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2013.03.18

서비스 수혜자를 환호케 하라!

진정한 ‘갑’이란

  • 유재경 커리어케어 수석컨설턴트

    입력2013-03-18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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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직을 고려하는 후보자 중에는 ‘을(乙)’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가 많다. 다국적 제약회사 임상팀에서 임상시험수탁기관(CRO)으로 자리를 옮긴 A씨가 그렇다. 그녀는 약대 졸업 후 제약회사에 입사해 의약품 임상시험 업무를 10년 넘게 해왔다. 그러다 1년 전 임상시험을 대행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월급이나 대우 면에서는 전 직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갑(甲)’에서 을 위치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약회사 임상시험을 대행하다 보니 업무 주도권을 쥘 수 없는 데다, 고객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갑 위치로 복귀하길 원하며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갑은 행복할까. 유명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던 B씨는 고객사 홍보팀에 자리가 나면서 을에서 갑으로 변신했다. 전 직장에서 그 회사 홍보 업무를 대행했던 그는 회사 내부 사정부터 업무 세부내용까지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을에서 갑으로 모자만 바꿔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B씨가 미처 몰랐던 점이 있었다. 회사 내부에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홍보팀은 영업팀과 마케팅팀을 지원하는 지원부서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잘되면 영업팀과 마케팅팀이 잘해서고, 못 되면 홍보팀 탓이다. 결국 B씨는 몇 년간 고민하다 홍보대행사 팀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홍보대행사에서는 매출을 창출하는 고객사 담당자를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더구나 기업 내 홍보팀처럼 눈치 볼 층층시하 시어른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생활에 훨씬 만족한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 얘기다. 경력 8년차 헤드헌터인 이들은 자기 위치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C씨는 자신이 갑도 을도 아닌, ‘병(丙)’ 위치에 있다고 한탄한다. 채용 의뢰를 받으려면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잘 보여야 하고, 후보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니 병이라는 것이다.

    반면 D씨는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한다. 인사담당자는 좋은 후보자를 찾지 못하면 업무 능력을 의심받으니 자신에게 잘 보이려 하고, 후보자 역시 좋은 회사 유망한 포지션에 추천해주길 원하니 자신에게 깍듯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업무 전문성(specialty)이다. 위치가 아니라, 해당 직무에 대해 얼마만큼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갑 위치에 있더라도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실력이 없으면 을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비굴 갑’이다. 반면, 을 위치에 있더라도 업계 정보와 네트워크를 꿰고 있고, 갑의 고민을 척척 해결해줄 능력이 있다면 갑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슈퍼 을’이다. 이런 ‘슈퍼 을’은 대부분 갑과 을 생활을 모두 거쳤다. 그들은 갑 생활을 해봤기에 고객사 담당자의 애로사항을 잘 알며, 을 생활을 해봤기에 헝그리 정신과 승부근성을 갖고 있다. 그들이 진정한 전문가인 것이다.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씨는 저서 ‘구본형의 필살기’에서 “모든 비즈니스는 고객을 돕는 사업이므로 개인 경쟁력은 고객을 돕는 힘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자와 싸워 이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 수혜자가 자신에게 환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력은 갑과 을 위치가 아닌, 업무 전문성에서 비롯한다. 구본형 씨 말대로 서비스 수혜자가 당신에게 환호하도록 만들어라. 그러면 당신은 진정한 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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