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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75세 이상 고령자 급증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큰일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큰일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늙고 병들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

누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대부분 죽음을 앞두고 길든 짧든 병치레를 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은 죽기 전에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병치레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기간 간병에 따른 부담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1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혹시 당신이 늙고 병들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겠는가. 한국 남성 상당수의 간병 부담은 아내가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가족실태조사를 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돌보는 사람의 관계’를 알아봤더니, 누군가로부터 부양을 받아야 하는 65세 이상 고령 남성 중 65.8%가 아내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 자녀와 며느리의 부양을 받는 남성은 20%도 안 됐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남편에겐 아내뿐인가 보다.

반면, 여성의 경우 배우자보다 자녀에게 의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앞선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돌봄이 필요한 65세 이상 고령 여성 중 “남편이 간병을 해준다”는 응답은 29.8%에 불과했고, 자녀나 며느리에게 의지한다는 비율은 57.1%나 됐다. 여성이 배우자인 남편보다 자녀에게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자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서라기보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달리 기댈 곳이 없어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큰일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팔순 노인이 남편 병수발



통계청 조사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가구 26.3%가 여성 독신가구다. 4집 중 1집꼴인데, 이들은 대부분(95.4%)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살아 있다면 당연히 남편에게 의지하겠지만, 이미 세상을 뜬 다음이라면 자식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또 한 가지는 아들(10.5%)이나 딸(11.5%)보다 며느리(35.1%)에게 의지하는 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고령자 부양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뿐 아니라 이들을 돌봐야 할 사람도 함께 늙어가기 때문이다. 노인대국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현상을 ‘노인이 노인을 보살핀다’고 해서 ‘노노부양(老老扶養)’이라 부른다.

2007년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피부양 남성 65.7%와 여성 55.9%가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특히 피부양 남성 중 18.1%는 80세 이상 노인에게 병수발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병수발을 하는 고령자 상당수는 피부양자의 아내일 개연성이 높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병수발을 팔순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이 같은 현상이 이제 더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우리나라 사정을 감안하면 ‘노노부양’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없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특성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10명 중 7명(71.2%)이 75세 이상 후기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같은 조사에서 56.8%였던 후기고령자 비중이 이처럼 큰 폭으로 증가해 관계자들 역시 당혹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큰일났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

2004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한 아파트에서는 1년 동안 치매에 걸린 93세 아내를 돌보던 92세 남편이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매달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은 죽기 전 달력 뒤편에 파란색 펜으로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며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고령사회에서 노인부양의 부담을 전적으로 가족이 떠맡았을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노인부양의 일차적 책임을 가족이 맡는다고 해도 국가와 지역사회가 서둘러 사회부양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일본 역시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노인문제를 가정사로 여겼다. 그런 인식에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72년 출간한 아리요시 사와코의 소설 ‘꿈꾸는 사람’이다. 이 소설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돌보려고 애쓰는 며느리를 통해 장수국가임에도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맞벌이하는 며느리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노인 복지시설에 맡기려다 번번이 퇴짜 맞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노인부양이 더는 각 가정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임을 깨달았다. 이미 수많은 독자가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직접 했거나 목격한 바 있기에 노인부양을 위한 사회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소설 한 편이 세상을 바꿨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일본 사회에서 ‘노인 간호의 사회제도화’를 앞당기는 촉매제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일본은 치매노인을 부양하기 위한 특별 양로원 설치를 의무화했고, 1997년에는 개호(介護)보험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개호는 곁에서 보살핀다는 뜻으로 ‘수발’ ‘간병’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기초노령연금, 2008년 7월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은 그 금액이 너무 적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수혜자 수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 비해 턱없이 적다. 국가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노인부양 부담을 전적으로 국가가 떠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개인과 가정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버거운 만큼 사회적 차원에서 해법을 고민할 때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간동아 857호 (p30~31)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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