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2012.08.27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 박사논문에서 주장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8-27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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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강제 수사 수단인 영장은 국민 인권과 직결한다. 신체를 구속하고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영장주의다. 영장주의란 법관이 발부한 적법한 영장에 의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강제 처분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즉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이자 인권 보호 절차인 셈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영장 청구는 검사만 할 수 있다. 그 유력한 근거가 바로 ‘검사의 신청에 의해’라는 헌법 조항이다.

    검경 관계자들 비상한 관심

    이와 관련해 경찰청 수사기획관 황운하 경무관의 박사논문이 화제다. 최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논문심사위원회를 통과한 이 논문의 제목은 ‘영장 청구권에 관한 연구’. 검찰이 가진 독점적 영장 청구권의 문제점을 학문적·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이 논문이 경찰과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 데는 그가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검찰은 출간 전 논문 내용을 비공식 경로로 빼내 분석 및 대응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12쪽에 달하는 이 논문을 단독 입수한 ‘주간동아’는 영장제도가 국민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고려해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논문 요점은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황 기획관에 따르면 헌법상 영장주의의 본질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에 대한 사법 통제’에 있다. 영장 청구권 행사는 사법 통제를 위한 부수적 절차일 뿐이다. 따라서 영장 발부 주체를 법관으로 규정하는 것만으로 헌법상 영장주의 보장의 핵심은 달성되며, 영장 청구 주체를 검사로 규정하는 것은 영장주의의 헌법적 보장과 관련 없다.

    황 기획관은 “헌법상 검사의 영장 청구권은 도입 당시 취지나 배경이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진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며 “이 규정으로 수사 실무에서의 폐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언급했다. 선진적 수사제도를 운용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서는 헌법에 영장 청구 절차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황 기획관은 “영장 청구를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헌법적 사항이 아닌 법률적 사항에 해당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영국은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갖는다. 프랑스 경찰은 수사판사의 위임을 받아 영장 집행권을 행사한다. 반면 독일은 한국처럼 검사에게만 영장 청구권이 있다. 일본 경찰은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만 청구할 수 있고, 구속영장 청구는 검사 권한이다.

    논문에 따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은 헌법에 규정된 권력분립 및 적법절차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권력분립 원리에 비춰 영장 청구권은 검사가 독점하는 것보다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도 갖도록 해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법절차 원리에 비춰볼 때도 경찰이 검사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법원의 사법적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인권침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황 기획관은 일선 경찰관 5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운용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수사경력 3년 미만자와 부실 응답자 28명을 제외한 542명의 응답지를 분석에 활용했다(그림 1~12 참조).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부당하게 청구 안 해” 61.6%

    설문조사 결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부당하게 청구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1.6%이고, ‘이로 인해 수사에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1%라는 점이다. 황 기획관은 “실제로 검사가 그 사건의 영장을 부당하게 기각했는지, 아니면 경찰관이 검사의 의도를 오해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이는 검사 직무수행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불신의 바탕이 된다”고 주장했다.

    논문에는 또 최근 10년간 일어난 사건 중 검사가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해 사실상 경찰수사를 중단시킨 대표적 사례 10가지가 소개돼 있다. 각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들의 생생한 증언도 실렸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 권력분립 원리에 어긋나”
    1) 서울 광진경찰서 외고 불법 찬조금 사건

    서울 광진경찰서는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불법 찬조금을 거뒀다는 고발사건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주요 임원인 학부모 계좌와 학교 측 회계장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에 4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직접 보완수사를 벌인 검찰은 언론이 ‘22억 불법 찬조금 모금’이라고 크게 보도했던 이 사건에 대해 이사장과 교장, 행정실장을 1억5000만 원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2) 지자체장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모 지방자치단체장이 여러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수사한 사건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지자체장의 은행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모 지자체가 서울이 아니어서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지방 S지검에 지휘를 맡겼다. S지검은 경찰 관할권을 문제삼아 사건을 경찰청에서 G지방경찰청으로 이송하라고 지휘했다. S지검을 불신해 경찰청에 첩보를 제공했던 제보자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염려하는 상황이다.

    3) 서울 동대문경찰서 변호사법 위반 사건

    부장검사 출신인 모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가 소프트웨어 업체와 계약을 맺고 브로커를 통해 컴퓨터 판매점을 함정 단속한 후 과도한 합의금(총 11억 원)을 받아낸 사건이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변호사 사무실 및 은행계좌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2차례 신청했으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 처분에 불복한 경찰은 법원에 준항고를 청구했지만 그마저 기각됐다. 수사는 중단됐고,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4) 서울 용산경찰서 법조비리 사건

    판검사에게 로비해 윤락업소의 뒤를 봐주겠다며 업주들로부터 거액을 챙긴 법조 브로커 사건.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서울 용산경찰서는 평소 검사들과 친분이 깊은 이 브로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당했다. 검찰은 은행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도 세 차례나 기각했다. 결국 언론보도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자 대검찰청 감찰부가 나서서 브로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현직 검사 3명을 징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5) 경남 양산경찰서 층간 소음 협박 사건

    경남 양산경찰서는 층간 소음 문제로 위층 아파트 출입문 앞에 소주병을 깨놓고 오물을 퍼붓는 등 2개월간 20회나 협박을 한 피의자에 대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4차례 신청했다. 검사는 이를 묵살했다. 결국 담당 검사가 교체되고 검찰시민위원회에 상정한 후 경찰 의견대로 피의자가 구속됐다. 그러나 그 사이 3개월이 지났고 애초 이사할 생각이 없던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6) 대전 중부경찰서 변호사법 위반 사건

    모 법무법인이 인터넷상 저작권 침해 관련 고소업무를 취급하면서 변호사가 아닌 자들과 동업해 인터넷상에 영화나 소설 파일을 업로드한 사람들에게 합의금을 받아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호사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는 사건. 대전 중부경찰서는 장부와 통장이 있는 법무법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전지검은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울 마포경찰서로 이송할 것을 지휘했다. 마포서는 서울 서부지검에 영장을 신청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사건은 대전 중부서로 반송됐다. 경찰은 결국 압수수색을 못한 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7) 서울 용산경찰서 강간 사건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관내 주민의 강간 피해 사실을 접수하고 피의자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서울 서부지검은 피의자 주거지가 관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피해자는 수치심에 이 사건이 더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용산서에서 계속 수사해줄 것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검찰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사건은 검사 지휘에 따라 강동경찰서로 이송됐다.

    8) 충북 단양경찰서 납치 후 살인미수 사건

    헤어질 것을 요구한 여자친구를 납치해 감금한 사건이다. 충북 단양경찰서는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고 동종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담당 경찰관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는 않았으나 피의자가 “너 죽고 나 죽자”는 등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고 흥분해 있어 위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사는 서류만 보고 기각한 것이다. 석방된 피의자는 그날 오후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찾아가 수차례 찌르고 자신도 자해했다.

    9) 서울 송파경찰서 재개발비리 사건

    재개발조합장과 조직폭력배가 설계업체 대표로부터 업체 선정 등의 명목으로 1억90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의혹에 대해 서울 송파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혐의자들에 대해 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증거 부족 및 관할 위반을 이유로 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성북경찰서로 이송할 것을 지휘했다. 이에 앞서 송파서가 관련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자 서울 동부지검은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업체 관할지인 서울중앙지검에 영장을 신청하자 이번에는 송파서가 동부지검 관할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다시 동부지검에 영장을 신청해 우여곡절 끝에 발부받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사건이 성북서로 넘어가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10) 광주 서부경찰서 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115억 원을 부당 대출해준 모 저축은행과 관련해 광주 서부경찰서는 혐의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요구하며 반려했다. 이어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려 하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것을 지휘했다. 결국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이후 전국적으로 저축은행 부실대출 문제가 제기되자 금융위원회가 해당 은행을 포함해 4개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 조치를 했다. 그러자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대표이사, 대주주, 금융감독원 직원 등 38명을 배임, 횡령 등으로 기소했다(구속 21명).

    논문은 검찰의 독점적 영장 청구권이 가진 문제점으로 ‘영장 불청구를 통한 경찰수사 방해 및 무력화’를 꼽았다. 그 밖에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한 불신으로 사법 불신 확산 △‘직접 수사기관’과 ‘영장 청구권자’의 이중적 지위로 인한 자기 모순 △부당한 영장 기각에 대한 견제 장치 부재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 지배권 강화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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