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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산허리마다 색동옷을 입었네

가을 단풍

산허리마다 색동옷을 입었네

산허리마다 색동옷을 입었네

‘퐁텐블로 숲’, 페냐, 1874년, 캔버스에 유채, 39×57, 랭스 갤러리 소장.

온 산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다. 겨울바람이 휘몰아쳐 헐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전 마지막으로 형형색색 옷을 입고 단장한 듯한 모양새다. 마치 여배우가 늙어가는 자기 모습이 보기 싫어 짙게 화장한 듯 화려하다.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은 가을 숲을 그린 작품이 나르시스 디아스 드 라 페냐(1807~1876)의 ‘퐁텐블로 숲’이다. 황금색으로 곱게 물든 숲 속 공터에서 붉은색 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나뭇가지를 줍고 있다. 공터 주변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들은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여인이 어깨에 덮은 검은색 숄은 차가운 가을 날씨를 나타낸다. 나뭇가지를 줍는 모습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내임을 알 수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색은 청명한 가을 하늘을 나타내며, 잿빛 바위가 낙엽을 강조한다. 페냐는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변해가는 나무의 특징을 표현하려고 초록색 위에 황금색과 붉은색을 두텁게 덧칠했다.

빛에 관심이 많았던 페냐는 프랑스 바르비종 근교에 머물면서 퐁텐블로 숲을 관찰했다. 퐁텐블로 숲은 특히 19세기 풍경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 그는 햇빛의 효과를 제대로 표현하려고 커다란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를 선택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가을 정취를 최고조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산 정상이다. 정상에 서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숲을 바라보면 자연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산 정상에 서서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을 그린 작품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칼을 찬 남자가 안개 자욱한 산 정상 가파르게 솟은 바위 위에 서 있는 뒷모습이다.

남자는 골짜기에 급류처럼 흐르는 안개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다. 멀리 안개 밖으로 바위로 된 산봉우리와 산맥이 보인다. 배경 왼쪽은 로젠베르크 산이고 오른쪽은 치르켈슈타인 산이 펼쳐진 엘베 사암 산맥이다. 프리드리히는 드레스덴 전투(1813년) 당시 집을 떠나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엘베 사암 산맥 지방을 여행했다.

산허리마다 색동옷을 입었네

(위)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 1818년경, 캔버스에 유채, 98×74,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소장. (아래) ‘산’, 발튀스, 1937년, 캔버스에 유채, 248×365,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산 정상에 있는 인물은 프리드리히 자신이다. 그는 인물을 즐겨 그렸는데, 대부분 뒷모습만 그린 게 특징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뒷모습은 대개 전사자들에 대한 애국적 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한 명의 인물은 시선을 안개 쪽으로 끌어모으는 작용을 한다. 프리드리히는 비극적이고 고독한 감정과 우수를 창조하려고 차가운 색채를 주로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산은 인생을 상징한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인생의 힘든 여정을 나타내며, 산 정상에 도착한 것은 인생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산봉우리를 둘러싼 안개는 자연 순환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안개와 산봉우리는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며, 안개바다 아래는 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프리드리히는 결혼하던 해 아름다운 아내 때문에 동요하는 자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는 44세까지 독신으로 지내다 25세인 카롤리네 봄버와 결혼했다. 이후 젊은 아내는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결혼 후 프리드리히가 제작한 작품에는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단풍으로 곱게 물든 가을은 산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가 눈을 즐겁게 한다. 적당히 쌓인 낙엽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산행에 나선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 발튀스(본명 발타자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 1908~2001)의 ‘산’이다. 젊은 남녀 4명이 각기 독특한 자세로 산 위에 서 있다.

그림 왼쪽에는 불안한 표정을 한 남자가 지팡이를 짚은 채 쉬고 있고 스커트 차림의 금발 여자는 팔을 들어 올려 기지개를 켠다. 롱스커트에 핸드백, 구두를 신은 여인의 차림은 등산과 어울리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여자임을 암시한다. 그녀의 발아래에 한 여자가 지팡이를 허리에 올려놓은 채 경직된 자세로 누워 자고 있다. 붉은색 재킷과 스커트 차림의 여자는 미국 10대 소녀의 독특한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림 오른쪽 붉은색 재킷을 입은 남자는 금발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대담한 금발 미녀의 매력에 빠져든 남자의 욕망을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뜨거운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절벽을 등산복 차림의 부부가 바라보고 있다. 산은 여자를 상징하며, 그림 왼쪽 남자의 불안한 표정은 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발튀스의 초기작으로 ‘계절에 대한 기획 시리즈 4편 중 하나’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완성한 연작은 아니다. 발튀스는 이 작품에서 산은 실제적으로 그린 반면, 인물들의 행동은 몽환적으로 표현해 현실과 초현실성의 조화를 시도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위 환경이나 주변 인물에 무심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을 산행은 지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변덕스러운 사춘기 소녀처럼, 맑고 청명하다가도 갑자기 옷깃을 여며야 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이 바로 산이다. 가을 산행에 나서기 전 산행에 어울리는 옷차림부터 철저히 갖춰야 한다. 스포츠의 기본은 각이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10.22 859호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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