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골프와 인생

인생에서 스승이 아닌 사람은 없다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인생에서 스승이 아닌 사람은 없다

인생에서 스승이 아닌 사람은 없다
나는 골프친구가 참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에서 골프사관학교라고 부르는 국방대학에서 1년 만에 소위 말하는 싱글에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육·해·공군 장교가 거의 골프친구고, 대학에서 어쭙잖게 강의를 하다 보니 교수 그룹이 또 한편의 친구들이다. 도를 특기와 취미로 삼다 보니 도반들과도 라운딩을 즐긴다.

아파트 이웃도 한 팀이 되어 즐기니, 그야말로 동반자가 없어서 못 칠 일은 없고, 어느 팀에서든 불러주니 가히 골프 신이다. 기량이 신이 아니라 즐기는 데 만큼은 신이라는 말이다. 장교 그룹, 학자 그룹, 도반 그룹을 번갈아가며 천지자연을 논하고 도담(道談)을 나누며 학문적 담소도 나누는 복 받은 사람이다. 회원권은 없지만 아무 때나 불러줘 불백이라고도 불린다. ‘불러주는 백수’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불쌍한 백수’라는 뜻도 있었지만.

인간사 많은 모임이 있지만, 골프친구야말로 지지고 볶고 해도 진정한 친구 사이이다. 직업별로 각자의 특성도 지녀서 상대를 연구하고 그가 가진 구실을 아는 것도 참 재미있다.

옛날 도사들은 도를 터득하고 난 다음 ‘보림’이라고 해서 천하를 방랑하며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지만, 요즘 도사들은 골프로 보림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인품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나는 첫째 조건은 동반자를 하늘로 섬기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골프를 잘 못 치는 친구에게 던지는 한 마디의 조언, 잘 치는 친구에게 보내는 한 마디의 부러움이 골프를 즐기는 사람의 기를 살린다. 그래서 열심히 구라치고 야한 농담을 던지며 하나라도 재미있게 해주는 구실, 바로 골신 또는 불백이라고 불리는 내공의 힘이다.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원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골프 입문에서부터 정상까지 차례대로 계단을 오르게 해준 스승들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코치가 있다. 레슨비를 지불해가며 고수에게 배우려고 열심히 스승을 찾는다. 그리고 연습장에 가보면 나보다 한 수만 높아도 코치를 해주려 한다. 그리고 보기플레이어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대단한 양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다. 연습장에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이 보기플레이어라는 속설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옛날 우리 선인은 뭔가를 처음 시작할 때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만큼 스승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승이란 무엇인가. 그냥 기량만 전수해주면 선생에 지나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입문해 길을 알기에 그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선생이라고 부른다. 가치와 철학, 행동을 전수해줘야만 스승 자격이 있다.

처음 국방대학에서 골프채를 잡기 전, 누구를 스승으로 둘지가 고민이었다. 연습장에 상주하는 일반적인 코치 정도로는 1년 만에 싱글이 되겠다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겠다 싶어 동료 가운데 고수를 찾았다. 특히 공군 조종사는 대부분이 싱글이라, 그들 중 한 명을 유심히 살핀 후 제자를 자청했다. “내 사부가 좀 돼달라”고. 사관학교로 따지면 1년 후배였는데, 흔쾌히 승낙했다. 이전에 내가 도에 입문할 때는 12년이나 어린 후배에게 무릎 꿇고 사부로 모셨다. 그러니 1년 후배를 모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데 이 공군 조종사 사부, 진짜 스승이었다. “선배, 진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할 거지요? 안 그러면 안 가르쳐줘요.” 진정 그러겠다고 약속한 후 고물 골프채를 하나 얻어들고 연습장에 갔다. 그립 잡는 법, 공이 맞는 과학 등을 10여 분간 설명한 다음 “지금부터 한 달간 찍는 법만 합니다. 절대 스윙하지 마세요”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시키는 대로 하루 오전, 오후 두 상자씩 찍는 법만 하는데, 일주일을 하니까 정말 지겨웠다. 하소연을 하면 매몰찬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만두세요.” 쪽팔리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에라, 진짜 시키는 대로만 하자”라며 참고 열심히 찍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그때서야 하프스윙으로 찍어보라고 했다. 정말이지 잘 날아갔다. “일주일 동안 하프스윙만 하세요.” 하루만 해도 무척 잘 날아가는데, 일주일씩이나? 그래도 기왕 사부로 모신 터라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이후 스윙 기본을 배우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두 달 후에는 드라이버를 배우고 일주일간 퍼팅을 연습했다. 다행히 무도 고단자라 신체리듬이 좋아 빠른 속도로 감을 잡았다. 실전에서도 무척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졸랐다. 머리 얹어주십사 하고.

머리 얹는 날, 진짜 사부를 또 한 명 만났다. 해군 헬기 조종사인 동기가 동반자를 자청했다. 그리고 장갑과 모자를 주면서 하는 말이 “오늘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평생 악습이 계속되니 각오 단단히 해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시작과 동시에 혼쭐이 나기 시작했다.

“야! 뛰어. 야, 이 신발넘아, 그린 밟으면 죽어. 이 개×× 비켜서. 저 신발넘이, 공 앞에 가 있으면 네 부조금 낸다. 퍼팅할 때 입 안 다무나, 이 C8넘아….”

한 홀에서만 들은 욕이 10년 동안 들었던 욕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욕은 골프를 칠 때마다 귀에서 뱅뱅 돌아 이후부터 ‘매너’ 김이라는 소리를 듣는 원동력이 됐다. 몇 타를 쳤는지, 어떻게 라운딩을 끝냈는지는 모르고 오직 욕만 기억에 남았다.

나이 40이 다 돼 험한 말을 들으니 “저 새끼가 평소 육군에 감정이 엄청 많았나 보다”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저녁을 먹으며 동반자인 두 사부가 해준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골프는 남을 잘되게 하는 운동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은 나중 일이고, 어쨌든 동반자가 잘 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하나만 갖추면 다른 매너는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는 남에게 가르쳐달라고 매달리지 마라. 오직 혼자 터득해나가는 것이다. 진짜 아쉬울 때 하나만 묻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라. 스승이 가진 방법은 스승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월 처음 골프채를 잡았고, 그해 11월 싱글을 했다. 빠른 진척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기초의 중요성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준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말과 소곤소곤 가르치는 방법만이 능사가 아니라, 지독한 욕과 인격 모독을 가하는 충격요법 역시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도중에 동료 고수들이 돈내기를 하면서 하나도 봐주지 않고 지갑을 싹쓸이해간 것도 충격요법이었다. 한 달 용돈을 모조리 털리고 이를 박박 갈며 밤새도록 연습장에 머문 것은 보조요법이기도 했다. 그들 또한 중요한 스승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찌 골프뿐이랴. 인생에서는 스승 아닌 사람이 없다. 잘되라고 도와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시기하고 질투해 욕하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스승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컨트롤해 가르쳐주는 스승, 말 한 마디로 기를 살려주는 스승, 사기를 치고 도망간 놈이 가르쳐준 내 욕심 보기, 직장 승진 경쟁에서 낙오한 이후 얻은 인생의 지혜…. 이 모든 것을 가르쳐준 동반자 모두가 스승이었다. 나중에 어느 정도 도인 반열에 오른 이후부터는 나 자신이 스승이요, 학생이요, 법제가이자 심판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거기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만난 모두가 스승이었음을 어찌 부인하랴.

살아가면서 얻는 모든 경험이 인생사다. 잘되는 법만 있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마치 연속극에 클라이맥스만 존재하면 연속극이 아니듯,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스승이다. 그 스승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주간동아 2012.10.22 859호 (p54~55)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