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2012.08.27

김연경을 어찌하오리까

올림픽 여자배구 MVP·득점왕 ‘무적(無籍) 선수’ 위기

  • 원성열 스포츠동아 기자 sereno@donga.com

    입력2012-08-27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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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는 36년 만에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자타 공인 일등공신은 여자배구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차지한 김연경(24·193cm·레프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의 활약은 놀라웠다. 그는 이에 앞서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아시아선수로는 최초로 MVP와 득점왕에 올랐다. 비교 대상이 없는 세계 최고 공격수다. 올림픽 이후 더욱 승승장구하기를 모두 바랐지만, 현재 그는 ‘무적(無籍) 선수’가 될 위기에 놓였다. 원 소속팀인 흥국생명과의 이적 갈등 때문이다. 한국 배구계 태풍의 눈이 된 이적 논란은 왜, 어디서부터 불거진 것일까.

    원칙대로 하자! 흥국생명 강경

    흥국생명은 2012~2013시즌 프로배구 V리그 선수등록 마감일인 7월 2일 김연경을 임의탈퇴선수로 공시했다. 이는 구단 동의가 없으면 국내 다른 구단은 물론, 해외 구단으로의 이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최악의 경우 그는 올림픽을 끝으로 당분간 배구 코트에 설 수 없다.

    사태가 왜 이렇게 악화됐을까. 사건 발단은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흥국생명의 해외 임대선수로 활동하며 현지 생활과 통역에 불편을 느낀 김연경이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에이전트 고용 자체엔 문제가 없었다. 이후 행보가 문제였다. 김연경은 에이전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뒤 흥국생명과 상의 없이 해외 이적을 진행했다.

    하지만 국내 규정상 구단 동의 없는 에이전트 계약은 규정 위반이다.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 70조 2항은 ‘구단과 선수가 선수계약을 체결할 때는 해당 구단과 해당 선수가 직접 계약을 체결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 73조 4항은 ‘연맹 또는 구단과 협의하지 않은 채 제3자와의 배구 또는 타 스포츠와 관련된 계약의 체결 및 경기의 참가는 금지사항’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김연경은 아직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 FA 자격을 얻으려면 원 소속팀 흥국생명에서 두 시즌을 더 뛰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에이전트를 통해 해외 이적을 추진했고, 흥국생명은 즉각 “규정을 어기고 에이전트와 계약해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그를 임의탈퇴시켰다.

    물론 이를 통해 김연경을 국내에 묶어두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흥국생명이 원하는 조건은 두 가지다. 일단 규정을 어긴 에이전트 계약을 파기하고, 구단이 직접 타진한 해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이다. 권광영 흥국생명 단장은 “김연경이 계약한 페네르바체는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에도 나설 수 없는 팀이다. 해외무대에서의 활약과 국위선양이 목표라면 왜 굳이 그 팀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페네르바체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들이 있다. 물론 구단은 이적료를 받을 생각도 없다. 다만 지금까지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선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흥국생명 임대선수로 일본에서 2년, 터키에서 1년을 뛴 그는 페네르바체와의 계약해지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페네르바체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통역과 현지 생활에 많은 불편을 느껴 흥국생명 측에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올해를 끝으로 페네르바체와 계약이 해지되는데 이조차도 구단이 먼저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내가 임대될 해외 구단과 연봉 문제를 구단이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김연경은 이미 흥국생명에서 네 시즌을 뛰었고 임대선수로 세 시즌을 뛰었는데, 언제까지 흥국생명 소속 선수로 끌려다니며 불안정한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직접 에이전트를 고용해 안정적인 해외 이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프로배구 FA 규정은 선수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프로야구, 프로축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선수 인프라나 제반 환경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연경은 스스로 잔 다르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설령 1~2년을 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해도 선수들은 나를 지지할 것이다. 내가 희생하면 선수들이 앞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 확대한 건 에이전트

    김연경이 원하는 해외 진출을 이루고 세계적인 선수로 커나가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김연경의 에이전트 인스포코리아가 보인 행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인스포코리아는 여자배구대표팀이 영국 런던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날인 7월 16일 일방적으로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속내가 뻔히 보였다. 김연경이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면 여론을 등에 업고 계약을 밀어붙이겠다는 계산이었다. 인스포코리아는 “김연경은 6월 30일을 끝으로 흥국생명과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상태다. 따라서 독자적인 해외 진출에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KOVO와 대한배구협회(KVA) 규정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이다.

    인스포코리아는 KOVO의 FA 규정 3조 2항(원 소속팀에서 여섯 시즌을 뛰어야 FA 자격 취득, 현재 김연경은 두 시즌을 더 뛰어야 함)이나 구단 동의 없는 에이전트 계약을 금지하는 규정 등을 “국내에 국한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국제배구연맹(FIVB)을 통해 직접 해결하면 해외 진출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로컬 룰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KVA는 김연경이 해외로 이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국제이적동의서를 절대 발급해줄 수 없다는 소견을 분명히 했다.

    KVA 관계자는 “소속 구단과 KVA의 동의가 있어야 해외 이적에 필요한 국제이적동의서가 발급된다. FIVB에서는 각국 로컬 룰을 우선시한다. 도대체 소속 구단과 KVA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서로의 처지만 고수한다면 상황은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인스포코리아 측은 흥국생명이나 KVA가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으면 FIVB와 이적할 팀인 페네르바체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지만 그 과정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 비용이 든다. 최소 1년은 김연경이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흥국생명이 김연경을 풀어줘야 한다는 게 배구 팬의 여론이지만 이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론 어렵다. 김연경의 에이전트 계약을 인정하고 FA 규정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이적을 허용하면 선례가 된다는 게 문제다. FA나 에이전트 규정 개정에 대한 각 구단과 FIVB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 너도나도 해외 진출을 요구한다면 가뜩이나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프로배구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선수니까 허용되고 다른 선수는 안 된다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려면 접점을 찾는 게 급선무다.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요구하는 ‘원하는 해외 구단으로의 다년 계약’을 인정해주고, 김연경은 FA 규정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팬들이 원하는 건 대립이 아니라 김연경이 코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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