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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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보유국’ 도장 찍기 3차 핵실험 강행하나

NPT 탈퇴 이후 줄기차게 핵개발 추진… 미사일 탑재할 500~1000kg 핵탄두 유력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3-01-21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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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실시해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10년 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후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 조치에도 꾸준히 핵개발을 추진해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실험과 관련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지만 “혁명무력의 강화 발전” “우리식의 첨단무장장비” 같은 표현을 통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 성공을 ‘김정일의 유훈 관철’이자 ‘종합적 국력 과시’라고 역설한 바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유훈은 바로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 서문에서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북한의 은하3호 발사 성공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보유했음을 어느 정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앞으로 북한의 과제는 핵무기 소형화다. 이미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이 세 번째 핵실험에서 핵무기를 소형화할 수 있음을 과시한다면 국제사회는 상당히 난처해질 게 분명하다.

    국제사회 농락한 북의 ‘기만전술’

    국제사회는 그동안 북한의 ‘기만전술’에 농락당했다. 북한은 기만전술 1단계로 김일성 전 주석의 비핵화 유훈을 앞세웠다.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이란, 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때 북한이 제기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말한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비행기와 함선의 한반도 통과·착륙·방문 금지, 핵우산 보장조약 체결 금지, 핵무기 동원 군사훈련 금지를 요구했다. 북한 비핵지대화의 목적은 한미동맹 와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북 쌍방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비핵화’를 제안했다. 북한은 1991년 12월 비핵지대화 주장을 접고 우리나라의 비핵화 제안을 받아들여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당시 소련과 동구권 붕괴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측 제의를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비핵화 공동선언을 무시하고 비핵지대화 주장을 계속했다.



    북한의 두 번째 기만전술은 2003년 1월 10일 NPT에서 탈퇴할 때 핵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전력생산 등 핵의 평화적 이용을 약속한 일이다. 당시 북한의 NPT 탈퇴는 비밀리에 추진해온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이 들통 난 데서 비롯했다. 2002년 10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회담 과정에서 HEU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강 제1부상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해준다면 농축우라늄을 통한 핵개발 계획은 물론 미국의 안보상 우려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듬해 1월 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HEU 프로그램 해명을 촉구하는 대북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다. 당시 북한은 HEU 개발을 하지 않았는데도 미국이 고의적으로 누명을 씌웠다고 강변했다. 북한은 그해 2월부터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으며, 2004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북한이 1년 만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은 그동안 꾸준히 핵개발을 해왔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북한의 세 번째 기만전술은 6자회담을 통한 시간 벌기다. 국제사회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남북한이 참석한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개발을 막으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6자회담 당사국들은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4차 회담을 열어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에 복귀하는 대신 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추진, 북·미 간 신뢰구축 등에 합의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이 약속한 이른바 9·19 공동성명은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공수표가 됐다. 북한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토비 미국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9·19 공동성명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는 기초가 되리라 기대했지만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으로 6자회담 효용성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핵보유국 두 가지 유형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먼저 NPT 체제하에서 공인된 핵보유국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가리킨다. NPT는 1960년 프랑스, 64년 중국의 잇단 핵실험으로 핵확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자 당시 세계를 양분했던 미국과 소련이 주도해 만든 협정이다. 70년 3월 5일 발표한 이 조약은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제3국에 양도하지 않고,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획득하지 않으며, 비보유국은 원자력을 핵무기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IAEA 사찰을 비롯한 안전조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 NPT가 일종의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NPT는 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실시한 국가만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며, 이후 핵실험을 실시한 국가는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핵보유국 유형은 NPT 체제 밖에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조차 안 했지만 국제사회는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용인한다. 기존 핵보유국들이 이들 3개국 지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이유는 NPT 체제 자체를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하고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래서 기존 핵보유국들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NPT 체제가 붕괴되고 제2, 제3의 북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은 북한처럼 NPT를 탈퇴하고 핵보유국이 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비전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이 비전을 실현하려고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왔다. 2009년 9월 24일 핵 군축과 핵 비확산 문제를 논의하는 안보리 특별 정상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안보리 특별 정상회의는 안보리 사상 다섯 번째로 열린 것으로,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기는 처음이었다. 안보리는 당시 정상회의에서 NPT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결의 188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00여 차례 이상 고폭 실험

    결의 1887호에는 NPT에서 탈퇴한 국가라도 조약을 위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나 이란 같은 국가가 NPT 규정을 위반할 경우 자동적으로 강력한 국제 제재를 받도록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NPT를 언급한 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북한에 대해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단호해야 할 뿐 아니라 양보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란 핵개발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동북아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과 지역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으로선 핵을 보유한 북한이 ‘뜨거운 감자’일 수 있다. 평양과 베이징은 130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은 중국에게 위협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우호관계였던 중국과 베트남이 1979년 전쟁을 벌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을 빌미로 일본 역시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심각하게 우려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의 핵 무장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북한은 현재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상당히 고무된 상태다.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것이다. 로켓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탄두를 500~1000kg으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미국 서부 해안까지 핵무기를 날려 보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미국 군사전문지 ‘글로벌 시큐리티(Global Security)’는 은하3호가 250~550kg 탄두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추정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물질을 일시에 압축해 핵폭발을 유도하는 내폭형 기폭장치를 개발하려고 100여 차례 이상 고폭 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은 이미 3차 핵실험을 실시할 준비를 해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는 위성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결정만 내리면 2주일 안에 핵실험을 단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뿐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에 증명하고 싶어 한다”며 “4월 이전에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닉 한센 연구원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소형화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길 바랄 것”이라며 “북한이 HEU를 이용한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북한이 3차 핵실험에 성공한다고 당장 핵무기 소형화에도 성공하리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북한이 2차 핵실험 이후 얼마나 핵기술을 발전시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1월 4일 발간한 ‘북한 : 대미관계, 핵 외교, 내부 상황(North Korea: U.S. Relations, Nuclear Diplomacy, and Internal Situa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개정판에서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에 진전을 이뤘는지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CRS는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능력을 보유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핵무기 제조를 더 늘려나갈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핵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지난해 8월 발표한 북한의 플루토늄 및 무기급 우라늄 추정 비축량 보고서에서 2016년 말까지 최대 48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더는 생산할 수 없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영변 5MW 원자로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ISIS는 2011년 말까지 북한이 보유한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 평균 개수를 12개로 추정했다.

    하지만 북한은 현재 영변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다. 지그프리드 해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2010년 11월 이 시설을 방문해 원심분리기 1000대 이상을 확인한 바 있다. 북한은 이외에도 비밀리에 건설한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ISIS는 가동 개시 시점에 따라 핵무기를 최대 11개 만들 수 있는 무기급 우라늄을 이미 생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현재 경수로도 건설 중이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경수로 공사를 계속했으며 주요 건물 외장 작업을 거의 마쳤다”고 밝힌 바 있다. ISIS는 북한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에라도 경수로 건설을 끝마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오바마 2기 정부의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은하3호 발사 성공은 앞으로 미국에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바마 1기 정부의 대북노선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명시적 선언과 그것을 증명하는 행동이 있기 전까지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이었다. 이에 대해 ‘사실상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바마 1기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더라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했거나 NPT에 재가입하지 않았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과 체결한 2·29 합의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당시 북한은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핵실험 및 미사일 실험을 유예(모라토리엄)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스스로 대화 문을 닫았다.

    美, 채찍이냐 대화냐 고민

    북한의 이 같은 모순된 행동은 궁극적 목표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은 일단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채찍을 들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안보리에서 북한의 은하3호 발사와 관련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추진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은하3호 발사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보리가 강력한 제재 조치를 내리면 북한은 그에 대응해 3차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예고된 수순이라면 안보리 제재 여부는 사실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미국 내에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지만 핵 확산과 동결에 초점을 두고 대화를 통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2기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추진할 차기 국무부 장관으로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케리 지명자는 “북한은 미국이 볼 때 괴로운 선택만이 가능한 나라지만, 그래도 미국은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향방에 관계없이 북한의 목표는 변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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