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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푸틴 “볼쇼이(大)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 앞두고 대대적 변신, ‘제2 샌프란시스코’ 만들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푸틴 “볼쇼이(大)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가 변신하고 있다. 9월 8∼9일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블라디보스토크는 태평양과 접한 연해주(프리모르스키 크라이)의 항구도시다. 육상으로는 시베리아 철도 종착역이고, 해상으로는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교통요충지이지만, 옛 소련 시절부터 개발을 전혀 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의 모항이 있는데, 옛 소련은 군사기지가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의 출입을 금하기까지 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1991년 9월 이 도시를 완전 개방했지만, 러시아는 그동안 국력 약화에 따른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블라디보스토크 개발을 미뤄왔다.

군항 기능만 해온 블라디보스토크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동방정책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허브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푸틴의 동방정책이란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도약 발판으로 삼아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적극 진출하는 것으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정책의 핵심 거점인 셈이다. 푸틴이 APEC 정상회의를 수도 모스크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넓이 600km2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반도 남쪽 끝에 자리한다. 우리나라 대전광역시(540km2)와 비슷한 크기지만, 거주 인구는 59만 명에 불과하다(대전은 152만 명). APEC 정상회의 장소는 정확히 말하면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에 있는 루스키 섬이다. 군 시설이 있던 넓이 97.2km2에 주민 5000여 명이 사는 루스키 섬에는 하얏트 호텔을 비롯해 컨벤션센터 등 새 건물이 줄줄이 들어섰다. 섬 인근에는 해안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해안가에 별장도 생겼다. 러시아 정부는 APEC 정상회의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와 루스키 섬을 잇는 블라디보스토크 대교도 건설했다. 길이 3100m에 4차선 도로인 이 대교는 교각 간 거리가 1104m로 세계 최장 사장교(斜張橋)이며, 높이도 324m로 세계 최고다. 러시아 정부는 이 대교를 건설하려고 332억 루블(1조3000억 원)을 투입했다.

51년 만에 천지개벽

블라디보스토크도 완전히 탈바꿈했다. 낡고 좁은 국제공항을 리모델링하고, 공항철도를 새로 만들었다. 기존 공항도로를 확대, 포장했는가 하면 도로 44km도 새롭게 건설했다. 이와 함께 가스관 건설, 전기선 교체 및 신설, 발전소 정비, 주택 건설 등 6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4년간 블라디보스토크를 새롭게 개발하는 데 6800억 루블(24조 원)을 투입했다.



러시아 정부가 가진 목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처럼 만드는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7월 2일 블라디보스토크 대교 개통식에 참석해 “블라디보스토크가 앞으로 샌프란시스코보다 더 나은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59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샌프란시스코보다 멋지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지 51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가 ‘천지개벽’을 하는 셈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실상 ‘극동의 수도’라는 말까지 듣는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드미트리 트레닌 소장은 “만약 표트르 대제가 살아 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제정 러시아의 수도)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를 수도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관영 자문기구인 외교국방정책위원회의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위원장은 “정치·군사 중심지 모스크바, 문화·예술 중심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함께 태평양에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가 새로운 경제 중심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와 연해주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려고 ‘볼쇼이(大)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청사진을 검토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2020년까지 2조 루블을 투입해 각종 첨단산업 기지를 구축하고 경제특구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인구도 100만 명으로 늘려 메가폴리스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에너지 허브’로 도약 프로젝트

푸틴 “볼쇼이(大)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블라디보스토크를 ‘에너지 허브’로 더욱 발전시키려는 프로젝트는 이미 진행 중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9월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총길이 1822km의 천연가스관 1차 라인을 개통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 가스관을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 정부는 또 6월 일본 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에 125억 달러 규모의 LNG 플랜트와 수출 터미널 건설에 합의하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라 러시아 공업지역이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 데도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지역은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극동지역 무역액은 235억 달러로 전년 대비 52% 증가하는 등 지난 10년간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광업 부문이 4분의 1을 차지하며, 천연가스 매장량은 전 세계 전체 매장량의 5%다. 푸틴 대통령은 5월에 극동지역을 ‘전략적 주요 지역’으로 명명하고 극동개발부를 신설해 측근인 빅토르 이샤예프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사예프 장관은 18년간 하바롭스크 주지사를 4번 역임한 극동지역 전문가다. 극동개발부는 극동과 동시베리아지역 경제개발을 전담한다.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 투자를 담당하는 국영 투자회사를 설립할 계획도 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이후 극동지역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앞서 “극동지역 개발은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과제”라며 중단 없는 투자와 개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앞으로 극동지역에 대한 각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할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현재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해외 투자를 보면 네덜란드가 1위를 달린다. 네덜란드계 석유회사인 로열 더치 셀이 천연가스전 개발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한 덕분이다.

한·중·일에 투자 확대 요청

이에 반해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중·일은 예상보다 투자가 저조하다. 중국이 6위, 일본이 7위, 한국이 9위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한국·중국·일본에 좀 더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이들 동북아 국가와 역내 경제권을 형성하면 극동지역은 러시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샤예프 장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해 투자 확대를 강력히 요청했다. 러시아 정부는 한국이 극동지역 무역량의 30%를 차지하면서도 투자는 전체 1%에 미치지 못한다며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문(門)이 될 전망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대교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능가하는 랜드마크라는 평가도 있다.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가 ‘제2 샌프란시스코’로 거듭날지 자못 궁금하다.

쿠릴 열도 실효지배 강화

러·일 티격태격… 영토 반환은 턱도 없어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이 7월 28일 흑해 연안 휴양도시 소치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일본 정부는 겐바 외상의 방문에 앞서 푸틴 대통령에게 애완견 한 마리를 선물했다. 아키타현 토종개인 아키타이누로, 일본 천연기념물이다. 6월 멕시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애완견을 선물한 건 동물애호가인 푸틴 대통령을 설득해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반환받으려는 속셈 때문이다.

일본과 러시아는 그동안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의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로 티격태격해왔다. 쿠릴 열도에서 문제가 되는 곳은 최남단 이투루프(에토로후) 섬과 쿠나시르(이상 일본명 구나시리) 섬, 시코탄 섬, 하보마이 섬이다. 이들 4개 섬은 1855년 러·일 통상조약으로 일본 영토가 됐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로 넘어갔다. 현재 러시아가 실효지배하는 이 섬들은 양국 모두 안보적, 경제적으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전략요충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옛 소련이 점령한 4개 섬을 반환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얄타협정과 샌프란시스코조약 등 일련의 국제조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취득한 영토라고 반박해왔다.

일본 정부가 ‘애완견 외교’ 공세까지 펼쳤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일본에 쿠릴 열도 문제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반환할 의사는 전혀 없다. 실제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010년 11월 1일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쿠릴 열도를 방문한 데 이어 얼마 전인 7월 3일에도 쿠릴 열도를 찾았다.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8월 25일∼9월 17일 상륙함을 동원해 쿠릴 열도를 방문하는 추모 순항 행사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 해군은 또 대일 전승기념일(9월 2일)에 맞춰 쿠릴 열도에서 전몰자 추모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추모 항해를 비롯한 러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쿠릴 열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러시아는 국가 프로젝트인 ‘쿠릴 제도 사회·경제 발전계획(2007∼2015년)’에 따라 도로, 공항, 항만 등을 정비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러시아가 쿠릴 열도를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역시 실효지배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일본 정부는 1981년 각료회의에서 2월 7일을 이른바 ‘북방영토의 날’로 제정하는 등 이 섬들을 돌려받겠다는 의지를 표현해왔지만, 러시아가 영토를 넘겨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주간동아 2012.09.03 853호 (p42~44)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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