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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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남다른 라훌 4대째 총리에 오르나

인도 네루 - 간디 가문의 현대판 왕자…차기 총선에서 모디 구자라트 주총리와 일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3-02-04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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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네루-간디 가문은 왕조에 버금가는 정치 명문가다. 총리를 3명이나 배출했다. 건국 아버지인 자와할랄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총리를 역임했으며, 라지브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43)는 차기 총선에서 총리에 도전한다. 그가 총리에 등극하면 네루-간디 가문에 4대째 총리가 탄생하는 셈이다. 라훌은 1월 19일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당 부대표에 임명됐다. 현재 대표직을 맡은 그의 어머니 소냐 간디에 이어 2인자 자리에 오른 라훌은 부대표 취임 일성으로 “차기 총선에서 승리해 인도를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총선서 승리 땐 ‘가문의 영광’ 잇기

    인도 정치권과 언론은 그동안 라훌을 ‘왕자’에 비유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암살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그동안 ‘가문의 영광’을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할머니 인디라 간디는 총리 시절인 1984년 시크교도 경호원의 총격으로 숨졌다. 당시 14세로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7년이 채 안 돼 아버지마저 잃었다. 라지브 간디 역시 총리 시절인 1991년 남부지역 유세 중 타밀 반군의 자살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그는 이후 신변 안전 문제로 학교를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플로리다 주 롤린스칼리지를 졸업했다. 그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개발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3년간 경영학의 대가 마이클 포터가 설립한 런던의 컨설팅 회사 모니터 그룹에서 일했다. 2002년 귀국한 그는 뭄바이에서 인터넷 회사를 경영하다 2004년 어머니의 설득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아버지 지역구였던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메티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총선 수주일 전 선거전에 뛰어들었는데도 상대 후보를 10만여 표 차이로 제치고 압승했다. 수줍음 많고 조용한 성격인 데다 정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는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2007년엔 초선 하원의원임에도 국민회의당 사무총장이 됐다. 2009년 총선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포용적 성장정책 적극 추진



    내년 4~5월 치를 차기 총선은 라훌과 국민회의당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칫하면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BJP)에게 정권을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당은 지난해 실시한 주요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태다. 라훌은 자신의 지론인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국민 마음을 파고드는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국민회의당을 대중 정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인도 정당들이 카스트(신분제도), 민족, 종교를 바탕으로 세를 유지해온 점을 감안하면 그의 당 개혁은 상당히 혁신적이다. 그는 차기 총선에서 젊은 후보를 대거 발탁해 하원의원 후보로 내세울 계획도 갖고 있다. 인도에선 연공서열을 중시하기 때문에 80대 정치인이 흔하다. 하지만 라훌은 전체 인구의 70%가 40세 이하고 그 절반이 25세 이하인 만큼 앞으로 젊은 세대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훌과 국민회의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할지 여부는 무엇보다 경제 상황에 달렸다. 인도 경제에 대한 국제 경제 예측 전문기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인도는 지난 4년간 중국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루피화 가치 하락과 투자 감소, 물가 상승, 재정 적자 확대, 극심한 빈부 격차, 부정부패 등 곳곳에서 심각한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데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더해지면서 국민의 불만감이 더욱 높아졌다.

    네루-간디 가문 ‘집사’라는 말을 들어온 만모한 싱(81) 인도 총리는 경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싱 총리는 정치인이 아닌 전문 관료 출신으로, 2004년 소냐 간디 대표가 발탁했다. 그는 에너지 보조금 감축, 공기업 민영화, 유통 및 항공 부분 개방과 해외 자본 유치 등 경제개혁 조치에 박차를 가해 올 한 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다걸기)’할 계획이다. 특히 내수와 수출 부진을 타개하려고 인프라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인도의 제1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2007년 4월~2012년 3월)에는 인프라 투자액이 5000억 달러였지만,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2012년 4월~2017년 3월)에는 그 2배인 1조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싱 총리는 투자 확대로 경기 부양이 힘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피가 남다른 라훌 4대째 총리에 오르나
    싱 총리의 또 다른 과제는 빈부 격차 해소다. 이를 위해 부자 증세를 검토하고 있다. 총리 직속 경제자문위원회(PMEAC) 란가라잔 위원장은 “세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면서 “소득이 많은 사람은 기꺼이 좀 더 기여해야 한다”며 부자 증세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 인도의 최고 소득세율은 30%로 1997년 이후 그대로다. 인도에서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부자는 하위 10%보다 12배나 많은 소득을 올린다. 소득 격차가 1990년대보다 2배나 벌어졌다. 싱 총리는 부자 증세와 함께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등 서민층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일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라훌은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한다면 오히려 장기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서, 빈민층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고 농민 부채를 탕감하는 등 ‘포용적 성장정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증조 외할아버지인 네루가 말한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는 명언을 잊지 않은 것이다.

    라훌의 강력한 도전자는 인도국민당의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시되는 나렌드라 모디(62) 구자라트 주총리다. 인도의 유력 시사주간지 ‘인디아 투데이’가 여론조사업체 닐슨과 함께 최근 실시한 차기 총리 후보 지지도를 보면 라훌이 22%, 모디가 36%를 기록했다. 모디는 지난해 12월 주의회에서 실시한 주총리선거에서 당선돼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아라비아 해에 접한 구자라트 주는 인도 28개 주 가운데 인구는 6000만 명으로 10위지만, 소득 수준은 1위다. 2002년부터 구자라트 주를 통치해온 모디의 ‘장수’ 비결은 눈부신 경제성장에 있다. 구자라트 주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10%대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인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8%였다.

    부패 추방 모디의 경쟁력

    피가 남다른 라훌 4대째 총리에 오르나

    라훌과 여동생 프리얀카, 어머니 소냐 간디(왼쪽부터).

    모디는 그동안 독선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각종 규제와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인도 최대 재벌그룹으로 성장한 타타그룹의 타타자동차가 서벵골 주에서 공장 터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그가 직접 나서서 구자라트 주로 공장을 이전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포드와 프랑스 푸조 등 해외 자동차회사들의 공장도 유치했다. 또 정책담당제를 실시해 공무원이 책임지고 일을 추진하게 하고, 부패를 추방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자라트 주는 인도에서 하루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는 유일한 주이며, 산업 인프라가 가장 좋은 지역이기도 하다.

    모디는 17세 때 힌두교 정당운동을 시작했다. 결혼했지만 종교를 위해 가정을 버렸을 정도로 독실한 힌두교 신자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그가 차기 총리가 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되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모디는 2002년 2월 구자라트 주에서 발생한 힌두교 신자들과 무슬림의 대규모 유혈 충돌 사건에서 가해자인 힌두교 신자들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힌두교 신자들은 자신이 타고 가던 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보복 테러를 저질렀고, 그 일로 무슬림 2000여 명이 사망했다. 모디는 유혈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방관했을 뿐 아니라, 무슬림의 긴급 구조 요청을 무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와 함께 모디의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이 포용과 설득을 필요로 하는 총리직에는 맞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인구 12억 명인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을 듣는다. 유권자가 많고 지역이 넓어 총선 투표를 3주에 걸쳐 5차례 실시한다. 아직까지는 인도 차기 총리가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아직 1년여 시간이 남은 데다 경제 상황 등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도를 경제대국으로 한 단계 도약시킬 기회라는 점에서 차기 총선은 인도 안팎의 관심을 끌 것이며, 라훌과 모디의 건곤일척 승부가 전개될 공산이 큰다.

    소냐 간디의 꿈

    이탈리아 출신 며느리…총리 아들 모습 보나


    인도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당 소냐 간디(67·사진 맨 오른쪽)의 처녀 시절 이름은 소냐 마이노(Sonia Maino)다. 1946년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인 오르바사노에서 건축업자 딸로 태어난 그는 6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 당시 인도 총리인 인디라 간디의 장남 라지브 간디와 만나 68년 결혼했다. 83년 이탈리아 국적을 포기하고 인도 국적을 취득했으며, 남편이 암살된 이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그러다 98년 남편과 시어머니가 이끌었던 국민회의당을 다시 이끌어달라는 주위의 강력한 권고를 물리칠 수 없어 정치에 입문했다. 99년 총선에서 당선함으로써 인도 역사상 처음 외국인 출신 하원의원이 됐다. 2004년 총선에서 당 대표로 정권 창출을 이끌었던 그는 총리가 될 수 있음에도 이를 사양하고 대신 만모한 싱 전 재무장관을 내세웠다.

    그의 꿈과 목적은 아들 라훌을 차기 총리로 만드는 것이다. 2009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싱 총리에게 다시 정권을 맡긴 이유는 라훌에게 정치수업을 받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7월 대통령선거 때는 당내 2인자였던 프라나브 무케르지(76) 재무장관을 적극 밀어 당선시켰다. 무케르지는 싱 총리에 이어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던 인물이다. 아들을 차기 총리로 만들려고 무케르지를 대통령으로 내세운 것이다.

    2011년 8월 미국에서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그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다. 라훌을 부대표로 내세워 사실상 당을 맡긴 것은 차기 총선에서 총리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포석이다. 인도 국민은 그동안 “네루-간디 가문은 우리 가족이고 소냐는 우리의 바후(며느리)”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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