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1

2013.06.10

딱딱한 생각…영국 귀신이 찾아온 것

보기 플레이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6-10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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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생각…영국 귀신이 찾아온 것
    골프 용어 가운데 싱글 플레이와 보기 플레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싱글 플레이란 말을 외국인한테, 특히 미국인한테 썼다간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뺨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상대 없이 즐기는 성적 놀이를 속어로 싱글 플레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기 플레이어란 말은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매 홀마다 한 개씩 오버하는 플레이를 하면 최종 90타를 기록한다. 보기 플레이어는 파와 버디를 몇 개 하더라도 가끔 트리플보기와 더블보기를 한다. 아무리 버디를 몇 개 하더라도 자신의 핸디캡 숫자는 벽을 뚫고 나온다는 게 정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기준 타수(파)보다 한두 개 적게 나오는 핸디에는 버디, 이글, 앨버트로스 등 높이 나는 새 이름을 붙이는 데 반해 왜 보기는 더블보기, 트리플보기처럼 앞에 숫자만 붙이는 걸까. 보기란 용어는 어떻게 나왔을까.

    사전에는 분명 기준 타수보다 하나 더 나오는 점수라고 돼 있다. 그런데 군대 속어로 보기는 국적불명의 비행기라는 뜻이다. 일반 속어로는 마리화나라는 뜻도 있는데, 이 3개 단어를 접하면서 원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골프가 일반화한 18세기에는 요정이란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요정이란 무엇인가.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과 불행을 조정하는 동화 속 신비의 존재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해코지하는 못된 놈이란 뜻으로 자주 쓰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이라는 동물을 신성시하는 데 반해, 그쪽 사람들은 용을 못된 짐승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즉 요정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도깨비나 귀신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보기는 도깨비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귀신 들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보기는 귀신 하나, 더블보기는 귀신 둘, 트리플보기는 귀신 셋인 셈이다. 그래서 국적불명의 비행기는 귀신이 날아다니는 것으로 이해됐고, 마리화나를 피우면 귀신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보기를 속어로 마리화나라고 한 것이다.



    보기는 귀신 하나, 더블보기는 귀신 둘

    골프 친구 가운데 항공사 기장이 있다. 이 친구를 처음 알고 라운드를 할 때 엄청난 고수와 함께하는구나 싶어 아주 상쾌했다. 드라이버 거리가 평균 270야드를 웃돌고, 롱 홀에서 투 온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한 골프 친구 하나 사귀었다며 좋아했다. 더구나 하늘에서 노는 친구라 비행이 없는 날에는 골프장을 찾거나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땅의 기운을 흡수하는 생활 습성을 가져서 도인으로 함께해도 좋을 만큼 깊이 사귀었다.

    그런데 한 3년 라운드를 함께 하다 보니 이 친구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프로치가 영 안 됐다. 뒤땅이나 생크가 나서 계속 헤맸다. 그 모습이 영 이상해 물어봤다. 도대체 왜 그리 망가졌느냐고. 이 친구 대답이 걸작이었다. 다른 놈하고 하면 괜찮은데 도사 너하고 하면 이상하게 울렁증이 생겨. 도사 네 녀석이 나한테 귀신 붙였지? 아니면 나하고 칠 때 속으로 저주를 하는 거 아냐?

    아차 싶었다. 내 행동에서 저 친구가 오해할 만한 어떤 점이 있었구나. 아니면 내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내 방식대로 치니까 질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가꾸는 텃밭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며 그의 울렁증을 해소해주기로 했다. 거기에 더해 귀신이란 놈이 무엇인지, 신들린 게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도 했는데, 다행히 지금 그는 예전 실력을 되찾았다.

    “도사에도 급이 있는데, 귀신을 부리고 술법을 행하는 도사는 좌도방으로, 격이 아주 낮은 놈이야. 더 격이 낮은 도사는 사주관상이나 보고 풍수를 생활화해 장사하는 놈이지.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이 그냥 있는 게 아냐. 진짜 풍수지리학자나 진짜 명리학자는 절대 도를 상품화해 자신의 생활수단으로 삼지 않아. 도사 가운데 무도를 하는 도사는 격이 낮으면 깡패가 되고 높으면 국가대표급이 되지.

    우리처럼 마음공부만 하는 도사는 우도방이라고 해. 우도방은 철저히 정신세계만 탐구하기 때문에 초능력도 마음의 일부로만 여길 뿐 남에게 보여주길 엄청 경계하지. 겁내지 말게. 최소한 내가 좌도방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우도방을 하는 나는 인간의 기본 구성요소를 정(精)·기(氣)·신(神)으로 나누고 삼단논법으로 수양하지. 먼저 정을 충만하게 한 다음, 기를 장하게 해 만물이 나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신한다네. 이어 신을 밝게 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지.

    신을 밝게 하는 것은 정신수양 공부의 최종 목표야. 검은 마음을 가져 신이 어둡게 되면 그게 바로 귀신이지. 귀신이 따로 있는 게 아냐. 원한을 갖거나 한 맺힌 인생을 살면 밝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파장만 꽁꽁 맺혀 흩어지지도 않는데, 그것이 바로 귀신이야.

    처녀귀신이나 총각귀신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인 섹슈얼 에너지에 대한 원한 해소가 안 돼 생겨난 거야. 성적 행위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것이 몽달귀신이고. 실제로 그런 잡스러운 에너지를 가진 기운들이 있어. 그것이 나 자신과 파장이 맞아 동조하면 실제로 나한테 해코지를 하지.

    따라서 이 기운들과 나 자신의 공조현상을 없애야 귀신에 휘둘리지 않아. 학문적으로는 공명진동이라고 하는데, 물리학에서도 주파수가 같거나 정수배(整數倍)로 진동하는 물질은 공명한다고 하잖아. 결국 귀신을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불러들이는 것도 나 자신이야. 같이 공명하는 거지. 그러니 나는 절대 너에게 귀신을 붙이지 않았어. 네가 불러들인 거야.”

    귀신을 만들고 부르는 것도 나 자신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그의 아내가 크게 웃으며 거들었다. “이상하게 김 도사와 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결국 안 된다는 자기 마음이 울렁증을 만든 거군요. 이제 저주가 풀렸으니 다음에 한판 붙어봐요. 자신만의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보기란 용어는 여기서 나왔다. 귀신이 들리는 현상, 즉 자신의 생각 에너지가 밝음보다 어둠을 지향할 때 반드시 그리 돼야 한다는 강한 자기 욕심이 어둠과 귀신이란 뜻의 보기를 불러오는 것이다. 아니, 그 어둠이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돌이켜 실패했다고 느끼는 경우를 회상해보라. 조상이 해코지했는가, 아니면 운 때가 안 맞아서 그랬는가, 아니면 생각이 하나에만 얽매여 주변을 보지 못한 탓에 어두운 기운이 밝은 기운을 가리지는 않았는가. 밝음이 사라지면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아니한다. 생각 하나에만 얽매이면 다른 소리나 행운의 기운이 들어오지 아니한다. 생각의 굳음이 귀신이요, 보기라는 영국 귀신이다. 그래서 골프에서 보기는 귀신이고, 더블보기는 귀신 둘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귀신 몇을 붙이고 다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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