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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만리(茶香萬里)

뜨겁게 진하게 마시는 ‘비타민C’

가루차

  •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뜨겁게 진하게 마시는 ‘비타민C’

뜨겁게 진하게 마시는 ‘비타민C’

가루차 마시는 요령
넓은 사발 형태의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부어 차그릇을 따뜻하게 데운 후 물을 버린다. 가루차를 두 티스푼(2g) 넣고 뜨거운 물 100cc 정도를 부은 후 차선으로 거품이 하얗게 일도록 저어 마신다. 고소하면서도 풀향기 가득한 가루차는 다식을 먹고 마셔야 위에 부담이 적다.

연일 칼추위로 채소값이 몇 배 뛰어 올겨울에는 특히 비타민C를 보충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 가루차 한 잔을 마시면 우리 몸에 필요한 하루 비타민C 양을 충족할 수 있다.

가루차는 차나무에서 찻잎을 채취해 바짝 말려 미세하게 가루를 낸 것으로, 뜨거운 물에 휘저어 마신다. 가루를 마신다고 해서 말차(抹茶)라고도 한다. 가루차는 한 잔을 마셔도 차가 가진 수백 종류의 성분을 모두 섭취할 수 있어 목말라 마시는 예사로운 차가 아니라 약이 되는 마실 거리다.

잘 알려진 대로 차는 암 억제, 신종 독감 퇴치, 피부미용 효과까지 지닌 신비의 약초다. 중국 석학 린위탕(林語堂·1895∼1976)이 “차나무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탄했던 것만 봐도 우리 몸과 마음을 얼마나 정화해주는지 알 수 있다.

가루차를 만들려면 먼저 차나무부터 관리해야 한다. 차 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날 볏짚으로 차나무에 지붕을 만들어 햇볕을 직접 받지 않고 그늘에서 자랄 수 있게 해준다. 찻잎째 마시기 때문에 쓰거나 떫은맛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햇볕이 직접 닿으면 카테킨 성분이 많아져 떫은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가루차를 만들려면 어린 찻잎을 따서 뜨거운 수증기에 10~20초 찐다. 찌는 즉시 변색을 막기 위해 냉각한 후 완전히 건조해 3~5mm 길이로 자른다. 이때 엽맥까지도 가려내는 섬세한 작업을 거친 후 맷돌 같은 말차 제조용 기계를 이용해 미세한 가루로 만든다. 그래야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거품이 하얗게 일어난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차문화의 정수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이 가루차다. 3명 정도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차실을 꾸미고 손님을 초대해 차 한 잔을 만들어내는 전 과정을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물론, 미국 등 다른 국가 원수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반드시 차실에 들러 가루차 한 잔을 마시는 엄숙한 수순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 그토록 자랑하는 국보인 차 사발(다완)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우리 차의 정체성과 차문화의 우수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엔 아주 먼 옛날부터 가루차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찻잎을 쪄서 덩어리로 만들어 말려 보관했다가, 맷돌에 갈아 청자 사발에 담아 차선으로 휘저어 부처께 헌다하거나 외국 사신이 오면 왕이 가루차를 대접했다. 왕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는 차군사(茶軍士)가 차를 가는 맷돌 등을 짊어지고 뒤따랐다.

이뿐 아니라 승려와 선비들이 즐긴 고급 놀이문화도 차놀이였다. 찻자리에서 찻물은 샘물인지 개울물인지 석간수인지, 차 산지는 어딘지, 찻잔은 누구 솜씨인지 등을 알아맞히면 지적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 때문에 비색의 고려청자가 탄생했으며, 도공들이 분청 찻잔과 조선 백자까지 혼신을 다해 만들어냈다. 임진왜란도 이런 차 사발을 탐낸 일본인들이 도발한 도자기 전쟁이었다는 설도 있다.

차나무 잎 성분에는 물에 녹는 수용성과 기름에 녹는 지용성이 있다. 잎녹차를 물에 우리면 40%의 수용성만 섭취하지만 가루차는 물에 녹지 않는 비타민A나 토코페롤, 섬유질 등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특히 잎녹차에는 아미노산과 엽록소가 많다. 싱그럽게 보이는 초록빛 가루차는 빵이나 국수, 아이스크림, 푸딩, 젤리 등 요리 부재료로도 활용되면서 맛과 모양에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녹차를 우려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게 음료수로 마시기엔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제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오설록 등에서 가루차를 생산한다.



주간동아 2013.01.14 871호 (p73~73)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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