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세계를 겨눈 北 미사일 ‘말폭탄’보다 못한 성능?

美 보고서 “무수단·KN-08은 종이호랑이”…‘긴장 극대화’가 평양의 노림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04-15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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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괌에 있는 우리 기지를 직접 겨냥했고, 하와이와 본토 서부해안을 위협했다. 최근 북한의 호전적이고 위험한 언사와 지난 몇 주간의 행동은 한국과 일본 등 우리 동맹국의 이익에 ‘실질적이고 명확한 위험(real and clear danger)’이 됐다.”

    4월 3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이 남긴 말이다. 평양이 괌의 앤더슨 기지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는 무수단 미사일이나 하와이를 타격할 수 있는 KN-08 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는 보도가 한창이던 시점이다.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2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은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는 동해지역에 집중됐고, 열차에 실린 미사일 동체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연이어 위성사진에 포착되면서 각국 군사·정보당국의 경계태세도 최고조로 치달았다.

    한 번도 하늘을 날아본 적 없어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고조된 긴장과 달리 최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의 군축(Arms Control Today)’ 3월호에 게재한 ‘대륙간탄도탄의 전주곡?’ 논문과 지난해 10월 랜드연구소가 펴낸 ‘북한 핵미사일 위협 분석’ 기술보고서, 의회조사국(CRS)이 4월 3일 의회에 제출한 ‘북한의 핵무기 : 기술적 이슈’ 보고서 등이다.

    각각 미국과 유럽의 전문 연구기관과 첨단무기 제조업체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베테랑들이 작성한 이들 보고서는 먼저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 기술의 신뢰도를 극히 낮게 평가한다. 냉전시기 옛 소련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거의 직수입해 제작한 스커드 계열 등 단거리 미사일은 매우 위협적이지만, 1990년대 이후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조한 사거리 1000km 이상의 미사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지난해 12월 북한이 광명성3호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로켓 기술을 과시하긴 했어도 이를 실전에서 사용할 미사일로 만드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스커드B, C 등 사거리가 수백km 수준인 단거리 미사일 부품을 이란이나 시리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다양한 국가에 수출해왔다. 이를 조립한 미사일은 해당 국가에서 실전배치한 후 매우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지만, 운송 과정에서 적발한 부품에 러시아 문자가 적혀 있을 정도로 소련 제품을 그대로 이전한 것에 가까웠다고 이들 보고서는 지적한다. 쉽게 말해 냉전 이후 혼돈의 과정에서 흘러나온 소련제 미사일 부품을 거의 직수입하거나 소련 측 기술자들을 초청해 만든 복제품에 가깝다는 것.

    그러나 사거리 3000~5000km 수준의 중거리 미사일은 이야기가 다르다. 소련은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따로 보유하지 않았던 까닭에, 이들 미사일은 모두 북한이 자체적으로 설계를 고치고 성능을 개량한 뒤 용도와 발사시설까지 새로 마련해 만든 것이다. 노동, 무수단, KN-08 등 괌, 하와이를 사거리 안에 두고 있다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이 모두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사일은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수천km를 날아가는 동안 엔진이 화염을 내뿜으며 추력을 만들어내는 시간은 1/10~1/5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에 계산한 대로 정확한 출력을 만들어내야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다. 사거리 1000km 미사일의 경우 엔진이 0.1초만 늦게 꺼져도 미사일은 목표 지점을 수km 이상 넘어 날아간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성능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열악한 조건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는 더욱 중요하다. 발사 시점과 날씨, 지역 등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는 로켓과 달리 미사일은 야간이나 우천, 혹한기와 혹서기 등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천후 발사가 가능해야 한다. 특히 온도와 충격에 극히 민감한 핵탄두나 생화학무기를 장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소련, 중국 등 주요 개발국가들은 통상 수십에서 수백 차례의 발사실험을 통해 새 미사일의 성능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는 부분 설계 변경만 거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상태에서 이뤄진 한두 차례의 실험만으로 실전배치를 감행하는 사례는 없다.

    공개한 것은 모두 가짜 모형

    더욱이 미사일은 개발 과정 못지않게 이를 제조하고 운용하는 데도 숙련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용접기술과 조립가공 공정의 미세한 오류는 결정적 결함으로 직결된다. 바람 방향과 세기, 온도와 습도, 햇빛의 강도까지 다양한 변수를 모두 반영해 출력과 궤도 설정을 조절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리고 만다. 설계가 정확하다 해도 제대로 물건을 만들었는지는 쏴봐야 알 수 있고, 발사를 담당하는 인원들이 전체 과정을 숙지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발사실험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은 이러한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것은 이미 숙달한 스커드 계열 기술을 기반으로 1980년대 말에 개발한 노동 미사일이다. 이란의 샤하브3과 파키스탄의 가우리2 등 같은 형태의 미사일이 해외에서 ‘괜찮은 성능’을 보여왔다는 점도 신뢰도를 높이는 대목이다.

    반면 미사일 크기로 볼 때 대략 1300km 내외를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미사일은 한 번도 이 정도 거리를 비행해본 적이 없다. 그간 이뤄진 두 차례 실험에서는 400km 남짓 짧은 거리를 날아 동해에 떨어진 것이 ‘최고 성적’이다. 더욱이 이들 발사는 미사일 실험에 필수적인 원격정보(telemetry) 발신도 없는 기이한 형태였다. 미사일의 출력과 상태 등을 전송하는 원격정보는 문제점을 확인할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발사실험에서 필수적이지만, 묘하게도 이러한 설정 없이 발사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괌을 사정거리 안에 뒀다는 무수단의 경우 사정이 더 심각하다. 익숙한 스커드 계열 대신 옛 소련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 SS-N-6를 개조해 지대지 미사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조설계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 미사일은 단 한 차례도 발사실험을 실시한 적이 없고, 실물을 공개한 적도 없다. 2010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당시 촬영한 사진에서는 대기권 재진입용 동체에 용접자국이 남아 있고 탄두와 추진체의 연결부 또한 용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태로는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짜 모형임을 알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잠수함 발사 미사일은 연료를 주입한 뒤 밀봉해 잠수함으로 옮겨 안전한 발사관 내에서 보관하다가 유사시 발사한다. 그러나 지대지 미사일은 현장에서 직접 연료를 주입해야 하는 데다, 이동식발사대(TEL) 차량에 탑재한 경우라면 훨씬 불안정한 조건에서 발사가 이뤄진다. SS-N-6에 사용된 산화제는 영하 7도에서 얼고 영상 21도에서 기화하는데, 잠수함 내부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지만 지상발사대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컨대 산화제를 바꾸는 근본적인 개조 없이는 극히 제한된 날씨와 조건에서만 발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계를 겨눈 北 미사일 ‘말폭탄’보다 못한 성능?
    잠수함 수직발사관에서 안전하게 보관하는 SS-N-6는 충격에 약한 알루미늄 동체로 만들어졌다. 이를 이동형 지대지 미사일로 개조하려고 강철 동체로 교체했다면, 중량이 늘어나는 만큼 사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흔히 SS-N-6의 사거리를 원용해 무수단의 사거리 또한 3000km 이상으로 추정하지만, 실제로 이만큼을 날아가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이렇듯 복잡한 작업을 불과 7년 만에 끝냈다며 2007년 실전배치를 감행했다. 한 차례의 실험도 없이 작전에 배치한 세계 최초 사례다.

    이러한 사정은 사거리 5000km로 추정되는 KN-08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한 번도 하늘을 날아본 적이 없을뿐더러, 역시 SS-N-6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옛 소련제 미사일을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륙간탄도탄(ICBM) 수준의 사거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산화제 또한 이동식 미사일에는 부적합하고, 이 정도 사거리의 액체연료형 미사일이 2단이 아닌 3단으로 설계됐다는 점도 기술적으로는 난센스라고 보고서들은 지적한다.

    이 미사일은 지난해 4월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바 있지만 무수단과 마찬가지로 모형이라는 게 일치된 견해다. 역시 실물은 공개한 적이 없는 셈이다. 장착된 8축식 이동발사대는 중국제 WS51200트럭을 개조한 것이지만, 미사일의 최대 추정중량을 3배 이상 웃도는 부적합한 차량이었다. 한마디로 정교한 개조작업을 진행했는지, 적절한 부품을 사용했는지, 이를 독자적으로 운용할 기술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고, 따라서 실제로 쏘면 얼마나 날아갈지, 날아갈 수는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실전용 아닌 과시용일 뿐

    한미 군 당국은 노동 100여 기, 무수단 50여 기, KN-08 수 기가 작전에 배치된 것으로 파악하지만, 이들 보고서는 북한이 이렇듯 성능을 신뢰할 수 없는 중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고 과시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다. 일단 위협을 과시해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정치적 효과가 목적이지,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확도나 신뢰도 같은 필수적인 조건을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사거리 연장과 실전배치 과시에만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실험 과정에서 정확한 목표 지점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예상 낙하수역을 정확히 공개할 경우, 실제로 미사일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성능 결함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일 공산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나온 민간 전문가들의 기술분석 보고서는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종이호랑이(paper tiger)’에 불과하며, 따라서 실험발사 위협이나 징후에 지나치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평양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본 헤이글 장관의 발언처럼 최근 미국 군 당국이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기술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 이를 미 의회의 연방정부 예산 삭감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복되는 평양의 ‘말폭탄’에 불안을 느끼는 괌이나 하와이의 유권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뜻도 있지만, 올 한 해만 427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국방예산 삭감과 병력 감축, 군인연금 축소 등을 앞두고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가 있는 미 국방부의 이해관계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꼼꼼히 따져보면 최근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은 2006, 2009년 무더기 발사나 그간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성격이나 내용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무수단으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의 이동상황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는 것뿐이다. 4월 초순 내내 지속된 고강도 긴장상태는 오히려 3월 한 달간 평양이 쏟아낸 위협과 불안감 조성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가깝다. 행동의 수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오로지 ‘말폭탄’만으로 긴장을 극대화하는 북한의 의도가 고스란히 적중한 셈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미국은 그에 고스란히 말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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