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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살려고 발버둥쳤는데 주변은 자살신호 못 봤다”

‘자살자 특징’ 논문 낸 서종한 경장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살려고 발버둥쳤는데 주변은 자살신호 못 봤다”

“살려고 발버둥쳤는데 주변은 자살신호 못 봤다”
“엊그제도 16세 아이가 자살한 현장을 검시하러 갔습니다. 뛰어내리기 전 창문틀을 양손으로 꾹 잡아 지문이 선명하게 남았더군요. 그 상황에서 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 만나면서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 내밀한 동기를 알고 싶었습니다. 사망자 신체에서 드러난 흔적을 바탕으로 자살, 타살 여부를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한국심리학회지에 논문 ‘한국 자살사망자 특징 : 사례-대조 심리적 부검 연구’를 실은 제주지방경찰청 서종한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경장·34·사진). 매일같이 죽음을 마주하는 그는 2011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창환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경기지방경찰청 김성혜 프로파일러와 함께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연구했다. 11월 7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논문 대표 저자인 그에게 이 연구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서강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 심리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뒤 프로파일러가 됐다. 석사 논문으로 ‘주관적인 안녕감이 탄력성에 미치는 효과 분석’을 쓰면서 ‘개인 행복’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살 현장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볼 때마다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이 제 몫을 하며 살게 돕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때 눈길이 간 것이 ‘심리적 부검’이다. 이는 자살자 가족을 비롯한 지인을 심층 인터뷰하고 유서, 진료기록 등 자료를 분석해 자살자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규명하는 연구 방법으로, 외국에서는 심리적 부검을 자살예방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쓴다. 핀란드는 1987년부터 자살 사례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해, 이를 바탕으로 자살예방실행전략을 만들어 자살률이 20% 이상 감소했다. 미국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자살예방정책을 실시해 자살률이 10만 명당 19명 수준(1990)에서 14명 수준(2000)으로 줄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아시아권에서 이 방법을 통한 자살연구가 늘고 있다.

‘심리적 부검’ 실시한 첫 논문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심리적 부검은 미개척 분야로, 2009년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한국 심리적 부검 모델을 만들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관할 경찰서 소속 형사가 사망자의 지인, 유가족, 의사 등을 대상으로 사망원인을 조사한다. 하지만 이런 조사는 검사가 요청하는 몇몇 사례에 국한된다. 대부분은 관할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의 검시 또는 해당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등을 통해 사망자의 육체적 징후를 살펴 사망 원인을 분석한다. 이에 서종한 프로파일러는 한국 심리적 부검 모델과 함께 미 해군의 심리적 부검 방식을 결합했다. 이 양식에는 사망 당시의 상황, 과거 생활력, 삶의 질, 신체 질환 및 치료 상황, 정신건강 문제, 정신건강 관련 지원 요청, 가족 구성, 자살 전 가족 상황 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됐다.

문제는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살자의 심리적 부검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만큼 자살률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자살자 200명 이상의 심리적 부검을 계획했지만, 지역 경찰청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2009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강원, 충북, 경북, 경기, 제주 등 일부 지방경찰청의 변사사건 수사자료 중 자살로 규명된 사례 56건을 선택해 자살자 주변인 56명만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가족에게 인터뷰를 제안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답장을 준 사람에 한해 전화를 걸고, 우편으로 팸플릿을 보내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다(또한 자살자의 특징을 분석하려고 타살로 규정된 사건 36건을 ‘자살군’의 ‘대조군’으로 택했다).

“자살자 유가족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곤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제가 유가족이라도 인터뷰에 응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만큼 들춰내고 싶지 않은 상처니까요. 그 가족을 만나면서 제가 정서적으로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유가족 6~7명은 인터뷰를 진행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 도중에 그만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구가 드문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죠. 하지만 딸을 잃은 한 어머니가 ‘자식의 자살을 막지 못한 내 경험을 잘 정리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막아달라’며 격려해줘 힘이 됐습니다.”

“살려고 발버둥쳤는데 주변은 자살신호 못 봤다”
자해 시도 경험자 반드시 상담을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살자 대부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징후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자살자는 자살 시도 전 자해 시도를 했던 비율이 46.4%에 달했다. 흔히 자살에 이르는 사람은 자신을 상처 내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져 점점 심한 자해를 하다 치명적인 사고에 이르는 경향을 보인다. 그가 조사한 자살자들 또한 자해 양상으로 손톱을 바늘로 찌르거나, 칼로 손목을 긋고, 스카프나 끈 등으로 목을 묶어 자극 강도를 높인 전력이 있었다. 또한 자살자 상당수는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어 걱정거리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학교, 직장 등에서의 집단 따돌림, 관계 단절, 주위와의 갈등 등 사회 적응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35%로 대조군에 비해 약 30배 높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자해 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경우 상담을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번은 남성과 동거하던 20대 초반 여성의 변사사건을 검시했는데, 자살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음독했지만 유서를 남기지도 않았고, 자해 흔적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여성과 함께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동료로부터 ‘양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성 학대를 당하고 중3 때 가출한 뒤 줄곧 우울증을 앓았다’는 증언을 듣고 정신과 진료 기록증을 보면서 이 사람이 살려고 발버둥 쳤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말 못할 사연을 추적해 더는 자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주간동아 862호 (p52~53)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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