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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위안부 恨과 눈물 어찌 잊으리…

경남 통영에 국내 첫 ‘정의 비’ 건립 뼈아픈 역사 기억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위안부 恨과 눈물 어찌 잊으리…

위안부 恨과 눈물 어찌 잊으리…

자원봉사자가 봉숭아 빛 매니큐어를 발라준 손에 가짜 진주반지를 낀 김복득 할머니.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인 경남 통영.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딸들이 그 주인공. 전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영시의 피해자는 6명으로, 소도시 중 피해자 가 가장 많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가 일찌감치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오래한 편이다.

4월 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정의 비’ 건립 기념식(상자기사 참조)이 열렸다. 위안부 추모비가 일본 오키나와, 미국 뉴저지와 뉴욕 등 해외에서 세워진 적은 있지만 국내에 건립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안부 관계자들은 “어쩌면 이번 추모비가 국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본다. 그만큼 위안부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영은 달랐다. 두 여성의 집념이 남달랐던 것이다. 통영 출신 국내 최고령 위안부 김복득(95) 할머니와 송도자(51)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 3월 29일, 김 할머니가 노환으로 입원한 경남 통영시 통영서울병원에서 이들을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추모비 건립 소감부터 묻자 김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기분에는 안 할 줄 알았는데 (만들어서) 반갑고, 즐거워 말도 못합니다. (사람들이 비를 보면서) 일이 저리된 걸 깨치고, 젊은 아가씨들이라도 (사실을 알고) 뭐라도 하면 좋겠어요. 통영에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답게 여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사랑스럽게 봐줘서 고맙습니다(울음). 일본도 2번이나 갔다 오고 높은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 찾아와주니까. 예전에는 (위안부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부끄러웠지만 이젠 다 없어졌어요.”

두 여인 남다른 집념의 결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을 한 탓에 한 서린 인생을 살았다. 타지에서 몸을 버렸다는 생각에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후 성매매를 알선하던 남자한테 겁탈당해 그의 첩이 됐다. 남편의 모진 폭력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친자매 같던 본처와 친자식 같던 본처 아들 덕분. 하지만 남편과 본처가 죽자 아들 내외는 2004년 김 할머니를 내쫓았다. 할머니는 새로 둥지를 튼 곳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 피해자로 등록해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12세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따라 고기 그물을 짰지. 그러던 어느 날 고모집에 가려는데 그물회사 직원 아저씨가 날 끌고 갔어요. 중국 다롄과 필리핀에서 7년 동안 그 일을 했어요. (그때 일은)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울음). 통영에 돌아온 것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예요. 그런데 오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3년 탈상을 하고 있더라고…. 혼자 있다가 27세 때 결국 후처로 갔어요. 아를 뱄지만 두 번 잘못돼 전처 아들을 내 자식이다 생각하고 키웠어요. 밭일도 하고 논도 매고 명주도 짜고 고기(생선) 장사도 하고…. 하지만 쌔 빠지게 키워봐야 무슨 소용이야.”

송도자 대표는 통영 출신으로 1995년부터 이 지역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를 도왔다. 김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것도 그때다. 송 대표는 “평생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살다 방 안에서 우두커니 홀로 살아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나들이를 하고, 태어나 한 번도 생일상을 받아본 적 없는 할머니들에게 생신상을 차려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2002년 지금의 모임을 만들었다. 할머니들을 도우려면 단순한 봉사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이후 피해자 심리치유사업, 명예회복과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엽서 보내기 사업 등을 진행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급기야 송 대표는 지난해부터는 본업인 꽃집을 접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러한 위안부 지원모임은 서울, 대구, 창원, 통영에만 있다.

“할머니들 임종을 지켜보니 사는 게 아무 소용없다고 느껴졌어요. 성과가 없으니 활동을 계속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무 의욕이 없는데, 통영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인 김복득 할머니를 보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나마 생존자가 계셔야 에너지를 더 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해 7월 기자회견을 하고 모금운동을 시작했어요. 일본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라도 추모비를 세워서 할머니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市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기부

이후 지역사회에서 기부가 쏟아졌다. 그 물꼬를 튼 것은 김 할머니다. 할머니는 자신을 처음 찾아와 도와준 통영여고생을 기억하며 통영여고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어 경남도교육청에서 할머니를 주제로 한 역사 교재를 만들었고, 이 소식을 접한 통영여고 동창회를 비롯한 지역사회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통영시도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물론 추모비가 세워진다는 것이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통영 위안부들이 끌려간 강구안이란 역사적 장소가 아닌, 외딴 곳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이미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이 추모비를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실제로 김 할머니는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할머니들과 함께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상처 때문에 숨어 살다 친구들과 서로를 다독였던 것이다.

“내 혼자 남으니 마음이 참 안 좋습니다. (정부가)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리 해주겠습니까. 그래도 (대통령을) 여자가 하니 좀 다를 겁니다. 우리가 이만치 가서 미안타 하든지, 잘못했다고 하든지 사죄 받으면 좋지요. 그거 받으면 눈 감을 겁니다.”(김복득 할머니)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김 할머니. 그가 저승에 가져갈 것이 약장수가 약값 잘 갚아서 고맙다며 준 가짜 진주반지가 전부가 아니길 바란다.

엄숙한 위안부 추모비 건립 기념식

꽃다운 소녀들 끌려간 현장…하늘도 통곡


김명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팀장 sahn1973@hanmail.net

위안부 恨과 눈물 어찌 잊으리…
궂은비가 내리던 4월 6일 통영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뜻깊은 행사가 있는 날인데 날씨가 좋지 않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경남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경남 출신이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통영은 인구 대비 등록 피해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하니 오히려 더 참혹했다고 해야 할까. 이러한 아픈 역사를 가진 통영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추모비인 ‘정의 비’가 건립된 것이다. 2012년 6월 추모비 건립을 위해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건립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시민이 동참하고 통영시 등의 협조를 받아 마침내 추모비 건립이 실현된 것이다.

‘정의 비’는 일본군위안부제도의 반인권성을 폭로하는 것은 물론, 반역사성을 제대로 새기고 알림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가 우리 미래세대에게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고 건립된 것이다. 하늘도 사람들의 뜻을 알았는지 행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이대로라면 제막식 행사도 무리 없이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념식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념식에는 국내 최고령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김복득 할머니, 정부 관계자, 지역 국회의원과 시장 등 내빈을 비롯해 많은 시민이 자리를 함께 했다.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290석인 행사장은 이미 만원이었고 뒤쪽 통로까지 들어찼다.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어림잡아 500명은 참석한 듯 보였다.

길놀이로 시작한 기념식은 살풀이, 비문 낭독, 경과 보고, 내빈 기념사로 이어졌다. 생존자 김복득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아쉽게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짧은 인사말만 남겼다. 헌시낭독과 ‘정의 비’ 작품 소개 후 학생들의 희망글 낭독이 이어졌는데, 한 학생의 낭독이 특히 인상 깊었다. 학생다운 밝고 맑은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울먹이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말로만 들으면 별 느낌이 없지만, 조금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 잔학상에 몸서리치고 만다. 그래서인지 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깊은 울림이 돼 내 마음속을 휘저어 놓았다. 기념식을 마치고 제막식을 위해 조각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제막식장에는 흰 천을 두른 추모비가 서 있었다. 김복득 할머니와 건립위원회 사람들, 내빈들과 각 세대를 대표한 사람들이 제막에 참여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정의 비’는 소녀들이 끌려갔던 곳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피맺힌 외침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의 비’를 바라보며 하루빨리 할머니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3.04.15 883호 (p36~37)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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