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데이터 속의 욕망 읽기 난, 21세기 마음 광부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3-07-08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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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속의 욕망 읽기 난, 21세기 마음 광부다”
    월요일 아침 서울 지하철 안은 우울한 기운으로 가득 찬다. 금요일이 되면 반대로 행복 에너지가 대기 가득 퍼져나간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사진)이 동료들과 함께 트위터 메시지 5억 건을 분석한 결과다. 그는 사람들이 트위터에 올린 글 가운데 ‘좋다’ ‘슬프다’ ‘신난다’ ‘우울하다’ 같은 단어를 뽑아낸 뒤 이를 요일별로 분류했다. 그 결과 사용자가 긍정적인 기분을 언급하는 비율은 월요일에 68.5%로 가장 낮고, 금요일엔 72.3%로 최고치였다.

    “그렇다면 우울증 치료제는 언제 광고하는 게 적절할까요. 사람들이 가장 우울해하는 월요일 출근시간에 하는 게 좋겠죠. 기분이 행복에서 우울로 반전되기 시작하는 토요일도 괜찮고요.”

    그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데이터를 분석해 대중의 정서를 읽고, 그것을 마케팅에 활용한다. 송 부사장이 ‘기분 분석’에 활용한 SNS 텍스트는 ‘빅데이터(Big Data)’의 한 종류다.

    최근 우리 사회에 빅데이터 열풍이 불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행정부처 및 관계기관이 빅데이터를 명시해 발주한 프로젝트가 20건이 넘는다. 6월 말 국회가 공공기관 빅데이터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관련 산업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 부사장은 “최근 들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 흐름을 읽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많아지는 걸 체감한다”고 했다.

    빅데이터 분석과 해석의 즐거움



    대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언어를 전공한 송 부사장은 일찍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소통 공간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 분석에 힘을 쏟았다. 1월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비즈니스 방안’에 대해 강연했을 만큼 자타공인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라이프스타일’ 조사 보고서도 그와 동료들의 작품이다. 이들은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29개월간 생성된 트위터, 블로그 등 SNS 데이터 36억여 건을 분석해 “오늘 한국인은 현재와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은 소비에 행복을 느끼며, 혼자 즐기는 데 익숙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송 부사장은 “과거에는 빅데이터 분석 자체가 큰 의미를 가졌다면, 최근에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느냐가 관련 연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건 정밀한 기술 시스템 구축이다. 한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구글의 독감 예보. 구글 사용자들이 검색창에 ‘발열’ ‘콧물’ ‘감기에 좋은 병원’ 등을 검색한 결과를 분석해 독감이 어디로 어떻게 확산돼가는지 발표하는 구글의 독감 예보 시스템은 매우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근 이러한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기술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송 부사장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트위터는 하루 500만여 건, 블로그는 한 달 1000만 건 수준을 분석한다”고 했다.

    온갖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와 스팸 데이터 사이에서 의미 있는 문장을 찾아내는 게 첫 단계다. ‘아이폰4S 디자인은 아이폰4랑 똑같아’ ‘내가 케옥이를 샀는데 디자인은 맘에 들지만 승차감은 영 좋지 않아’ 같은 문장을 보자. 첫 문장에서는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읽는다. 신제품이 옛날 제품과 비교해 다르지 않다는 게 칭찬일 리 없다. 두 번째 문장은 좀 더 복잡하다. ‘케옥이’는 기아자동차 ‘K5’를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 글 작성자는 이 승용차의 실구매자이며, 디자인에는 만족하지만 승차감에는 불만을 갖고 있음을 뽑아낼 수 있다.

    현대 기술은 컴퓨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구조화된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송 부사장은 “빅데이터 분석 기법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길고 두서없이 써내려간 한국어 텍스트들을 분석해 어떤 키워드가 나왔는지(발현), 그것이 늘었는지 줄었는지(추세), 어떤 키워드와 연관 있는지(연관성) 등을 계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빅데이터 분석이 이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다음 단계가 주목받는다. 결과물을 해석하고 실제로 활용하는 일, 나아가 새로운 흐름을 찾아내고 그것을 미래 계획에 적용하는 일이다. 송 부사장은 요리를 예로 들었다. 과거 사람들이 조리도구에서 원한 것은 편리성과 저렴함이었다. 요리는 엄마가 하는 일로 여겨지던 시절의 얘기다.

    “데이터 속의 욕망 읽기 난, 21세기 마음 광부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읽는다는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그러나 최근 세상이 바뀌었다. ‘야매요리’라는 웹툰이 인기를 끈 데서 알 수 있듯, 요리를 유희 대상으로 삼는 이가 늘면서 서툰 요리를 촬영해 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 됐다. 보기에 예쁘고, 사진 촬영이 용이한 조리도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요리에 대한 인식 변화를 파악한 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려면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평소 하는 말을 보면 관심사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산업이 나온다. 대중의 관심을 파악하면 어디서 어떤 비즈니스가 나올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송 부사장의 확고한 믿음이다. 그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일상의 언어 속에서 집단적인 흐름을 읽어내고, 나아가 미래의 모습을 전망하는 게 바로 통찰”이라며 “이 과정을 자동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직관력과 미루어 짐작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식 숭상과 노동 불강요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를 만드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송 부사장은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소프트 인력은 정보기술(IT) 전문가 70%와 인문·사회과학 전문가 30%로 구성됐다고 한다. 전산언어 전문가로 데이터 분석을 시작한 송 부사장은 이후 점점 인문학적 통찰에 대한 이해를 높여, 지금은 다음소프트에서 이 분야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은 2000년 기사에서 ‘25년 후 가장 높은 급여를 받을 직업’ 중 하나로 ‘데이터 마이너(data miner·데이터 광부)’를 꼽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인용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가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직업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두 직업은 모두 다음소프트에서 후자에 속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 부사장이 쓰는 용어는 좀 다르다. 그는 스스로를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마음 광부)’라고 불렀다. 데이터 안에 담긴 대중의 마음, 정서, 욕망을 읽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통찰력을 갖기 위해 그는 끝없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했다. 직원들에게도 그것을 권한다. 다음소프트 사무실 중앙에는 누구든 원하는 책을 뽑아 읽고, 원하면 갖고 갈 수 있는 대형 서가가 놓여 있다. 송 부사장은 “직원들이 원하는 책을 신청하면 구매해 꽂아놓는다”며 “우리 회사의 특징은 지식 숭상과 노동 불강요”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길, 그가 지난해 펴낸 저서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 빅데이터가 찾아낸 70억 욕망의 지도’라는 책 앞장에 사인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데이터 속의 사람을 봅니다’라는 문장을 반듯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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