등이다.

진드기와 곰팡이로 인한 감염병은 그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균성(칸디다성) 폐렴 등 극소수의 치명적 질환을 빼면 생활형 만성질환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면역질환(알레르기 질환)이 대부분이다. 진균성 피부염의 한 종류인 무좀과 천식, 알레르기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수족구, 칸디다성 질염, 칸디다성 폐렴, 칸디다성 구내염이 그것이다.

‘과도한 습도가 각종 감염병 확산의 주범’이라는 제습기업체들의 주장에 대해 의학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반박한다. 먼저 진드기와 곰팡이의 실내 서식률이나 번식률이 폭증하는 데는 습도가 큰 몫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기온과 채광 정도, 청소 횟수와 질 등 관련 요소가 무척 많다는 것. 제습기는 습도와 체감온도를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실제 온도계 측정상의 기온을 높이는 효과(15쪽 참조)가 있어 제습기를 쓴다고 해서 진드기와 곰팡이가 100% 제거된다는 보장은 없다.



진드기와 곰팡이 100% 제거 불가능

더욱이 진드기와 곰팡이는 주거공간뿐 아니라 식당, 회사 사무실, 숲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즉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부 접촉이나 호흡기 감염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이 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신체 내의 질병 방어기제인 면역력 때문이다. 같은 환경에서 일하거나,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라도 어떤 이는 감염병에 걸리는 반면 다른 이는 걸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천식과 알레르기성 질환은 특정 항원(알레르겐), 즉 진드기나 진균에 면역체계가 과잉반응해서 생긴 면역질환이므로 함께 노출됐다 해도 모두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비록 어떤 제습기가 진드기와 곰팡이를 100% 제거한다고 해도 1년 365일을 집 안에서 살거나 제습기를 들고 다닌다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진드기와 곰팡이로 인한 감염병이 걱정된다면 평소 음식을 골고루 먹고 금연, 절주하면서 적당한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편이 비싼 돈을 들여 제습기와 에어컨을 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비누로 손을 자주 씻고 입 주변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는 게 감염병을 예방하는 첫 번째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제습기업계는 또 한편으로 습도가 높으면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피부는 습기가 충분히 제공될 때 가장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은 기초상식에 속한다. 모든 기능성 화장품의 첫 번째 목표가 피부의 수분 유지인 점을 고려하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만일 제습기업체들이 말하는 피부 트러블이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질환의 기전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광고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앞에서도 밝혔듯 알레르기성 질환은 항원에 대한 면역체계의 과잉반응이므로 알레르기성 피부염도 습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체질에 따라 발병 여부가 결정되는 질환이라고 봐야 한다.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집중력을 분산시킨다는 불쾌지수도 마찬가지다. 불쾌지수의 사전적 정의는 날씨에 따라 사람이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이용해 나타내는 수치로, ‘불쾌지수=0.72(기온+습구온도)+40.6’으로 계산한다. 불쾌지수가 70~75이면 일반 사람 약 10%, 75~80이면 약 50%, 80 이상이면 대부분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정의와 공식을 봐도 습도만 낮춘다고 불쾌지수가 내려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습기를 쓰면 분명히 습도는 확 떨어지지만, 실제 기온은 오히려 올라가므로 불쾌지수가 극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불쾌지수는 기상학에서 쓰는 개념일 뿐 의학적으로 확정된 명제가 아니다. 그래서 기온 외에 햇빛 양이나 통풍 정도 등을 불쾌지수 계산에 변수로 넣는 나라도 있다. 그리고 각 국가, 인종마다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습도 정도가 다르기도 하다. 습도가 낮을수록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것은 관련 논문조차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습도 낮추면 병이 안 생긴다고?

밤마다 계속되는 열대야를 피해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를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습도 낮다고 숙면하지는 않아

다음은 수면과 습도의 문제를 따져보자. 일반적으로 습도가 70% 이상 올라가면 수면에 지장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불쾌지수 개념과 마찬가지로 수면에 지장을 주는 것은 습도만이 아니다.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첫 번째 요인은 기온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신체의 발열대사 작용(땀, 소변 등)에 지장이 생겨 체온의 향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열대야에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열대야는 일일 최고기온이 30도 이상인 한여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밤 동안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기록해 잠을 청하기 힘든 여름밤을 가리킨다.

국내 수면의학의 대가인 박동선 박사(수면의학 전문의, 숨이비인후과 수면클리닉 원장)는 “습도를 40~60%로 유지해 불쾌지수가 낮아졌다고 잠을 잘 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을 못 자는 이유는 유전적 요인, 호흡기의 해부학적 구조, 호흡기 염증, 뇌신경계 이상 등 무척 다양하다. 습도를 내리면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은 상술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김우주 교수는 “제습기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습도에 면역학적으로 아주 민감한 체질인 사람, 백혈병 등 진드기와 곰팡이로 인한 각종 감염병에 취약한 질환에 걸린 환자, 백혈구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천식 환자 등이다. 반지하나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주거공간에 사는 사람은 에어컨 등 별다른 제습장비가 없을 경우 제습기를 사용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주간동아 2013.07.08 895호 (p16~17)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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