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거미줄 감시망, 무너지는 사생활

보스턴 용의자 검거, CCTV와 IT가 일등공신…‘빅 브라더’ 논란 가열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m

    입력2013-04-29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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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명이 목숨을 잃고 140여 명이 다친 미국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 사건.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테러 순간부터 용의자를 찾아 체포하기까지 폐쇄회로(CC)TV와 정보기술(IT) 분석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감시 체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함께 제기된다. 이른바 ‘빅 브라더’ 논란에 불이 붙은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CCTV 힘이 컸다. FBI는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백화점 CCTV를 분석하고 목격자 진술을 통해 용의자로 보이는 2명을 찾아냈다. 영상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 가운데 1명은 키 183~188cm인 건장한 백인 남성으로 검은색 재킷을 입었고 폭탄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가방을 소지했다. FBI는 보스턴 폭탄테러 발생 후 사흘 만에 용의자를 지목하고 신원확보에 나섰다.

    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독재자다. 모든 개인 정보를 수집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을 보통 소설 속 주인공 빅 브라더에 빗대어 표현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 국가안보를 위한 국민 사생활의 희생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또 한 번 테러가 발생하면서 빅 브라더는 더 강력해지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발생할 개연성도 커졌다.

    맨해튼에만 2400개 감시카메라

    보스턴 폭탄테러 발생 한 달 전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깜짝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뉴욕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하늘에 무인기를 띄워 도심 구석구석을 살피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뉴욕은 이미 감시 시스템을 철저히 구축해놓은 도시다. 9·11테러 이후 ‘강철 고리(Ring of Steel)’라는 전략으로 도시 감시 체계를 통합 강화했다. 외신에 따르면, 현재 맨해튼에만 감시카메라 2400여 개가 작동 중이다.



    지나친 감시 시스템이라는 지적에 대해 블룸버그 시장은 “앞으로 5년 내 뉴욕 모든 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될 것”이라며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시대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건물에 감시카메라가 있는 것이나 하늘에 감시카메라가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릅니까”라고 되물었다. 블룸버그 시장은 감시 체계의 중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싫어하더라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에서도 확인했듯이 감시 시스템이 범죄 해소나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뉴욕도 첨단기술을 앞세운 블룸버그 시장의 정책 덕에 범죄율이 감소했다.

    감시 체계를 통해 수집한 정보는 첨단 IT와 융합해 진가를 발휘한다. 안면인식 기술과 빅 데이터 처리 기술이 대표적이다. 흐릿하게 찍힌 영상이라도 안면인식 기술을 융합하면 용의자를 더 빠르고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FBI는 1초에 안면인식 정보 3600만 개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로스앤젤리스(LA) 경찰은 현재 범죄를 미리 예측하는 데 빅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주변 데이터를 분석해 범행을 미리 예측하는 시스템을 시범 도입한 것이다. 범죄 자료를 분석한 컴퓨터가 범죄가 일어날 법한 위험지역을 미리 알려주면 경찰을 배치, 순찰하게 하는 방식이다. 찰리 벡 LA 경찰서장은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후 강도가 33%, 폭력 범죄가 21% 감소했다”고 밝혔다.

    각종 정책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감시 시스템은 결국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에 재원을 충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찰에만 투자한다는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거미줄 감시망, 무너지는 사생활

    도심 곳곳에 설치한 CCTV는 사생활 침해나 정보 악용에 대한 우려를 불러온다.

    FBI는 영장 없이 국가안보증만 제시해도 개인 e메일과 전화통화 기록, 쇼핑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외국인만 담당하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경우 내국인 감청까지 허용됐다.

    미국 정보기관이 민간인 e메일을 사찰했다는 사실이 최근 우연치 않게 밝혀졌다.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불륜 스캔들이 계기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BI가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의 내연녀 지메일(Gmail) 계정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미국 언론은 “올 상반기 동안 미 정부가 최근 브로드웰의 지메일 접속 요청을 포함해 개인회원 e메일의 접속을 구글에 요청한 건수가 7969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감시 체계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테러 위험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예전처럼 감시 시스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힘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에서 더는 개인의 자유와 정보 보호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국내에서도 빅 브라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이버, 금융, 보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제도 도입 움직임이 일면서다.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금융정보분석원법, 보험정보원 등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새누리당은 3·20 전산망 마비 이후 국가정보원에 컨트롤타워를 두는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불법사찰에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국가기관 신뢰가 급선무

    금융정보분석원법 역시 국세청이 국민의 금융거래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국가의 권력 남용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설립을 추진하는 보험정보원도 의료정보와 보험정보 등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이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를 수집해 이를 권력 유지에 악용하려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기 때문이다. 민간인이나 야권 인사 사찰 등이 그 예다.

    우려를 불식할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도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나오게 마련인데, 그에 대한 보완장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기관이 신뢰를 얻지 못한 점이 우려를 키우는 데 한몫한다.

    한 보안 전문가는 “보안 관제를 의무화했으나 사건 발생 숫자를 게시판에 적는 형식만 따르고 있다”며 “감시 체계를 강화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제도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무엇보다 국가 기관이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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