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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쓸모없는 연구만 한다고? 일상이 궁금한 것 못 참아”

괴짜 물리학자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쓸모없는 연구만 한다고? 일상이 궁금한 것 못 참아”

“쓸모없는 연구만 한다고? 일상이 궁금한 것 못 참아”

● 1967년생
● 1986~97년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석사·박사
● 1997~2002년 스웨덴 우메아대 박사 후 연구원, 조교수
● 2006년 한국물리학회 선정 ‘용봉상’ 수상
● 2005~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특이한 지도(그림1)가 있다. 우리나라 국토 중 수도권 부분을 확대하고, 강원도와 전라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축소한 듯하다. 각 지역에 색도 입혔다. 서울과 호남권은 파란색, 그 외엔 거의 붉은색이다. 김범준(46)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18대 대통령선거(대선) 결과를 인구 비례에 맞춰 표시하려고 그린 지도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승리한 지역을 붉은색,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승리한 지역을 푸른색으로 표시했다는 걸 알고 보면 대선 결과가 한눈에 읽힌다. 지도에서 두 색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1대 1로, 두 후보가 팽팽히 맞섰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점잖은 물리학자의 톡톡 튀는 연구

대선 직후 여러 언론이 보도한 득표율 지도(그림2)는 이와 달랐다. 국토의 2/3 이상이 붉은색이라 두 후보의 실제 득표율(박 당선인 51.6%, 문 후보 48.0%)을 짐작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지난해 4·11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야의 의석 수 차이는 크지 않은데 지도에서는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선거 결과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국 물리학자 마크 뉴먼이 창안한 ‘인구 카토그램(population cartogram)’ 기법을 활용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이 사는 서울이 지도에서도 면적의 약 1/5을 차지하도록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해 박 당선인과 문 후보의 지역별 지지율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지도(그림3)도 그렸다. 이번엔 박 당선인을 붉은색, 문 후보는 초록색으로 표시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연두색과 주황색을 통해 두 후보가 여러 지역에서 치열하게 경합했음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이전에도 ‘특이한 연구’를 많이 했다. 지난해 8월 발표한 논문 주제는 ‘프로야구 구단이 원정경기를 다닐 때 발생하는 이동거리 격차를 최소화할 경기 일정 수립 방법’. 이것이 물리학 논문거리가 되나 싶은데, 그의 설명은 꽤 진지하다. 통계물리학에서 널리 사용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롯데 팬인 친구가 ‘롯데는 다른 팀에 비해 이동거리가 길어 전력 손실이 크다’고 푸념하는 것을 보고 과학적으로 최적의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자. 그가 2007년 역시 논문으로 발표한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다. 김 교수는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한 통계적 분석방법을 활용해 당시 유행하던 ‘B형 남자 신드롬’은 실체가 없음을 밝혔다. 혈액형과 성격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 이 논문의 성과다.



이쯤 되면 그가 하는 ‘물리학’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득표율 지도, 프로야구 경기일정, 혈액형 등이 ‘점잖은’ 물리학자가 연구할 만한 주제가 되는 걸까. 이 질문에 김 교수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 내가 인용하는 게 조순 전 부총리의 ‘경제학원론’ 서문에 나오는 말씀이다. 조순 전 부총리도 아마 ‘당신이 하는 게 경제학 맞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던 모양이다. 그분이 내린 결론은 ‘경제학이란 경제학자가 하는 것’이라는 거다. 내 답도 마찬가지다. 물리학은 연구 대상에 따라 정의되는 게 아니다. 물리학자가 하는 게 곧 물리학이다.”

‘하하’ 소리 내 웃는 김 교수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어떤 주제를 다루든 물리학적 연구 방법을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를 물리학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이 곧 물리학”이라는 말로 들렸다.

“쓸모없는 연구만 한다고? 일상이 궁금한 것 못 참아”
물리학 기법으로 보는 세상

‘물리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제학원론’을 끌어들여 답하다니, 보통 내공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연구실 분위기도 일반 과학자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김 교수 책상 위에 막 읽은 듯 놓인 책 제목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가 한편에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연도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고,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와 ‘자유론’ 등 철학서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론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역시 전문 과학서적임이 분명한 원서들이기는 하다. 연구실 한쪽 벽에 붙은 큰 칠판에도 각종 수식이 어지럽게 적혀 있다. 김 교수는 인문학적 주제와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에 관심이 많은 물리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내가 수행하는 연구 가운데 70%는 일반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표준적 물리학 주제들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들은 나머지 30%에 속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2006년 한국물리학회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는 40세 이하 연구자에게 주는 ‘용봉상’ 등을 수상한 저명 과학자다.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연구의 30%를 독특한 주제에 할애하게 된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해 “통계물리학이라는 전공과 평소 관심사가 접목된 결과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통계물리학은 굉장히 많은 입자로 이뤄진 시스템을 분석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다.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굉장히 많은 입자로 이뤄져 있지 않나. 공기, 책상, 나아가 인간 사회까지. 통계물리학적 기법은 이 모든 것을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래서 일상에서 궁금한 주제를 만날 때마다 내가 공부한 물리학적 기법을 활용해 연구한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한때 세계의 성씨 분포에 대해 연구한 적도 있다. 스웨덴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하는 동안 수많은 ‘피터’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서구 국가의 경우, 이름이 몇 개 없는 대신 성씨가 다양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성씨가 제한적인 대신 이름이 무척 많다. 우리나라의 성씨 분포와 서양의 이름 분포를 비교하면 어떤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두 눈 가득 흥미진진한 미소가 어린다. 그는 이렇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궁금증을 물리학적 방식을 동원해 풀이하는 것을 즐긴다. 혈액형에 대한 연구도 그렇게 출발했다.

“어느 날 아내와 집에서 밥을 먹다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아내가 혈액형에 따라 사람 성격이 다르다고 우겨서다.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딱히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마침 사회적으로 ‘B형 남자’에 대한 각종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과연 그런가를 과학적으로 검증해야겠다고 생각해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 성격유형과 혈액형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냈다. 지금껏 쓴 수많은 논문 가운데 ‘감사의 글’에 아내를 언급한 건 그거 하나뿐이다.”

김 교수가 또 한 번 소리 내 웃었다. 재미있는 건 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사실. 흔히 ‘소심한 성격’으로 여겨지는 혈액형이다. 아내는 “당신이 그 주제로 논문을 쓴 것만 봐도 ‘A형 남자’가 소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김 교수를 놀렸다. 결국 그의 연구는 별다른 ‘쓸모’없이 마무리된 셈이다.

온갖 호기심이 연구 출발점

“쓸모없는 연구만 한다고? 일상이 궁금한 것 못 참아”
연구 대부분이 그랬다. 김 교수는 지금껏 발표한 여러 연구의 ‘유용성’을 묻는 질문에 웃기만 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단발적 연구가 물리학자로서 학문적 깊이를 쌓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지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과학자 중에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분이 많다. 과학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궁금하면 연구하고, 재미없으면 다른 걸 한다. 그래서 연구가 매번 아주 즐겁다.”

그의 이런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다. 학문의 가치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간과 사회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렇다면 그의 연구는 매우 ‘쓸모 있는 것’이 된다.

또 다른 ‘유용성’도 있다. 과학이 실은 참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종종 특강을 한다. 그 아이들에게 왜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대부분 ‘노벨상을 받고 싶어서’라거나 ‘우리나라를 기술적으로 훌륭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참 좋은 이야기들이지만 과학은 그런 사람이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세상이 궁금한 사람, 알고 싶은 것이 많고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바로 과학자다. 그는 “지금 내가 하는 연구가 어느 저널에 실릴지, 아니 과연 논문이 될 수나 있을지조차 몰라도 재밌고 좋아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그도 대학평가 시스템에 맞춰 국제학술지에 실릴 논문을 써야 하고, 함께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해 연구비 확보에도 힘을 쏟는다. 그러나 이때조차 연구 주제를 정하는 기준은 ‘유용성’보다 ‘학문적 즐거움’이다. 그가 살짝 공개한 다음 연구 주제는 물고기의 체질량지수(BMI). 물속에서 생활해 중력 영향을 받지 않는 물고기의 BMI는 사람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 연구 출발점이다. 그는 “연구비를 확보하려고 이 연구가 어느 분야에 쓸모 있을지 한참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어자원(漁資源) 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더라”며 또 한 번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조만간 어류생태학자들과 협력해 다양한 어종의 BMI를 분석, 연구할 계획이다.

“가끔은 과학자 삶이 천형(天刑)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지금 내가 관심을 둔 주제에 혼신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지금 시작하는 것만큼 재미있지 않다. 평생 이렇게 ‘행복한 과학자’로 사는 것이 내 꿈이다.”

만면에 아이 같은 미소를 띤 채 답하는 김 교수를 보자 문득 그의 다음 ‘물리학’ 논문이 궁금해졌다.



주간동아 2013.01.14 871호 (p36~38)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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