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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차별·보직 차별 오직 실력으로 극복했다”

첫 여성 치안정감 이금형 경찰대학장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성차별·보직 차별 오직 실력으로 극복했다”

“성차별·보직 차별 오직 실력으로 극복했다”
중전마마 머리를 한 이금형(55) 경찰대학장의 얼굴엔 생기가 넘쳐흘렀다. 당당하고 자부심 가득한 표정. 그럴 만도 하다. 첫 여성 치안정감 아닌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로 10만 경찰 조직에서 5명밖에 없다는 고위직. 그것도 최하위직인 순경 출신이다. 군대로 치면 병 출신이 별 셋을 단 셈이다. 금녀(禁女)의 벽을 제대로 허문 것이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대해 먼저 묻고 싶었지만, 결례가 될지 몰라 준비한 공식 질문을 꺼내들었다.

▼ 순경 출신으로 경찰대학장이 된 소감은.

“순경 출신은 총경이 되기도 쉽지 않다. 조직의 96%를 차지하는 순경 출신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순경 출신 몫이 내게 주어졌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해 순경 출신이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겠다.”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

▼ 여성 대통령 시대 덕을 본 건 아닌가.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잘 알기에. 대통령선거 때 심정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나는 딸 셋을 키웠다. 여성 대통령을 바란 건 나한테 기회가 오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딸들의 앞날에 희망이 있을 거라는, 여성이 활약할 기회가 늘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여성 대통령 시대 덕을 본 면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내가 현직 경무관 이상 간부 중 경력이 가장 많다. 36년을 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민생치안통(通)으로서 과학수사와 여성·아동·청소년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 경찰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치안력을 강화하려면 경찰에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찰대가 중요하다. 경찰대 학생을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척결의 역군으로 배양하겠다. 그러려면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추는 교육이 필요하다.”

▼ 경찰대 축소·폐지론에 대해선.

“정원을 120명에서 100명으로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안다. 이는 경찰 간부의 다양화에 도움이 되고 치열한 승진 경쟁을 완화하는 면이 있다. 폐지는 말이 안 된다. 경찰대는 인재 영입 통로이고 치안서비스 향상의 수단이다. 어느 조직이나 엘리트는 있게 마련이다.”

▼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수사권 문제는 권한 조정이 아니라 국민 처지에서 봐야 한다. 지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입는다. 경찰 조사로 끝나지 않고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만 받아도 신분이 노출된다. 그런 피해를 없애려고 내가 (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을 할 때) 원스톱 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여경이 지정병원에 24시간 대기하면서 성폭력 피해자 신고를 접수하고 거기서 치료와 조사까지 다 하는 것이다. 그럼 경찰에 가서 따로 조사받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검찰에서 또 불러 조사한다. 이런 식의 중복수사 폐해가 크다. 내 박사논문 주제가 ‘비행청소년 선도 조건부 훈방’이다. 소년원에 보낸다고 선도되는 게 아니다. 경찰 차원에서 선도하면 소년 범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경찰이 이런 걸 하려면 수사종결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이론적인 건 잘 모르겠고, 실무 차원에서 말할 뿐이다. 수사권 조정은 서민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 학장은 “검찰의 수사지휘 기능은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선 “넘어가자”며 손을 내저었다. “‘주간동아’는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한다”고 가볍게 불평하면서.

▼ 남성이 장악한 경찰 조직에서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업무는 못할 게 없더라. 가장 힘들었던 건 똑같은 간부로 안 봐주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이었다.”

그는 “보직 차별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10월 경찰 지휘부는 광주지방경찰청장(치안감)을 마친 그를 경찰청 생활안전국으로 발령하려 했다. 이미 2010년 경찰청 생활안전국장과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을 거친 상태였기에 또 그쪽으로 가는 건 중복 발령이었다. 그는 상부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경의 한계로 비칠까 봐 그랬다. 본청장(경찰청장)에게 편지를 써서 간곡히 호소했다. 내 뒤에 있는 많은 여경을 대표한다는 심정이었다. 생활안전국장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또 맡아야 한다기에 그토록 중요한 자리라면 남자 간부가 많이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생활안전국장 대신 경무국장에 임명됐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투쟁의 결과”였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성차별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성차별·보직 차별 오직 실력으로 극복했다”

2012년 3월 21일 광주지방경찰청에서 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대사 발대식이 열렸다. 이금형 광주지방경찰청장(가운데)과 광주지역 300여 개 초중고교 학생회장이 학교폭력 예방을 다짐하고 있다.

“밖으로 드러내면 자존심 상하니 모르는 척하면서 업무에 매진했다. 나를 못 미더워하는 것도 내 탓이라 여기고 신뢰하게 만들었다. 정말 이 악물고 일했다. 그러자 ‘최고의 간부’라는 칭찬이 들려왔다. 언젠가 내가 농담 삼아 청장에게 ‘저는 미운 오리새끼입니다’라고 했더니 청장이 내게 ‘미운 오리가 아니라 백조’라고 말하더라(웃음). 하여간 여경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차별한다고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실력으로 극복하라는 것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실력을 쌓다 보면 어느새 업무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성·청소년 업무를 할 당시 ‘설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나중엔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소문난 일벌레였다. 과학수사에 전념하던 시절 주말과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사무실에 나와 일했다. 둘째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토막 난 시체의 손가락을 닦아 지문을 채취했다.

인생 목표가 채증계장

2001년 경찰청 초대 여성실장으로 근무할 때 장염에 걸려 일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여경 창설 기념행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책임자가 누워 있으니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새벽에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출근했다가 저녁 때 돌아와 치료를 받곤 했다. 병원 관계자가 “도대체 뭐하는 여자인데 저러느냐”고 혀를 찼다.

경찰에 입문한 것은 1977년. 여경 공채 2기였다. 원래 꿈은 화가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미대에 갔을 것이다. 먹고살 길을 찾다가 친척 권유로 경찰의 길로 들어섰다.

“피카소처럼 천부적 소질은 없었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나중에 법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건데, 그림은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법학은 외우기만 하면 된다. 내가 ‘아이디어가 많다’는 평을 들은 것도 어느 정도는 그림 덕분이다.”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3년 경찰청 수사국으로 발령 나면서 상경했다. 당시 수사국이 몽타주 요원을 공모했는데 그림 특기를 살려 합격했던 것이다. 그가 그린 몽타주는 실제 얼굴과 닮은 것으로 정평이 났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몽타주로 해결하는 데 공을 세우면서 그는 과학수사에 재미를 붙여 갔다. 몽타주 영역에서 독보적 위치를 굳히는 한편 지문감식, 거짓말탐지기 요원으로도 활약했다.

“당시 인생의 목표가 채증계장이었다(웃음). 다른 수사기관에서 스카우트 요청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법무연수원과 국가정보원에 가서 강의도 했다.”

그는 수사국 채증계장과 과학수사계장을 역임하면서 과학수사 전문가로 자임했다. 당시 익혔던 과학수사기법은 2006년 서울 마포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연쇄 성폭행범 ‘마포 발바리’를 검거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의 전공이 여성·청소년으로 바뀐 것은 2004년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총경)을 맡으면서. 업무가 ‘여성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이 불만스러웠지만, 여경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많은 일을 해냈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 지원센터, 미아찾기 센터, 182실종아동찾기센터 등이 다 그의 재임 중 설치된 것이다. 2007년 경무관으로 승진한 그는 다시 그 직책을 맡아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시댁 자원 잘 활용하라”

“성차별·보직 차별 오직 실력으로 극복했다”
▼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으로 성매매와의 전쟁을 주도했다. 일부에서는 부작용을 거론한다.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고 보나.

“당시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돼 강력히 단속했는데, 성매매 단속 건수 중 집창촌 단속 건수는 전체의 4% 이하였다. 대다수는 신·변종 성매매였다. 집창촌 여성은 전국 34개소 8000여 명으로 파악됐고, 신·변종 성매매 종사자는 여성정책개발원 추산 34만 명이었다. 십계명에 있는 살인, 절도 따위의 범죄가 지금 없어졌는가. 성매매도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있는 하나의 범죄유형이다. 성매매 여성이 자주 걸리는 병을 분석해보니 10여 가지였다. 우리가 한 일은 성매매와 그에 따른 각종 질병이 창궐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었다.”

▼ 집창촌 여성만 피해를 봤다는 지적도 있고, 성매매를 성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들도 있다.

“경찰대학장으로 취임한 마당에 그 얘긴 그만하는 게 좋겠다. 나는 실무자로서 느꼈던 점만 얘기한 것이다.”

그의 말에 동의하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는 늦깎이 학구파다. 1995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한 데 이어 2002년과 2008년엔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경찰행정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경찰 간부시험도 대부분 한 번에 통과해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53세까지 주경야독했다. 한국에서 여성이 일하려면 다른 여성의 희생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아이들을 돌봐준 시어머니의 희생 덕분이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시댁 자원을 잘 활용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가 바쁘게 일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니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아 공부를 잘했다. 세 딸 다 특목고에 들어갔고, 졸업 후 카이스트 등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그의 공부 비법은 녹음이다. 뭐든지 녹음해놓고 틈나는 대로 들어 외워버리는 것이다. 설거지할 때도, 다림질할 때도, 요리할 때도, 차를 타고 갈 때도 녹음테이프를 듣는다. 이어폰을 얼마나 자주 꽂았는지 한때 이명증이 생겨 치료받았을 정도다.

“공부할 내용을 녹음기로 들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업무 내용도 녹음해둔다. 내가 복잡한 수치를 줄줄 외우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가 “지금도 녹음기를 활용한다”며 시범을 보였다. 녹음기를 틀자 그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직원들 이름과 소속부서였다. 그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빠른 시간 내에 직원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말 좋다니까. 눈으로 보는 것보다 피로도 덜하고. 승진시험 공부도 이걸로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스타일에 대해 물어봤다. 그가 깔깔거리면서 말했다.

“이게 손질하기 편하다. 머리를 올려서 스프레이 한 번 쭉 뿌려주면 끝이다. 여간해서 흐트러지지 않아 좋다.”



주간동아 2013.04.15 883호 (p28~30)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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