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2

2013.01.21

전원생활하면 다 행복한 노후?

꼼꼼한 재무설계 못지않게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고민 필요

  • 이윤정 객원기자 yunilee16@gmail.com

    입력2013-01-21 10: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원생활하면 다 행복한 노후?

    1월 16일 한국방송통신대에서 ‘4050 희망’ 강좌를 하는 오종남 주임교수(왼쪽)와 우재룡 전 소장.

    베이비부머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4050세대의 ‘인생 이모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방송통신대(방통대)가 경력 전환 및 전직 준비, 인생설계, 창업, 귀농 등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프라임칼리지를 마련했다. 지난해 4월 첫선을 보인 뒤 큰 호응을 얻은 프라임칼리지가 겨울방학 강좌에 들어갔다. 방통대 프로그램 특성상 강좌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지만, ‘중년 여러분 힘드시죠 : 앞선 4050세대에게서 희망을 듣다’ 강좌는 개강 첫날인 1월 16일 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날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방통대 캠퍼스에서 우재룡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의 명쾌한 입담으로 시작한 강의는 그 열기가 사뭇 뜨거웠다. 우 전 소장은 요즘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4050세대의 특징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4050세대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합니다. 4050세대가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며 살아가야 국가에도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행복 수준을 4050세대가 결정한다고 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계층이죠.”

    우리 사회 중추이기도 한 4050세대가 경제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 전 소장은 노후에 대비한 재무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는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나오는 생활비, 둘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의료비, 셋째는 ‘아내의 10년’이다. 생활비와 의료비까지는 쉽게 이해되는데,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생소하다. 우 전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과 평균 결혼연령을 감안할 때 아내가 남편보다 10년 정도 오래 산다는 결과가 나온다”며 “남편이 죽은 후 혼자 남는 아내를 위해 유족연금이나 간병자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활비·의료비 그리고 ‘아내의 10년’



    그렇다면 어떻게 이 비용을 마련할까. 이에 대해선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혁신 최고과정 주임교수(전 통계청장)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이제까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앞으로는 노후를 위해 투자하라”는 것. 그것이 자식과 부모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오 교수는 강조했다.

    4050세대 스스로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는지 진단해볼 방법은 없을까. 우 전 소장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자문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4050세대 상당수가 막연히 전원생활을 이야기하는데 노동과 자기계발, 교류에 각각 하루 4시간 정도씩 쏟지 않으면 전원생활은 지루해지기 십상”이라고 꼬집었다. 준비 안 된 ‘은퇴이민’도 결과가 우울하긴 마찬가지. 특히 간병기에 접어들면 전원생활과 은퇴이민이 불편해진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살지 결정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까. 우 전 소장은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인지, 편의시설은 가까운지, 자연환경은 좋은지 등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만한 공간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럴 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관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은퇴하면 사람들은 일터에서 가족 혹은 지역사회로 돌아온다. 공적 관계에서 사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은 물론, 친구나 지역사회 지인이 많을수록 정서가 안정되고 삶도 풍요로워진다. 이 점에서 현재 4050세대 남성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관계 때문이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남성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는 친구 수’를 알아본 결과 ‘평균 2.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년 남성에게서 잘 드러나는 배타성과 폐쇄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우 전 소장은 “유(You)화법 대신 아이(I)화법을 쓰라”고 충고했다. 어떤 일에 대해 남을 탓하거나 충고하려 들지 말고 ‘나는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하는 식으로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라는 뜻이다. 더불어 타인의 말을 경청하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퇴를 영어로 리타이어먼트(retirement)라 하는데, 타이어를 바꿔 끼운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은퇴는 새 타이어로 바꿔 끼우고 달리는 겁니다. 내가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는, 과거에 집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지막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은퇴 후, 혹은 은퇴를 앞둔 사람이 가장 답하기 곤란해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 전 소장은 “어린 시절 자기 꿈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에서부터 관심사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좋아했던 한 은퇴자는 산림학교를 열었고, 간호사를 꿈꿨던 또 다른 은퇴자는 요양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우 전 소장은 여러 사람과 어울려 서로 자극받는 여가를 뜻하는 ‘소셜레저’도 은퇴자에겐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오 교수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생각할 때 ‘배움’과 ‘나눔’을 중요한 키워드로 바탕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움과 나눔은 그 무엇보다도 삶에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흔히 나눔이라고 하면 거액 기부 같은 것을 생각하는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자체가 나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식당 종업원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않고 존댓말을 쓰는 등의 작은 실천이 나눔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오 교수는 나눔에 대한 마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배움과 나눔을 강조하는 오 교수의 말에 우 전 소장은 “외국의 어떤 사람이 정리한 은퇴 비결”이라며 귀띔했다. “배우고, 나누고, 즐기면서 살아라.”

    욕망 줄여야 행복지수 높아져

    이날 오 교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행복지수였다. 우리는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갖고 싶은 것, 성취하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 교수는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 가운데 욕망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분모로, 가진 것을 분자로 두고 행복지수를 가늠한다면 분모를 줄이는 방법으로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가진 게 한정적이라면 그 범위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다 알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진리다.

    여기에 우 전 소장은 두 가지 당부를 더했다. 하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식을 쌓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행복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다.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식을 쌓으면서 실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은퇴와 노후 준비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요소는 행복이다. 돈과 직업, 관계 등 모든 요소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중년 여러분 힘드시죠 : 앞선 4050세대에게서 희망을 듣다’ 강좌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다가오는 100세 시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노후 준비가 시작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