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에 위치한 관동대.
오전 8시 30분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광명성애병원 앞. 전세버스 한 대가 멈춰서더니 20명 남짓한 학생이 내린다. 2월부터 이곳 광명성애병원에서 수업을 받는 관동의대 본과 2, 3학년 학생들이다. 이들은 오전 8시 30분까지 병원에 도착하려고 오전 7시경 인천 계양구에서 이 버스를 탄다. 수업이 끝나면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이 버스를 타고 다시 인천 계양구로 돌아간다. 매일 2~3시간을 길에서 버리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할까.
부속병원이 없는 관동의대 학생은 지난해까지 협력병원이던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1월 학교는 새 학기부터 인천 계양구에 있는 프리즘병원에서 수업을 한다고 공고했다. 이에 따라 학생 대부분이 프리즘병원 인근에 숙소를 마련했는데 갑자기 교육병원을 광명성애병원으로 바꾸는 바람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 공간이 갑자기 바뀐 것뿐 아니라, 강의실과 부대시설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강의실이라고는 응급실이 자리한 지하 1층 한 곳이 전부. 강의실 2곳, 강당 1곳, 실습실 2곳, 시뮬레이션 센터 1곳과 도서관, 열람실, 교수연구실 등의 부대시설을 제공했던 명지병원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게 학생들의 얘기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동의대 학생회 측은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단체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년간 인증 유예 조치는 처음
이와 관련해 2월 27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은 관동의대에 대해 1년간 인증유예 조치를 내렸다. 실습환경이 부실한 병원으로 교육병원을 변경하는 중대 변경사항을 의평원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인증유예 조치는 인증을 통과한 대학에 대해 판정 결과를 거둬들이는 것으로 의평원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의평원은 단순히 교육병원이 변경된 것보다 학생에게 제공되는 수업의 질 저하를 문제 삼았다. 의평원의 평가인증 기준에 따르면 교육병원은 기초의학 13개 분야에서 25명, 20개 이상 진료과와 지원과목에 전임교수가 85명 이상 있어야 한다. 또한 기초의학 분야, 임상진료와 지원과의 90% 이상에서 교육경력 10년 이상인 전임교수가 1명 이상 있어야 우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또 전임교수 100명당 국내외 연구실적, 즉 논문은 최근 2년간 연평균 100편 이상 발표해야 한다.
의평원은 “임의의 병원에서 비교육자에 의해 진행되는 임상실습은 학점을 부여하는 주체가 없고, 교육의 질 보장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덕선 의평원 원장은 “인증유예 조치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교육부에 폐쇄를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동의대 측은 억울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정대로 올 10월 다시 인증평가를 하면 되는 것이지, 과거에 낸 평가자료와 지금 상황이 다르다고 인증을 유예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또한 관동의대 측은 의평원 지적과 달리 현 상황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의대생들의 임상실습교육을 규정하는 시행령인 ‘대학설립운영규정’ 제4조에 따르면, 부속병원에서 임상실습수련을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조항으로 협력병원에 교육을 위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한 협력병원의 경우,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 따라 해당 병원이 수련하려는 전문 과목에 관한 진료과가 설치돼 있고 각 과에 전속 전문의가 있다면 가능하다. 학교 측은 광명성애병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광명성애병원이 전문의 수련이 가능한 인턴 수련병원 기준에 충족하기 때문이다.
임상의학 전임교수 문제에 대해서도 관동의대 측은 “임상실습이라는 강의가 환자 진료로 이뤄지기 때문에 진료 경험이 충분히 있는 분들이라면 강의 경험이 있든 없든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덕선 원장은 “임상실습은 단순히 실습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실습에 대한 교육이기 때문에 일반 강의보다 가르치기 더 어렵다”며 임상실습 교수의 강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교육협력병원의 이전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장기적인 계획 없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업의 질을 어떻게 담보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부속병원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관동대는 500병동의 부속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조건으로 의대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관동의대는 설립 인가 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매년 10%씩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 당초 총 정원은 49명이었지만 2012년부터 모집정지 행정처분을 받아 2012년에는 44명, 2013년에는 39명만 선발했다. 부속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8년 후에는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게 된다.
지난해 관동의대는 기존 협력병원이던 명지병원과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자체 부속병원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관동대 재단인 명지법인은 부천 프리즘병원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애초 발표와 달리 병원 개원이 ‘의료법인’으로 추진돼 관동의대 부속병원 부재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전망이다. 부속병원은 교육용이기 때문에 사립학교법 제28조 2항에 의해 담보로 제공될 수 없지만 의료법인의 경우는 가능하다. 명지법인은 프리즘병원을 담보로 하나은행에서 대출받아 개원을 추진 중이다. 개원을 위한 예산이 부족한 탓이다. 하지만 프리즘병원은 “명지학원이 매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재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관동의대 개원준비위원회 측 역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개원이 당초 계획과 달리 늦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는 서남의대를 특별감사한 후 임상실습학점 이수 기준 시간을 충족하지 못한 의대생 148명에게 부여한 학점을 취소하고, 이에 따라 졸업 요건을 갖추지 못한 134명의 의학사 학위를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료계에서는 처음부터 서남의대의 부실 교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교육부가 그동안 문제제기를 무시하다 갑작스레 학생들에게 학점, 학위 취소를 내렸다. 해당 대학의 부실 운영 문제를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해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입었다”며 “관동의대의 수업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서남의대 사태와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명성애병원은 그동안 의대 교육을 진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부실이 생길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남의대처럼 의사 면허 취소 우려
한편 의평원은 최근 인증평가를 받지 않은 의대에 대해 졸업생의 의사면허시험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동안 의평원의 인증평가는 법적 효력이 없었다. 올해 의대 신입생들을 고려해 평가는 2017년부터 실시하며 2018년 응시생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관동의대가 협력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관동의대생들은 2018년부터 의사면허시험을 볼 수 없다.
또 3월 26일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은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해 의대 평가인증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인정받은 기관은 대학 신청에 따라 대학운영 전반과 교육과정의 운영을 평가 또는 인증할 수 있다’는 현행 조항(제11조 2항)에 ‘의료법 제5조 및 제7조에 따른 국가면허를 발부하는 학문 분야(의학, 치의학, 간호학, 한의학 등)의 평가인증은 의무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했다. 또 의무평가인증을 받지 않았는데도 관련 시설·기관을 운영하는 경우 교육부 장관이 그 시설·기관을 운영하는 자에게 폐쇄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폐쇄명령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