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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朴근혜의 입’ 왜 이정현인가

‘선거의 여왕’ 정무엔 자신감, 돌려막기 비판 무릅쓰고 홍보수석 임명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朴근혜의 입’ 왜 이정현인가

‘朴근혜의 입’ 왜 이정현인가

6월 3일 이정현 신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 참모가 이정현밖에 없나?”

이정현 전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이 6월 2일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수평 이동하자 친박(친박근혜)계 진영에서조차 터져 나온 하소연이다. 정무수석과 홍보수석 모두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데 취임 100일 만에 이 수석이 두 자리를 혼자 잇달아 차지하자 터져 나온 불만이다.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도 이정현 홍보수석을 임명하면서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돌고 돌아 이 수석을 꼭 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방미 기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 사건 초반만 해도 이남기 전 홍보수석의 교체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본인의 방미 일정이 워낙 빡빡했던 데다 진상을 정확히 파악한 뒤 알리려 했던 점을 참작해 이 전 수석이 사건 발생 하루 뒤 보고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척하면 알아듣는 수준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의 미국 행적이 점차 알려지면서 성추행 논란이 더 커지고, 사건 발생 이후 윤 전 대변인의 귀국 종용과 관련해 이 전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이 진실공방까지 벌였다. 이에 박 대통령은 이 전 수석의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여긴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 전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지 12일이 지난 후에야 사표를 수리했지만, 이미 그전부터 차기 홍보수석 인선에 들어간 상태였다. 다만 자연스럽게 후임 수석을 발표하면서 이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는 형식으로 배려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전 수석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하루빨리 사의를 수용해달라고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요청하면서 후임 홍보수석이 확정되기 전 사표가 수리됐다.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는 이미 차기 홍보수석으로 이정현 정무수석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에서 ‘돌려막기’라는 비판을 의식해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건의가 많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수석 본인도 홍보수석 이동보다 정무수석 잔류를 원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서열상 정무수석이 홍보수석 위인 데다 사실상 홍보수석 구실도 하는 상황에서 굳이 홍보 업무에 한정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주변으로부터 새로운 인물을 추천받았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남기 전 수석 같은 방송 출신은 정무적 판단이 느리고, 신문사 간부 출신은 다른 언론사들과의 관계 설정이 애매하며, 당 출신은 언론계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등 안 될 만한 이유만 많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돌고 돌아 이 수석의 수평 이동을 6월 3일 결정해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이 수석이 정무수석보다 홍보수석에 적합하고, 그보다 더 나은 정무수석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도 담겼다. 홍보와 달리 국민, 국회를 상대하는 정무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려온 박 대통령에게는 더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굳이 대통령 뜻을 모르는 사람이 오더라도 본인이 신임 정무수석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언론에 나가는 본인 메시지에 아주 민감하다. 대통령선거(대선) 때는 물론 당선인 시절에도 대변인이 자신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할 경우 문구 하나하나까지 챙겼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이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어법을 즐겨하지 않는다. 혼선 없이 자신의 발언 그대로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뜻을 언론과 국민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홍보라인이 필요하다. 척하면 알아들을 정도가 돼야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인 특유의 싸움꾼 기질이 있다. 선거를 비롯해 전투를 시작하면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 최전선 전사가 대변인이다. 박 대통령은 상대가 부당하게 공격한다고 판단될 때는 타협하지 않고 온몸으로 이에 맞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대변인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법 개편이 야당 반대로 통과가 늦어질 때 박 대통령은 “야당도 대선 때 공약으로 미래창조과학부 설립을 내걸고 이제 와서 이를 반대하는 것은 정략적”이라고 여겼다. 그 순간부터 박 대통령은 정치적 타협이 아닌 옳고 그름의 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뜻에 따라 여론전을 펼치려면 대변인은 강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홍보라인에서 또 하나 중요한 역량은 언론과의 스킨십이다. 박 대통령은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정치인이 흔히 갖는 비공식 기자 티타임이나 간담회가 없을 뿐 아니라,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같은 공식 언론 접촉도 적다. 게다가 대통령이 확정되지 않은 정책이나 인사에 대한 ‘보안’을 강조하기 때문에 측근들도 입이 무거워 언론인의 불만이 많은 편이다. 박 대통령의 홍보라인은 이런 언론인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언론인과 스킨십이 많아야 하고, 또 언론인에게 어느 정도 배경 설명도 해줘야 한다.

이 수석 메시지가 곧 대통령 메시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청와대 첫 번째 홍보라인은 상당히 허약한 체질이었다. 이남기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인연이 없는 데다 방송사 PD 출신으로 기자들과의 접촉면이 더더욱 없었다. 이 전 수석은 주로 박 대통령의 공식행사에 동행하면서 대통령의 스타일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작 취재를 위한 기자들의 전화는 받지 않아 기자 사이에서 ‘정무수석보다 통화하기가 어려운 홍보수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 수석뿐 아니라 윤창중 전 대변인, 김행 대변인을 포함해 홍보라인은 대통령과 인연이 적은 ‘신입’으로 채워졌다.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과 최상화 춘추관장 정도가 예외라고 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홍보라인이 자신감을 갖지 못해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대통령도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홍보라인의 분발을 촉구할 정도로 답답함을 느꼈다.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위와 같은 홍보수장의 조건을 감안하면 이 수석만한 적임자가 없다.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위기 때마다 이 수석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했다. 이 수석은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일 때 수석부대변인으로 활동을 시작해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공보특보, 2008년 총선 때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박 대통령의 대변인격으로 대통령의 ‘입’ 구실을 해왔다.

이 수석이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한 건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였다. 당시 친박 진영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드라이브를 ‘박근혜 압살 정책’이라고 여길 만큼 위기감이 컸다. 이 수석은 당시 대변인격으로 언론과 논리 대결을 벌이며 온몸으로 박 대통령을 지켜냈다.

이 수석은 지난해 1월부터 총선에 출마하려고 8년 만에 대통령 곁을 잠시 떠났다. 그러나 경선 승리 이후 9월 들어 과거사 발언,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불출마 협박 건 등으로 위기에 빠지자 박 대통령은 이 수석을 공보단장으로 긴급 투입했다.

이 수석이 홍보수장이 되면서 청와대의 홍보라인은 파워가 세졌다. 이 수석이 정무수석일 때도 매일 두 차례 열리는 홍보대책회의에서 주요 언론 대응 기조를 정하는 건 그의 몫이었다. 대변인들도 브리핑 전에는 주로 이 수석과 상의했다. 이제 정무라인을 거치지 않고 홍보라인에서 곧바로 언론 대응 기조를 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만큼 이 수석의 부담감은 커졌다. 홍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화살이 본인에게 향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청와대뿐 아니라 기자 사이에서도 이 수석의 메시지를 대통령의 메시지로 판단할 정도로 그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무너질 경우 대체 홍보수석을 찾지 못한 박 대통령의 고민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향후 행보가 대통령의 행보와도 직결될 것이 확실하다.



주간동아 2013.06.10 891호 (p8~9)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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