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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우린 동거 스타일”

프랑스 젊은이들 사랑과 동거는 자연스러운 모습

  • 백연주 파리 통신원 byj513@naver.com

“우린 동거 스타일”

“우린 동거 스타일”
한국인에게 ‘동거’는 여전히 껄끄러운 단어다.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동거’라는 주홍글씨는 결혼에 있어 절대적 흠으로 여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거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프랑스 동거문화를 들여다봤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친구 K군 커플을 만났다. 필자가 아는 한국인 커플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거하는 두 사람의 용기가 가상했다. 그러나 그들의‘동거’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예술계통에 종사하는 K군의 주 활동무대는 ‘문화의 거리’라고 부르는 서울 대학로다. K군은 집이 멀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독립 허락을 받아 방을 하나 얻었다. 여자친구 L양은 부산에 있는 부모에게 “서울에서 만난 여자친구들과 함께 산다”고 둘러대고 K군이 얻은 방으로 들어갔다. 양가 부모가 혼자 사는 자식이 안쓰러워 밑반찬과 생필품 등을 챙겨 그들이 사는 방으로 출동하는 날이면 두 사람은 ‘동거 흔적’ 지우기 전쟁을 치른다. K군 커플 이야기를 들으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혼을 통해 연인의 사랑을 정의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남녀가 자유롭게 둥지를 튼다. 두 사회에 이런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해답은 바로 ‘독립’이다. 프랑스 청년은 최대한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대부분 고교 졸업 후 집에서 나온다. 물론 극히 일부는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들을 ‘탕기(tanguy)’라고 부르며 ‘루저(loser)’ 취급한다. ‘탕기’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부모에 기대어 한심하게 살아가는 영화 ‘탕기’속 주인공에게서 유래한 말이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독립이란 개인적, 사회적 자신감과 능력을 증명하는 잣대인 셈이다.

10년 동거에 아이까지 낳아 키워



그렇다면 독립과 동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프랑스 젊은이는 독립과 동시에 부모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한국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고 볼 수 있지만 평균 500유로(70만 원가량) 안팎인 대학등록금은 물론, 생활비와 교통비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 결혼할 때까지 부모 집을 떠나지 않는 한국 젊은이와 다른 사고방식이 ‘동거’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다. 독립은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사생활에서의 독립도 의미한다. 독립한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동거해도 부모는 관여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가 결정한 동거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분명하다. 학업과 직업, 결혼 상대, 소비와 지출 등 모든 면에서 부모 자녀 간 결정을 존중한다. 자녀도 부모의 선택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 자식 간 혈연관계는 반드시 유지하되 사적인 부분에서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이 동거를 통해 잘 드러난다.

한국인은 흔히 동거를 ‘미래는 생각지 않고 순간적 욕망과 사랑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프랑스의 젊은 커플 로랑과 클로에는 한국인과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올해 35세 동갑내기로 15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 2년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둘은 함께 살면서 각자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했다. 동거 중에 낳은 첫째 아들 폴은 올해 일곱 살, 둘째 딸 마들렌은 세 살이다.

“동거였지만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로 살았다. 양가 부모도 잘 알고 지내고, 친지들 생일이면 두 사람을 함께 초대했다. 어린 나이에 동거를 시작해 두 아이도 낳았다. 지금 돌이켜봐도 동거에 대한 후회는 없다.”

로랑에 이어 클로에도 동거를 예찬한다. “처음에는 함께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1년, 2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느 부부 못지않은 관계로 발전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사이도 더 돈돈해졌고. 결혼은 동거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난해에 했다. 우리 두 사람만 생각했다면 아마 결혼은 끝까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하지 않고 10년 이상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것을 한국인 정서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철저한 계획을 통해 신중하게 동거를 결정했다면, 주변에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연대계약 땐 동거도 합법

프랑스에는 독특한 체제가 있는데, 바로 시민연대계약(이하 연대계약)이다. 연대계약은 간단히 말해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세금과 사회보장 등에서 법률혼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결혼을 원치 않는 젊은 커플이나 동성 커플에게 특히 유리한데, 결혼과 달리 당사자 두 사람만 해당 관청에 출두해 간단한 절차를 밟으면 된다. 실제로 연대계약을 체결한 커플이 점점 더 증가해, 한국이었다면 ‘사생아’로 낙인찍혔을 법률혼 외 출산이 총출산율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레오폴딘은 2년 전 연대계약을 맺었다. “고등학생 때 당시 공대에 다니던 남자친구를 만났다. 졸업 후 난 의대에 진학했고 그는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지금은 남자친구와 한 아파트에 산다. 남편이 아내에게 공부하라고 외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도 문제없이 잘 사는데 왜 굳이 결혼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직업상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두 사람은 1년에 한 번 휴가를 내서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우리 커플은 아시아를 좋아해 올해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부부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결혼은 안 했고 연대계약을 맺었다고 하면 ‘그게 뭐냐’며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연대계약은 커플이 헤어질 경우 법률상 이혼과 마찬가지로 해당 관청에 신고해야 하며, 커플이 아이를 낳을 경우 두 사람의 호적에 올릴 수도 있다.

스물넷 동갑내기로 정신의학을 전공하는 마르고와 법대생 에밀리는 3년 전 아파트 이웃으로 처음 만나 동성 커플로 발전했다. 프랑스는 동성연애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해 딱히 반감을 갖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자녀나 형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커밍아웃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랑스에서도 아직 동성 커플에 대해서는 법률혼을 허가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대계약은 프랑스의 수많은 동성 커플이 공식 커플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르고와 에밀리는 연애 6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고, 1년 후 연대계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부부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공동명의로 아파트를 사고, 보험에도 가입했다. 향후 입양도 계획하고 있다. 에밀리는 “동성 간 결혼을 허가하는 다른 나라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대계약을 결정했다. 아직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있지만, 가까운 지인은 우리 커플을 여느 커플과 똑같이 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마르고와 에밀리는 각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한 후에는 입양기관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기에 지켜야 할 규칙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국적과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개인의 권리와 선택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항상 ‘좋은가, 나쁜가’라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동거. 부정적 편견보다 긍정적 포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857호 (p50~51)

백연주 파리 통신원 byj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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