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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행운을 실력으로 기회 준 한국서 일하고 싶어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들의 코리안 드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행운을 실력으로 기회 준 한국서 일하고 싶어요”

“행운을 실력으로 기회 준 한국서 일하고 싶어요”

KOICA의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 직업역량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연수를 받는 엘리아스, 베자워크, 요나스 씨(왼쪽부터).

“추운 것만 빼면 다 좋아요. 공부가 재미있고, 사람들은 친절해요.”

알라자 세요옴 메코넨(29) 씨는 큰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었다. 에티오피아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왔다. 전자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두 달간 한국어 연수를 받은 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충북인력개발원에서 기초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알라자 씨는 우리 정부가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을 대상으로 마련한 직업연수 프로그램 수혜자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 황실근위대 소속 군인이던 알라자 씨 아버지도 이때 강원 일대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6037명이 참전해 122명이 숨지고 536명이 부상한 에티오피아 참전사는 오랫동안 잊혔다. 1974년 현지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와 교류가 사실상 단절된 탓이다. 참전용사와 그들 후손은 친북(親北)정권하에서 유무형의 차별을 받았고, 1991년 친서방정권이 등장한 뒤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다수가 극빈층이다.

2011년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6·25전쟁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참전용사들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후손이 알 수 있도록 한국에서 직업연수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수는 그 후속 조치로 이뤄진 것이다. 알라자 씨는 “에티오피아에서는 회계사보다 엔지니어가 훨씬 소득이 높다. 첨단기술을 익힌 사람이 적어 할 일이 많다”며 “내가 한국 전자기술을 익힐 기회를 얻은 건 큰 행운”이라고 했다.



3년간 300명에게 직업연수

에티오피아에서 지리교사로 일하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아브라함 이프터 아세가해(25) 씨도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벌써 60년도 더 된 일인데 한국이 그걸 잊지 않고 기회를 줘 고맙다”고 말했다. “교사직에 미련은 없느냐”는 질문엔 “한국 전자 계통 기업에서 일하는 게 내 새로운 꿈”이라고 밝혔다. 이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달랐다. 한국보다 경제적, 기술적으로 발전한 국가였던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적십자 소속 간호요원을 우리나라 병원에 파견했고, 경기 동두천에 고아원을 설립해 1956년까지 한국 고아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경제개발에 실패하면서 현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 됐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한 ‘동아일보’ 기자는 기사에 “도시가 해발 2350m에 있는 데다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이 도시를 가득 메워 제대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생산된 지 20∼3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물 차량을 택시와 버스로 썼다. 도로 곳곳에서 걸인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로 보이는 승객이 탄 차량에는 예외 없이 이들이 나타나 ‘1비르(에티오피아 화폐 단위·약 110원), 1비르’라고 외치면서 창문을 두드렸다”고 썼다.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 연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채지원 홍보관은 “에티오피아인은 자신들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의 경제발전을 놀랍게 생각한다. 게다가 ‘보은’까지 하겠다고 나서니 더욱 놀라고 큰 감동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현지 관심이 높은 만큼 연수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 참가자 개인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나아가 에티오피아 산업발전과 인적 자원 개발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먼저 2014년까지 3년간 참전용사 후손 300명에게 직업연수 기회를 제공할 계획. 한 회에 60명씩, 5차에 걸쳐 연수생을 뽑은 뒤 한국어 교육 2개월, 기술 교육 6개월 과정을 진행한다.

대상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알라자 씨와 아브라함 씨 등이 포함된 1차 연수생 선발 경쟁률은 4대 1이 넘었다. 서류전형과 면접, 체력검사까지 통과한 18~32세 에티오피아 청년 60명 가운데 20명은 충북인력개발원에서 전자 기술을, 나머지 40명은 경기인력개발원과 전북인력개발원에서 20명씩 자동차 정비와 용접·배관 기술을 익히고 있다. 채 홍보관은 “현재 에티오피아에서는 가전제품, 휴대전화 등 가전기기 수리 분야가 매우 유망하다. 자동차 역시 운행 차량 대부분이 중고차라 정비 수요가 많다. 배관·용접도 도로 및 철도 건설과 고층건물 신축이 늘어나는 에티오피아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세 분야 모두 우수 기술인력 공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전자기술 연수의 경우, LG전자가 현지에 제품 조립공장 건설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수 지원자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장승수 충북인력개발원 능력개발과장 겸 정보기술 교수는 “경쟁률이 10대 1 수준이었다고 들었다”며 “힘든 과정을 거치고 와서인지 이 분야 연수생의 공부에 대한 열의와 수업 집중도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새로운 기술 습득 구슬땀

“행운을 실력으로 기회 준 한국서 일하고 싶어요”

손홍두 대한상공회의소 충북인력개발원 교수(왼쪽)가 연수생들에게 전자회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손홍두 충북인력개발원 전자기술과 교수의 ‘정류회로’ 수업시간에 만난 룰라베바 타페쎄 테들라(23) 씨도 “배우는 게 즐겁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성 메리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다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행을 택한 그는 “오늘 처음 계측기를 이용해 전류 흐름을 측정해봤다. 이론을 배운 뒤 직접 실습할 수 있어 이해가 쉽다”고 했다. 강의실에는 학생 두 명당 한 대씩 계측기가 놓여 있었다. 손 교수는 “연수생은 대부분 연수가 끝난 뒤 바로 관련 분야에 취업하기를 원한다. 6개월 안에 전자기기기능사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도록 이론과 더불어 실습 교육에도 역점을 둔다”고 밝혔다.

컴퓨터 시간에는 학생 각각에게 컴퓨터 두 대씩을 지급한다. 최신형 노트북과 구형 데스크톱이다. 장승수 교수는 “최신형 노트북 사용법만 익히면 에티오피아에 돌아가 구형 컴퓨터를 쓸 때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들이 다양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도록 구형 컴퓨터를 뜯었다 재조립하는 훈련도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실전교육 지원에 나섰다. LG전자는 7월 말~8월 중순 연수생에게 휴대전화 및 가전제품 수리 교육을 160시간 정도 실시할 계획이다. 손홍두 교수는 “에티오피아의 전자기술 교육 및 장비 실태는 매우 열악하다. LG전자의 집중교육을 받은 이들이 현지에 돌아가면 관련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생들도 같은 기대를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전기 관련 회사에 근무했다는 엘리아스 아바테 이메르(31) 씨는 “한국에서 많은 것을 새로 배운다. 연수가 끝나면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며 “나중에 에티오피아 경제성장을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요나스 다그마위 마모(25) 씨는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전기 회사가 두세 개뿐이다. 기술을 충실히 익혀 직접 좋은 회사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취업은 또 하나의 연수

“행운을 실력으로 기회 준 한국서 일하고 싶어요”

4:1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충북인력개발원에서 기술 교육을 받는 에티오피아 연수생들.

장인창 충북인력개발원장은 “오랫동안 차별과 가난에 시달려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들이 한국에서 다시 일어날 희망을 품게 된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그 과정에 참여했다는 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이들이 에티오피아에 돌아가기 전 기술을 좀 더 쌓고 경제적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수생들 바람이기도 하다. 6·25전쟁 참전용사가 낳은 네 딸 중 막내로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베자워크 메코넨 아옐레(28) 씨는 에티오피아에 60대 어머니와 세 언니가 산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취업하면 가족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KOICA 프로그램에 참가한 에티오피아인은 산업연수생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한다. 관계기관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 생활을 경험한 연수생은 대부분 한국 취업을 원한다. 손홍두 교수는 “충북지역 연수생을 상대로 자체 조사한 결과, 20명 가운데 19명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더라”며 “그러려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방과 후나 주말에 보충공부를 하는 이가 많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에도 열심이라고 한다. 충북인력개발원 교수진은 이들을 도우려고 수업이 끝나면 내용을 한글로 정리해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채지원 홍보관은 “에티오피아에서 연수생 연령대의 평균임금이 월 5만 원 수준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서는 질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매일 1만7000원씩 수당도 받는다”며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면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한다는 걸 알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국의 발전된 기술에 대한 욕심도 있다고 한다. 장 원장은 “이들의 한국 취업은 에티오피아에서 기술 관련 창업을 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력을 쌓는 또 하나의 연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채 홍보관은 “정부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보은하려고 기획하고 외교부, 법무부, 노동부 등 여러 관계부처가 협조해 만든 프로그램인 만큼 이들의 한국 취업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LG전자 등 대기업과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여러 기업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어, 교육 프로그램을 잘 마칠 경우 수년간 한국에서 경력을 쌓은 뒤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발전한 나라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룰라베바의 꿈이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13.03.18 879호 (p42~4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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