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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원치 않은 남재준의 ‘오버 행진’?

국정원장에 이슈 집중 민생 현안 묻혀…경계선 넘나드는 활동 반경도 위험신호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원치 않은 남재준의 ‘오버 행진’?

원치 않은 남재준의 ‘오버 행진’?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6월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된 인물들은 국정원 직원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주말, 한 부처에서 보고한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 동향이 단연 이슈가 됐다. 6월 하순 한 주 동안 언급된 국정원 관련 트위트 중 부정적인 내용이 70%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긍정적인 언급은 20%도 되지 않았다. 대화록을 공개한 6월 24일에는 트위트 수가 10만 건을 훌쩍 넘었다. 겉으로는 모른 척해도 이 정도 수치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7월 초 한 청와대 관계자가 전한 내부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전후해 최대한 말을 아껴왔지만, 속으로는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당국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큰 고심거리”라고 촌평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에게 모든 이슈가 집중되는 현재 상황이 청와대로서도 달가울 리 없다는 속내다. 작게는 외교안보라인 내부, 크게는 정국 전반의 균형추가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급격히 기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러한 흐름의 계기로 꼽는 시점은 6월 중순 남북 당국회담 논의 과정이다. 격(格)과 급(級)을 명분으로 회담 무산을 불사한 당시 결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당사자가 바로 남 원장이라는 것. 남북회담에 나오는 양측 대표의 직책문제를 두고 ‘잘못된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처음 아이디어를 제기한 것은 청와대 내 관련 부서였고, 수석대표로 통일부 차관을 내보내겠다고 북측에 통보하는 구체적인 안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밀어붙였지만, 6월 10일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는 남 원장의 ‘강경한 태도’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는 설명이다.

정국 균형추가 기우는 모양새

최근 국정원이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 아니냐는 위험신호도 감지된다. 6월 20일 YTN은 지난해 9~12월 삭제된 트위터 계정 가운데 국정원 측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의심계정 10개를 복원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을 비판하는 트위트를 무더기로 찾아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오후 2시 뉴스 이후 더는 방송에 나가지 않았고, YTN노조는 국정원 측이 반론 기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내부 편집회의를 언급하는 등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6월 27일에는 학생들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준비하던 한 대학의 총장실에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동향을 물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학교 측은 다시 학생들에게 연락해 준비 움직임과 진척사항 등을 확인했다는 것. 국정원 측은 “최근 담당자가 바뀌어 인사차 총장실에 전화를 걸었을 뿐 학생들의 동향에 대해 물어본 것은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학교 측은 국정원 직원이 시국선언 관련 내용을 물었다고 인정했다.

가장 결정적인 사안은 단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다. 여야 공방이 한창인 와중에 터져 나온 남 원장의 돌발행동은 법적 정당성 여부부터 정보기관장으로서의 임무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독자적 판단”이며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는 남 원장의 발언은 정국의 초점이 국정원을 향해 쏠리는 계기가 됐다. 논의의 초점이 ‘원세훈 국정원’에서 ‘남재준 국정원’으로 옮겨가게 된 셈이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김장수 실장이 2007년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논의의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층 심화한 측면이 있다. 당시 국방부 장관 신분으로 노 대통령과 이 문제를 상의했고 정상회담 직후 열린 국방장관회담에 나섰던 김 실장으로서는 논란에 적극 나서기 곤란한 게 사실. 두 사람이 대화록 공개를 두고 사전에 교감을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당국자 사이에서도 시각이 엇갈리지만, 안보라인 내부의 균형추가 남 원장 쪽으로 급격히 기운 원인이 된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 일각에는 두 사람 사이의 균형관계를 주목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부 출범 초기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는 과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1등 대선 공신’인 김 실장과 남 원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휘둘리지 않을 인사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아웃사이더나 다름없던 김 전 부사령관에게 시선이 꽂혔다는 얘기다. 후보 지명 이후 지속된 언론과 정치권의 집요한 공세에도 청와대가 38일간이나 김병관 카드를 놓지 못했던 이유 또한 균형추 구실을 할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이어진다. 4성 장군 출신으로 그만큼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병관 후보자의 낙마로 당초 그림은 무위로 돌아갔고, ‘전임 정부 사람’으로 인식되는 김관진 장관의 입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남 원장의 활동 공간이 한층 넓어진 또 다른 배경이다. 후임 국방부 장관 인사를 언제 할지는 여전히 기약이 없다.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정치권 인사 몇몇이 최근 자천타천 후임으로 거론되지만, 대부분 남 원장 혹은 김 실장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적지 않다.

국정원 개혁 방안 쏟아져 나와

원치 않은 남재준의 ‘오버 행진’?

7월 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민주당 진선미, 김현 의원의 특위위원 자격을 문제 삼으며 퇴장하고 있다.

윤창중 사태의 여파로 이정현 정무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이동한 뒤 정무수석 자리가 여전히 공석이라는 점도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국방부 장관 인선 같은 주요 사안을 추진하려면 정무수석 임무가 절실하기 때문.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같은 사안에서 청와대가 충분히 ‘정무적 감각’을 발휘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정무수석의 부재로 남 원장의 행동이 이후 정국에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고, 그 결과 청와대와 여권은 수세에 몰렸지만 남 원장 개인의 존재감은 커지는 묘한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시각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 국정원의 이러한 ‘오버 행진’은 불과 두 달 전과 비교해도 사뭇 양상이 다르다. 4월 30일 댓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청사를 압수수색할 무렵 국정원 측 태도는 2005년 불법도청 사건으로 인한 압수수색 당시와 비교해도 이례적일 만큼 협조적이었다. 취재를 위해 청사 정문에 모인 기자들에게 국정원 관계자가 식사 자리를 제안하는가 하면, 국정원 수뇌부 역시 계속해서 원론적인 견해를 지켰다. 댓글 사건은 지난 정부의 일일 뿐, 박근혜 정부와 신임 수뇌부는 깔끔하게 털고 가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6월 들어 댓글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대통령선거 결과 등 이른바 정통성 문제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국정원 개입 여부를 두고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건이 모두 이와 관련이 깊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댓글 사건의 흐름이 정권 핵심의 ‘역린’을 건드렸고, 그에 따라 남 원장과 국정원의 활동 반경도 경계선을 넘나들며 위험신호를 울리게 된 셈이다.

7월 3일 하루에만 국회에서는 엄청난 양의 국정원 개혁방안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이 정치 개입의 빌미가 돼온 국내보안 관련 부서를 폐지하고 정치 개입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새누리당에서도 이재오, 정몽준, 조해진, 하태경 등 여러 의원이 개혁 주장에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정무수석 후보군을 압축했으며 조만간 후임인선이 진행될 것이라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껏 남 원장에게 기울었던 균형추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그의 다음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3.07.08 895호 (p8~9)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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