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2

2012.11.12

“우리 동네 빵집, 오이시이”

일본 빵집 수 1만4000여 개…실력과 정성에 ‘웰메이드’ 막강 경쟁력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2-11-12 11: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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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빵집, 오이시이”

    특화된 옛날식 빵을 판매하는 ‘안젤리카’.

    일본에 다녀온 사람은 저마다 ‘빵집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가이드북을 들고 유명한 빵집을 찾아간 이야기, 골목길을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작은 빵집에 대한 추억, 갓 구운 빵 냄새에 이끌려 생각 없이 들어간 빵집에서 만난 기막힌 빵 맛의 감동…. 이다음에는 어김없이 한 마디가 더 붙는다.

    “왜 우리나라에는 그런 빵집이 없는 거야?”

    대기업은 ‘유통빵’ 중심으로 영업

    일본 빵식보급협의회(パン食普及協議會) 통계에 따르면, 일본 빵집 수는 약 1만4542개. 숫자만으로 따진다면 1만1685개(2011년 국세청 등록 기준, 무등록 가게 포함)인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현격한 ‘기술 차이’를 보이며 맛과 가게 경영 노하우에서 크게 밀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빵명장들에게 체계적으로 지도받은 국내파 제빵사들과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현지 유명 가게에서 수련한 유학파 셰프들이 앞다퉈 가게를 열면서 한국 제빵 수준도 높아졌다. 조건만으로 봤을 때 일본에 뒤질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양국 빵집을 비교할 때 주저 없이 일본 손을 들어준다. 비슷한 조건임에도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가와구치시(市)에서 가게 7개를 운영하는 ‘데이지’ 회장 구라타 히로카스 셰프는 인터뷰에서 “일본 빵집은 셰프나 파티셰가 직접 빵과 케이크를 굽고 가게를 운영하는 개인가게 형식인 데 반해, 한국은 프랜차이즈 가게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소비자 처지에서 어느 지점에 가든 비슷한 수준의 맛과 품질을 가진 빵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와 동시에 가게마다 취급하는 빵 종류와 맛이 같아 선택의 폭이 좁다는 단점도 있다. 본사로부터 냉동반죽과 생크림, 팥소 같은 제빵 재료를 일괄적으로 배송받아 빵을 만들기 때문에 제빵사의 솜씨를 발휘할 여지가 적어 실력 있는 제빵장인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빵집 수에선 큰 차이가 없지만 일본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도 ‘대기업 빵’이 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제빵산업 규모는 약 1조8000억 엔으로, 그중 75%가 야마자키제빵, 후지빵그룹 등 21개 대기업에서 나오는 매출이다(2011년 기준). 매출 대부분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파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완제품인 이른바 ‘유통빵’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선 기업이 유통빵과 프랜차이즈 빵집에 모두 손을 대지만, 일본 제빵기업은 철저하게 유통빵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개별 가게를 내지 않는 것은 유통빵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유통빵은 기존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기 때문에 가게 임대료, 시설 설치비, 운영비, 인건비 등 가게 운영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만큼 연구개발(R·D)과 유통망 확보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다. 이는 곧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빵을 선보이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게다가 전국 편의점 등지에서 동일한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어 간편하게 빵을 구매하길 원하는 남성 고객과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물론 전국에 지점을 둔 빵집 브랜드도 존재하지만, 이 역시 대기업 영역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식 빵집인 ‘안데르센’의 경우, 가게 수는 71개에 지나지 않는다. 1967년 히로시마의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가게 수를 늘려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동네빵집의 발전상’이라고 평가받는다.

    제빵업계 1위 기업인 야마자키제빵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양과자점 ‘후지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페코짱’ 캐릭터를 내세운 케이크와 완제품 빵, 과자, 캐릭터 상품을 주력으로 하기 때문에 동네빵집과는 고객층도, 판매전략도 다르다.

    현재 일본은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소비 위축과 유통빵의 품질 향상에 따른 경쟁력 약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네빵집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유통빵이 동네빵집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다. 동네빵집의 경쟁력은 ‘빵’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구라타 셰프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재료로, 어떻게 빵을 만들었는지 소비자가 잘 알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손님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빵 만들기에 정성을 쏟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손님이 우리에게 사가는 것은 단순한 빵이 아닌 손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고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안도감”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대기업이 흉내 낼 수 없는 동네빵집의 장점에 대해 여러 예를 들어 설명했다.

    ‘소품목 콤팩트화’로 경영 부담 줄여

    “우리 동네 빵집, 오이시이”

    일본 가와구치에서 동네빵집 7곳을 운영하는 구라타 히로카스 셰프.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맞서는 일본 동네빵집의 핵심전략은 ‘이곳에서밖에는 구입할 수 없는 빵’이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특산품’과 ‘한정판매’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맛과 식감에 대한 연구는 물론, 다른 빵집에선 사용하지 않는 재료로 독특함을 더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빵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을 얻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 덕에 ‘지역 관광명소’로 인기를 끈다.

    대표적인 곳이 도쿄 시모기타자와에 있는 ‘안젤리카’다. 큰길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안젤리카는 카레빵, 미소빵 등 옛날식 빵을 판매하는 가게다. 시모기타자와 출신 연예인들이 TV에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카레빵”이라고 소개한 이후 지금은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유명한 가게가 됐다.

    ‘소품목 콤팩트화’도 경영 부담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33㎡ 내외의 작은 빵집에서 고객의 소비성향과 주인의 특기 등을 고려한 적은 품목의 빵만 만들어 파는 것이다. 이 경우 대부분 주인이 직접 제빵과 판매를 병행하기에 인건비와 가게 유지비를 줄일 수 있고, 재료 구입비와 재고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일본에서 동네빵집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소비자에게 있다. 구라타 셰프는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맞추는 유통빵, 프랜차이즈 빵과는 가격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일본 소비자들은 동네빵집이 양질의 재료를 쓰다 보면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장인의 실력과 정성’ ‘갓 구워낸 빵’이라는 부가가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어떠할까. 일본에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3년 전 수도권에서 자기 가게를 연 한 제빵사는 “손님의 요구는 ‘프랜차이즈와 같은 가격’에 ‘더 맛있는 빵’을 만들라는 것”이라며 “재료 구입비나 인건비 등에서 경쟁이 안 되는데도 같은 값을 요구하는 것은 동네빵집에게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동네빵집을 본떠 외형을 바꾸고 경영전략을 배우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동네빵집의 가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소비자가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동네빵집에 대한 생사여탈권은 프랜차이즈 빵집을 내세운 대기업이 아닌, 소비자 입맛에 달린 것이다. ‘맛의 차이’ ‘품질의 차이’에 지갑을 열 수 있는 당신의 손에 동네빵집의 미래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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