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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서울 도심 속 시골 모습 희망으로 땀방울 흘리는 서민들 “올해도 파이팅”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동아일보 사옥에서 바라본 충정로 전경.

‘충정리.’ 도심 속 시골 같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를 뜻하는 말이다.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으로 처음 출근한 날 느낌은 ‘여기가 과연 서울인가’였다. 광화문과 신촌 사이에 끼었으면서도 옛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 구세군 건물과 풍산그룹 사옥이 들어섰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아파트(1933년)를 비롯한 옛 가옥들이 있는 한 이 분위기는 지속될 듯하다.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이 자리한 골목에 국제결혼상담소가 있는 곳이 어디 흔할까. 번쩍이는 사람이나 건물도 드물다. 그래선지 이곳에 오면 집에서 기른 채소를 머리에 이고 팔러 나온 아낙처럼 씩씩해진다. 부족해도 기량을 발휘하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자괴감 혹은 자신감을 등에 업고 있을까.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2013년 새해를 맞아 충정로 사람들을 만나봤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을 통합(2008년 5월)한 충현동에는 2만4000여 명이 산다. 빌딩 속에서 일하다 밤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지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앞에는 8개월 동안 이탈하지 않고 정리해고 위협에 맞서며 파업 시위를 하는 노조원 100여 명도 있다. 일상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충정로에 사는 다양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봤다. 얼핏 독창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니 대한민국 소시민이 엿보였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미동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진솔이네 구둣방’. 엊그제 부츠 수선을 맡기러 갔다가 주인아주머니가 왼손에 끼운 남자 구두를 천(융)을 탄탄히 씌운 오른손으로 꼼꼼히 닦고, 그것을 주인아저씨가 검수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터다.

1월 7일 오전 10시. 똑똑, 여닫이문을 열었다. 충정로에 사는 분들에게 새해 계획을 묻는다고 하자 주인아저씨가 “특별할 건 없는데…”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월요일 아침인데도 손님이 하나 둘 찾아와 그때마다 대화를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 부부를 일으켜 세운 ‘구둣방’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사 앞에서 노조원 100여 명이 정리해고 위협에 맞서 천막 시위를 하고 있다.

김일두(44), 김은희(41) 부부. 2003년부터 이곳에서 구둣방을 한 김씨는 보험사, 컴퓨터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 해고됐다고 한다. 무리하게 대출받아 PC방을 차린 데다 도둑까지 들어 빚 2억 원을 졌고, 자살을 고민하던 때 누나가 이 일을 권했다.

“어떤 일이든 할 테니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마침 이곳에서 구둣방을 하던 분이 아이 때문에 직업을 바꾸겠다기에 바로 그분께 한 달 동안 기술을 전수받아 바로 시작했어요. 직업 귀천을 따질 겨를이 없었죠. 손님을 깍듯이 모시겠다고 마음먹자 일이 술술 풀렸습니다. PC방에서 일할 때보다 아내 얼굴도 자주 보게 됐고요.”

이 일을 하며 빚을 청산했지만 좋은 일만 찾아온 건 아니다. 칼로 플라스틱 굽을 손질하다 무릎을 찔러 수술을 두 번 했고, 물품을 싣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씨는 “경기가 안 좋으면 수선하는 사람이 많고, 경기가 좋으면 구두 닦는 사람이 많다”며 웃었다.

“우리 가정은 잘될 일만 남았어요. 아이가 이 직업을 부끄러워하기에 제가 일하는 이유를 설명해줬죠. 앞으로도 손님에게 만족을 주고,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수선할 때마다 손님께 어떠냐고 물으면 ‘좋아요’라고 하시는데, 제가 그 소리 들으려고 일해요.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웃음이 절로 납니다(웃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세상에 멋진 일은 없다. 그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란 광고 카피가 상투적이지 않게 다가왔다. 어느새 오후. 1평(3.3㎡) 반짜리 옷가게 ‘바운시그레이’가 떠올랐다. 이곳을 애용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손님이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보려면 주인이 밖으로 나와야 해서 불편하지만 벽에 걸린 앙드레김 그림을 보면서 디자이너 꿈을 키우는 사장님을 응원하게 된다”고한다. ‘동굴’을 열고 들어가자 웅크리고 있는 귀여운 큰곰, 이우혁(39) 씨가 보였다. 그는 인터뷰를 꺼렸지만 40대 손님이 “인터뷰하라”며 힘을 실어주자 마지못해 앉았다.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신중하게 말하는 그는 금속공예과 출신의 패션디자이너. 국내 유수 브랜드에서 비주얼머천다이저로 일하면서 급기야 옷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직접 떠준 스웨터 덕에 옷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늦다면 늦은 33세. 직업학교에서 양장기술사 패턴자격증 과정을 마쳤고, 패턴실과 부티크를 거쳐 2007년 독립했다. 집에서 작업하며 옷을 팔았고, 자신의 가게를 내겠다고 해서 2008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을 주고 여기에 들어왔다. 이곳을 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다만 주머니 사정과 들어맞았다고 한다.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진솔이네 구둣방’을 운영하는 김일두, 김은희 부부. ‘바운시그레이’ 주인장 이우혁 씨. ‘영자살롱’을 개업한 박형수, 윤정환 씨(위부터).

가게 바로 위가 화장실이라 대소변 냄새가 내려오는 데다, 공간이 작아 마름질을 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그는 ‘생선장사’를 택했다. 매일같이 새벽시장에 나가 신선한 옷을 떼와 팔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표에 판매자 연락처를 적어두는 한편, 포장봉투와 가격표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그에게 불경기 대책을 묻자 느릿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한다.

“경기가 좋은 적이 있나요. 나아진 적 없잖아요. 경기 같은 건 신경 안 써요. 올해 최악, 내년에 최악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은 저도 하겠어요. 이곳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 여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옷을 좋은 값에 팔면서 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 꿈을 맛있게 요리하는 청년들

그란데 사이즈 커피를 기어코 기자 손에 쥐어준 그를 보며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게에서 나와 3분여를 걸어 요즘 충정로에서 뜨는 ‘영자살롱’에 갔다. ‘이태리 포장마차 집’을 표방하며 11월 개업했는데,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후식(귤, 껌)을 계속해서 쥐어주고 우동값에 파스타를 내놓는 그들이 궁금했다.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파스타를 만드는 박형수(31) 씨와 서빙과 카운터를 담당하는 윤정환(38) 씨. 문을 빠끔 열고 취재를 문의하자 생애 첫 창업을 감행한 청년들답게 침 튀기며 포부를 설명한다.

“대학을 자퇴하고 방황했는데, 아는 형이 요리사가 된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26세 때부터 호텔, 서래마을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에서 보조로 일했고 이후 청담동, 소공동에서 일했어요. 해외 수입 재료를 굳이 쓰고 싶지 않고, 가격 거품도 빼고 싶더라고요.”(박형수)

“직장에 다니다 전망이 없는 것 같아 할 일을 찾고 있었어요. ‘하려는 일을 3년만 하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친형 말에 용기를 내 일본식 선술집에서 일식을 배우기 시작했죠. 주방보조로 일식, 중식, 양식을 두루 거쳤는데, 이 동생은 서로 중식 보조로 일하다 만났어요(웃음).”(윤정환)

이들도 예산 때문에 충정로에 둥지를 튼 경우. 매운 홍합요리를 만들려고 닭발집에 나이를 속여 위장취업도 감행했던 윤씨는 맛만큼이나 고객 만족도를 중시한다.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손님에게 레드카드를 쥐어주고 무료로 식사하게할 정도다. 점심시간이 아니면 줄곧 텅 비어 있는데도 “장사 안 되면 책 읽어 좋고, 장사 되면 돈 벌어 좋다”고 말하는 속없는 두 남자. 이들에게 올해 목표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폴스미스 구두를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정말 이게 다인가” 묻자 박씨가 쭈뼛대다 진심을 털어놓았다.

“아들로 인정받고 싶어요. 올해는 정말… 가족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 손님도 나도 같이 먹고 사는 일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음식점 ‘전주집’을 운영하는 최현재 씨. 40여 년 동안 생강 장수로 사는 강영근, 장순녀 부부. 커피 전문점 ‘카파 에스프레소’를 운영하는 이근열 씨(위부터).

영자살롱의 ‘영자’는 윤정환 씨 어머니 이름. 이 청년들에게도 가족은 살아가는 동력인 듯하다. 노숙자가 살아갈 힘을 얻기 어려운 건 가족이 없기 때문이라는 한 취재원의 말이 떠올랐다. 문을 닫고 나서니 전주집 최현재(52) 사장이 보였다. 소박한 가정집 한정식을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전주집은 충정로의 유명 맛집이다.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은 최 사장에게 다짜고짜 음식 장사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최 사장은 외삼촌의 처남을 따라 철학원을 운영하며 사주를 보다가, 어느 날 맛있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음식점 주인 얼굴을 보고 음식 장사가 좋아 보였다고 한다. 아내와 어머니 사주에 ‘식신’이 있던 상황. 단골 손님이 지금 이 자리를 권하자 전주를 떠나 20여 년 전 식당을 시작했다. 한 달에 닷새만 일하면 한 달 경비가 되고, 나머지 매상은 순수익이 되던 시절이다.

“물가나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 사실 2001년부터 1만2000원 한정식을 만들어 반찬 가짓수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손님도 나도 같이 먹고 살아야 하니 올릴 수 있나요. 손님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집으로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요.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월급을 탄다는 심정으로 일합니다.”

매일 아침 5시 50분이면 중림시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사오는 부지런한 최 사장의 올해 계획은 뭘까. 몸이 아파 지난해 4개월 동안 문 닫고 쉬었기에 쉼을 원할 듯했다.

“사주를 매년 10월 정도에 봐요. 미리 마음을 가다듬는 거죠. 동지를 기점으로 기운이 바뀌는데, 제 올해 사주를 보니까 여유를 찾아야 하는 것으로 나오더라고요. 식당 오래 하느라 안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주중에는 열심히 일해도 주말에는 함께 여행 다니고 싶어요.”

기자가 아는 충정로 사람들은 거의 바닥난 상태. 사장님에게 충정로에 보물 같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낡은 휴대전화를 눌러 주선을 해줬고. 기자는 이튿날 아침 충정로에서 가장 성실하다는 이원상사 대표 강영근(72), 장순녀(66) 부부를 만나러 갔다.

경기대 뒷길 단독주택. 정갈한 마당에 아기자기한 돌탑이 쌓여 있다. 40여 년 동안 충정로에서 생강을 다듬어 팔며 2남2녀를 키웠다고 한다. 25년 동안 유명한 호텔 일식집에 마늘과 생강을 납품해서인지 곳곳에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장씨는 당황하면서도 낯선 방문객에게 생강차를 건넸다.

부부의 고향은 전북 완주군 고산면 화정리. 둘은 서로에게 첫사랑이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남자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여자네 집에 얹혀살다 개울 길에서 고백했다.

“이이가 ‘네가 먼저 시집가면 내가 먹여 살리고, 내가 먼저 장가가면 네가 먹여 살려라’고 해서 뭔 말인가 싶었는데 그때 인연이 돼 결혼한 거예요. 결혼 전 다른 집 머슴으로 살면서 ‘똥지게’를 날랐지만 성실하고 착했어요. 돈은 하나도 없었지만(웃음).”(장순녀)

“고향이 생강으로 유명해 합동시장에서 생강 50kg를 떼와서 이 집 저 집 팔았어요. 고향에서 품 팔며 ‘뼉따구’ 아프게 일해도 하루 쌀 한 말을 버는데, 이렇게 하면 쌀 닷 말을 벌었지. 그러다 음식집에서 생강을 어렵게 까는 걸 보고 아예 까서 주면 좋겠다 싶어 구멍가게에서 전화 주문을 받아 납품했는데 돈을 곱절로 벌었어(웃음).”(강영근)

“남의 논에서 품만 판 설움을 풀려고” 해마다 논 한 마지기라도 샀다. 지금도 주말이면 큰아들과 하루 평균 생강 20kg, 마늘 40kg를 다듬어 납품하느라 부부는 쉴 틈이 없다. 남편 엄지손톱은 이물질을 떼어내려고 흡혈귀처럼 날카롭게 된 지 오래. 쉬지 못하는 일상, 안주인은 첫사랑과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를 왜 안 해요(웃음). 밤을 새워 온 가족이 생강을 까니까 지금도 뼈마디가 시려요. 요즘은 종로문화센터에서 수영도 하고 그러니 좀 나은데, 아프죠. 그래도 저민 생강 모아 생강차 많이 마셔서 그런지 감기는 통 안 걸리네요(웃음).”

# 힘들어도 한 우물만 파라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아파트’.

노부부의 새해 소망은 혼기 꽉 찬 두 딸이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들여다보면 걱정거리가 없는 집이 없기 때문에 그마저도 순리에 맡긴다”고 말한다.

맨손으로 올라와 성과를 낸 사람들을 보며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면서 선후배들이 꼭 가보라고 말한 테이크아웃 커피집 ‘카파 에스프레소’를 찾았다.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앞에서 12년째 커피 집을 하는 이근열(53) 사장은 커피를 닮은 사람이라 그런지 단골이 많은 편. 대형 커피 가맹점 사이에서 외롭게 버티는 그를 찾아가자 아메리카노 한 잔부터 내민다.

“2001년 커피 집을 열었을 때는 저만 커피를 팔았어요. 커피문화에도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이 나오면서 커피문화가 시작됐고 소규모 테이크아웃점이 2005, 2006년까지 붐을 이루다, 요즘에는 대형화된 커피숍 안에서 즐기는 문화가 됐어요. 하루에 200, 300잔씩 팔던 시절이 있었죠. 충정로에 2호점을 내서 프랜차이즈 준비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장소로도 썼고요. 하지만 작은 가게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요. 저는 좋은 커피와 좋은 과일주스로 승부를 걸어요. 생과일을 푸짐하게 넣은 것이 우리 가게 강점이죠. 요즘도 겨울철만 아니면 영등포시장에 일주일에 서너 번 가요.”

‘충정로’에 살어리랏다
자영업자들이 창업하기 가장 ‘만만하게’ 여기는 아이템을 이 사장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식품회사에 다니던 그는 강남에서 피자집을 하다 서울의 낙후된 지역에서 청소년을 위한 카페를 열었다. 떡볶이, 라면을 팔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 영화를 보여줬는데, 입시 결과에 따라 사심 없이 축하파티, 위로파티를 하면서 인심을 쓰니 돈이 벌리지 않았다. 결국 대학로에서 학림다방을 운영하던 친형을 돕던 중 1993년부터 충정로 종근당 사옥 부근에서 학림다방 원두로 커피 전문점을 시작했고, 그 건물을 다른 사람이 매입하면서 이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 사장은 “테이크아웃할 때만이라도 값싸고 좋은 커피를 마셔달라”고 권했다.

이틀 동안 충정로 사람들을 취재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신문을 펼치자 경기가 점점 나빠진다는 뉴스가 가득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움츠러드는 사람들에게 충정로 사람들의 사연을 전하고 싶다.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지만 우리 곁에는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글 마무리를 이번만큼은 전문가가 아닌 소시민에게 넘겨본다.

“저만 해도 6시 40분에 나와 10시에 퇴근하면서 커피를 팔아요. 제 인건비를 생각하면 장사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올해도 그저 긴 안목으로 버티고 싶습니다. 지금처럼만요.”



주간동아 2013.01.14 871호 (p24~27)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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