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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는 야구

프로야구 올 시즌 기동력과 ‘공격적 주루’가 대세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

“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는 야구

“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는 야구

3월 24일 열린 2013 한국 프로야구 시범경기 LG와 두산전 4회 말에서 LG 양영동이 2루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KIA 선동열 감독은 올 시즌 ‘팀 200도루’를 목표로 내세웠다. 두산 김진욱 감독도 ‘스피드 야구’를 강조했고, 롯데 김시진 감독과 NC 김경문 감독 등도 모두 기동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주루코치 시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된 ‘한 베이스 더 가는 공격적 주루’를 모토로 삼는다. 2013 한국 프로야구가 힘찬 스타트를 끊은 가운데 올 시즌을 관통할 화두는 ‘발야구’가 되고 있다.

올해로 서른두 살이 된 한국 프로야구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진화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발야구가 뿌리를 내린 것은 현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과 NC 김 감독이 ‘SK-두산’의 신흥 라이벌 시대를 열었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두 감독은 기동력 야구의 효율성을 확인시켰고, 올해는 9개 구단 모두 기동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베이스 더 가는 발야구는 득점력을 높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방망이는 슬럼프가 있어도 발은 슬럼프가 없다’는 말이 기동력 야구의 장점을 함축한다. 명투수 출신인 KIA 선 감독은 “발 빠른 주자가 누상에 나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투수 처지에서뿐 아니라 수비 처지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도루로 대표되는 발야구는 상대 배터리의 공 배합을 단순하게 유도해 타자를 도와줄 뿐 아니라, 수비수의 긴장감도 높인다. 한 베이스 더 가는 공격적 주루는 게임 흐름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발야구는 스피드가 전부는 아니다

발만 빠르다고 도루를 잘하거나, 한 베이스 더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m 달리기 선수가 전문 대주자가 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발이 빠르다는 것은 베이스러닝에서 큰 자산이 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시즌 홈런·타점·장타율 등 3관왕을 차지하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던 넥센 박병호는 키 185cm에 몸무게는 100kg을 넘나든다. 2005년 입단생인 그는 2011년까지 군 입대 기간인 2년을 제외한 5시즌 동안 통산 도루가 11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2시즌엔 도루 20개를 성공했다.



1루 주자가 2루 도루에 성공하려면 스타트를 끊은 뒤 약 3초30 안에 2루에 도달해야 한다. 최대한 리드 폭을 길게 하면서 상대 투수의 견제와 홈 투구 시 습관을 파악하고 있다가 공 배합을 예상해 빨리 스타트를 끊는 게 도루의 기본. 공 배합을 읽으려면 공을 받는 포수의 위치 이동도 유심히 확인해야 한다. 직구보다 변화구를 던질 때 도루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포수의 송구 능력을 감안하는 것도 필수다. 이처럼 많은 변수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과감히 뛸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게 바로 거구 박병호가 20도루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9개 구단 사령탑 가운데 유일한 초보 사령탑인 넥센 염 감독은 자신의 현역 생활과 코치 시절 노하우를 담은 ‘베이스러닝 매뉴얼’을 만들어 최근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주루 플레이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염 감독의 매뉴얼이 처음이다. 지난해 3루 베이스코치를 맡아 박병호를 ‘20도루가 가능한 거포’로 키운 염 감독은 “도루는 타이밍이다. 타이밍만 뺏을 수 있다면 도루 성공률은 몰라보게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심판은 ‘잘해야 본전’이다. 아무리 잘해도 칭찬을 받지 못하지만, 아흔아홉 번 잘하다 한번 실수하면 뭇매를 맞는다. 야구장에서 ‘잘해야 본전’인 사람이 또 있다. 바로 3루 베이스코치다. 흔히 작전·주루 코치라고 부르는 3루 베이스코치는 주자나 타자에게 감독 작전을 수신호로 전달한다. 대개 각 팀은 4개 레퍼토리 정도의 약속된 사인을 갖고 있다. A안을 쓰다 상대팀이 이를 알아챈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B안으로 교체한다. 야구는 발뿐 아니라 ‘눈으로도 훔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걸음아 나 살려라” 달리는 야구

넥센 강정호가 홈으로 맹렬히 돌진하고 있다.

3루 베이스코치의 가장 큰 구실은 3루를 밟은 주자를 홈으로 뛰게 할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감독이나 주자가 아닌 베이스코치의 몫이다. 주자의 홈 쇄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른팔로 크게 원을 그리며 주자를 독려한다. 홈플레이트에서 주자가 죽느냐, 사느냐는 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 3루 베이스코치의 판단은 득점이냐 실패냐를 결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팀 승패로 직결될 수 있다. 그래서 3루 베이스코치는 영웅은 될 수 없지만 역적은 되기 쉽다. 심판과 비슷하다.

0.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승부가 나기 때문에 베이스코치는 순간적인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한다. ‘3루 코치가 야구 코치 가운데 가장 똑똑해야 한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대부분 감독은 시즌 중에 3루 베이스코치의 음주를 금지한다. 순간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려면 항상 머리를 맑은 상태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넥센 3루 베이스코치를 맡은 심재학 코치는 염 감독 지시에 따라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술을 끊었다. 현역 시절에도 곧잘 술을 즐겼던 그이지만 3루 베이스코치라는 책임감에 술을 멀리하게 됐다.

그렇다면 3루 베이스코치는 언제 주자에게 팔을 돌리고, 또 어느 때 정지 동작을 취할까. 주자의 발 빠르기와 상대 수비수의 포구 동작, 송구 능력 등을 감안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경기 상황(게임 초·중·후반 여부), 게임 스코어, 아웃카운트, 투수의 구위 및 컨디션, 그라운드 상태, 타구 속도 등은 물론이고 다음 타자 또는 그다음 타자가 누구인지도 감안해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마운드에 서 있고 2사 2루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짧은 좌전 안타일지라도 3루 베이스코치는 2루 주자의 홈 대시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도 2루 주자가 누군지, 타구의 빠르기와 좌익수의 수비 능력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겠지만 굳이 홈으로 뛰게 하는 것은 상대 투수가 오승환이기 때문이다. 최강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또 한 번 안타를 때리기는 쉽지 않다. 홈에서 아웃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요행수를 바라듯 모험을 걸 때가 있다.

도루 저지, 더 커진 수비의 중요성

발 빠른 주자는 공격자 처지에선 바람직하지만 수비자 처지에선 큰 걸림돌이다. 도루 능력을 지닌 주자는 상대 투수와 더불어 내야수에게 압박감을 유발한다. 외야수에게는 더욱 완벽한 중계 플레이와 빠르고 정확한 송구를 요구한다. 똑같은 내야 땅볼을 처리하더라도 타자 또는 주자가 발이 빠르다는 사실은 내야수들의 마음을 급하게 해 실책을 유도하기도 한다. 외야수에게도 마찬가지다.

상대 배터리와 수비수의 틈새를 활용한 공격적 주루, 한 베이스 더 가는 발야구가 주목받으면서 역설적으로 수비의 중요성 역시 더 커졌다. KIA 선 감독은 “공격적 주루가 대세가 되면서 수비에서 좀 더 완벽한 플레이가 요구된다. 포수도 투수 리드뿐 아니라 도루 저지 능력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 팀이 시즌 중에도 수비 훈련에 큰 비중을 할애하는 이유도 그만큼 수비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3.04.15 883호 (p58~59)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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