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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여걸’ 열전 <마지막회>

여성다운 삶 외면한 ‘람보 여전사’

홍계월전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여성다운 삶 외면한 ‘람보 여전사’

남성에게도 내면의 여성성인 아니마(anima)가 있듯이, 여성에게도 내면의 남성성인 아니무스(animus)가 존재한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성, 감성이 촉촉한 남성 이미지가 유행하고, ‘메트로섹슈얼’(내면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즐기는 현대 남성) 같은 중성적 패션 코드가 각광받으면서, 남성의 아니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즉, 남성에게 내재된 ‘적당한 여성성’은 오히려 남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데 여성 내면의 남성성은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고뇌 때문에 빛나는 존재

꼭 뮬란이나 잔 다르크처럼 칼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 남성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에게도 상황을 통제하고 상대를 제압하며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본능이다. 여걸 홍계월은 고전 캐릭터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남성성을 보여준다. 고전 여걸은 대부분 주요 갈등이 해결된 후에는 현모양처 길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한데, 홍계월은 남성우월적 사회를 향한 뼈아픈 회의를 느끼면서도 ‘여성다운 삶’의 루트로 통합되지 않는다. 홍계월은 뮬란처럼 부모의 착한 딸이나 박씨 부인처럼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로 회귀하기보다 여전히 공고한 사회적 장벽 때문에 고민한다.

현대 여성이 뮬란이나 박씨 부인보다 홍계월에게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느꼈던 갈등이 오늘날 우리 여성이 고민하는 ‘내 안의 남성성의 통합’이라는 문제와 은밀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경쟁하려면 자신의 아니무스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때로는 여성성을 억압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런 순간 여성은 심한 좌절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훌륭한 직장인이 되려면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고, 일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여성에게 홍계월이라는 캐릭터는 성공 때문이 아니라, 그 고뇌 때문에 더욱 빛나는 존재다.

여성다운 삶 외면한 ‘람보 여전사’

자료 제공·웅진씽크빅 ‘홍계월전’

명나라 시대 홍계월은 시랑 벼슬을 지낸 아버지의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간신의 반란으로 부모와 생이별한다. 어머니를 겁탈하려던 도적이 어린 홍계월을 물에 빠뜨렸지만, 그녀는 간신히 구조돼 살아난다. 여공(呂公)의 도움으로 그 집 아들 여보국과 함께 각종 학문과 무술을 익힌 홍계월은 마침내 남성들을 제치고 장원급제하고, 여보국은 부장원으로 급제한다. 바리데기나 자청비처럼 남장을 하고 남성들과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은 홍계월은 언제나 남성들을 뛰어넘는 출중한 면모를 보인다.



단, 바리데기나 자청비가 잠깐 남장을 했다가 결국 여성의 삶으로 회귀하는 데 반해, 홍계월은 남장을 한 기간이 훨씬 길고 남장을 넘어 스스로 남성의 정체성을 내면 깊숙이 각인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또한 홍계월의 탁월함 때문에 사랑하는 남성까지 그녀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불

편해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더욱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외적이 침입하자 홍계월은 대원수가 되고, 여보국은 부원수가 돼 출정한다. 하지만 남성의 자존심을 내세운 여보국이 홍계월의 말을 듣지 않아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홍계월의 지략으로 싸움을 승리로 이끈 뒤 그녀는 헤어진 부모와 상봉하고, 천자는 그녀에게 위국공(魏國公)이라는 높은 벼슬을 제수한다. 뒷날 홍계월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속인 죄를 자백하자, 천자는 그녀를 버리지 않고 여보국과 혼인까지 시키는 아량을 베푼다. 그러나 아내의 직위가 자신보다 높은 것에 불만을 품은 남편은 애첩 영춘을 아끼며 홍계월의 드높은 자존심을 짓밟고 만다.

남편은 ‘여걸 아내’를 사랑했을까

여성다운 삶 외면한 ‘람보 여전사’

자료 제공·웅진씽크빅 ‘홍계월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여보국의 애첩 영춘이 홍계월을 대놓고 무시하자, 그녀가 영춘을 군법으로 다스린다며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장면이다. 이때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여보국의 아버지는 아들을 달랜다. “계월이 비록 네 아내는 되었으나 벼슬 놓지 아니하고 의기 당당해 족히 너를 부릴 사람이로되, 예로써 너를 섬기니 어찌 심사를 그르다 하리오.”

그러나 여보국은 애첩을 잃은 슬픔과 함께 아내를 향한 분노를 접지 않는다. “세상 대장부 돼 계집에게 괄시를 당하오리까.” 그녀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받아도 남편에게는 ‘내 애첩을 질투하는 계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반란군이 일어나 출정한 홍계월이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준 뒤에야 두 사람의 갈등은 풀리게 된다. 하지만 ‘항상 저 여자는 나보다 월등하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던 여보국이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결코 만족될 수 없다고 증언했다. 남성이 내면의 여성성으로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듯, 여성도 내면의 남성성으로 삶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 어느 한쪽이 도드라지게 발달한 사람보다는 남성성과 여성성, 즉 양성성을 고루 갖춘 사람이 훨씬 행복하고 매력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홍계월은 ‘철저히 여성의 의무에 충실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신도 남성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웬만한 남성을 뛰어넘는 지략과 용맹으로 사회 장벽을 뛰어넘으려 했다. 홍계월은 박씨 부인이나 감은장애기처럼 결국 ‘여성으로서의 행복한 삶’에 완전히 길들여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지극히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남성과의 경쟁에서 결코 지고 싶지 않은 강한 승부욕을 지닌 여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측면 모두가 홍계월에게는 뜨거운 진실이었다.

자료 제공·웅진씽크빅 ‘홍계월전’



주간동아 2013.04.29 885호 (p60~61)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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