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4

2012.11.26

길거리서 뻑뻑… 남자, 너나 잘~하세요

담배 피우는 여자

  • 입력2012-11-26 11: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길거리서 뻑뻑… 남자, 너나 잘~하세요

    ‘백인 노예’, 르콩트 뒤 노위, 1888년, 캔버스에 유채, 183×149, 낭트 미술관 소장.

    금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들 때가 바로 식후나 술자리에서다. 흡연자 사이에 ‘식후 불연초는 즉사’라는 말이 있듯이 식사 후 담배 한 모금은 정말이지 천국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식사 후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장 쥘 앙투안 르콩트 뒤 노위(1842~1923)의 ‘백인 노예’다. 벌거벗은 여자가 쿠션에 기대앉아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입으로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녀 옆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와 과일이 놓였다. 접시에 음식이 많이 남아 있지만 숟가락을 뒤집어놓은 것으로 봐서 여자가 식사를 마쳤음을 알 수 있다.

    오렌지색 옷을 입은 흑인 하녀가 앉은 자세로 자루에 담긴 우유를 욕조에 조심스럽게 쏟으면서 담배 피우는 여자를 바라본다. 그녀 옆에는 또 다른 하인이 빈 자루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욕조에 이미 많은 양의 우유를 부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흑인 하녀가 욕조에 우유를 붓는 것은 벌거벗은 여자의 목욕을 위한 것이다. 우유 목욕은 여자에게 최고의 피부미용법이다. 여자의 잡티 없는 매끄러운 피부는 피부미용에 꽤 신경을 쓴 결과며, 하녀가 욕조에 우유를 붓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대리석으로 만든 욕조와 쿠션 장식, 그리고 도자기로 된 식기들은 그림 배경이 동방이며, 머리 위 티아라와 반지는 여자가 하렘에 머무는 최상급 오달리스크임을 암시한다. 굳은살 없이 뽀얀 발바닥은 여자가 노동하는 노예가 아니라 술탄에게 성적 쾌감을 주기 위한 백인 노예임을 암시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식사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 작품은 하렘의 여자를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흑인 하녀의 오렌지색 옷은 검은 피부를 더 검게 부각하는 동시에 백인 여자의 희고 매끄러운 살결을 강조한다. 르콩트 뒤 노위가 이 작품에서 백인 여자를 강조한 것은 예로부터 중동지역 노예시장에서 백인 여자는 쾌락의 도구로 높이 평가되고, 흑인 하녀는 집안일이나 노동을 위해 거래되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요즘 버스 정류장이나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정부가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려고 금연구역을 확대 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흡연구역에는 온통 남자들뿐이다. 어쩌다 여자 흡연자가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터라, 할머니가 아니고서는 이용하는 여자가 거의 없다. 그래서 여자 흡연자는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를 주로 찾는다.

    길거리서 뻑뻑… 남자, 너나 잘~하세요

    ‘자두’, 마네, 1878년, 캔버스에 유채, 73×50,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왼쪽).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 고흐, 1886년, 캔버스에 유채, 32×24,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자두’다. 여자는 탁자에 기대 한 손엔 담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턱을 괴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탁자 위엔 자두가 담긴 술잔이 놓여 있다.

    탁자와 붉은색 소파, 그리고 소파 뒤에 보이는 유리창 장식은 카페 누벨 아텐을 나타낸다. 프랑스 피갈 광장에 있는 카페 누벨 아텐은 나폴레옹 3세의 정치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로 유명했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이 역사적인 모임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자두를 넣은 브랜디는 당시 많은 사람이 즐겨 마시던 술이다.

    손도 대지 않는 브랜디와 불이 붙지 않은 담배는 여자가 생각 중임을 나타내며, 한편으로 그녀가 매춘부임을 암시한다. 당시 상류층 여자는 카페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었다. 여자의 장밋빛 살결과 분홍색 재킷, 레이스로 감싼 모자가 아늑한 카페 분위기와 어우러져 매춘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금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근대 여성처럼 보인다.

    마네는 카페 누벨 아텐의 단골손님이었다. 항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손님들의 상태를 탐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에 카페 분위기와 손님들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모델은 여배우 엘렌 앙드레다.

    남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개의치 않으면서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용납 못하는 남자가 많다. 남자는 사소한 것일수록 여자에게 남자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담배 피우는 여자에게 그렇다. 담배를 남자 전유물로 여기는 탓이다.

    담배를 통해 남성다움을 강조한 작품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담배를 물고 있는 해골’이다. 해골 입에 불붙은 담배가 물려 있고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담배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꽉 물려 끝이 납작해졌다. 전통적으로 담배는 남성다움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기호품을 나타내며 해골은 남자를 암시한다.

    이 작품은 고흐의 초기작으로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장난삼아 그린 것이다. 고흐는 당시 담배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했지만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위장병과 치통으로 고생하던 터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담배 연기를 통해 건강의 위험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때만 해도 담배의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담배를 꽉 문 해골은 고흐의 강박관념을 나타낸다.

    담배 피우는 여자를 욕하기 전에 남자, 너나 잘하세요. 길거리에서 남자들이 불붙은 담배를 들고 다니는 통에 비흡연자는 간접흡연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손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여자는 담배를 피우더라도 가만히 서서 피운다. 그러니 남에게 화상 입힐 일은 드물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