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2012.08.27

일본 ‘한류오타’ 테러 적색경보

케이팝 스타에 성적·감정적 폭력 행사…일부는 한국 ‘사생팬’에게 배워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2-08-27 09: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일본 ‘한류오타’ 테러 적색경보

    2PM

    6월 말 일본 케이팝(K-pop) 팬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한국 남성그룹 비스트 멤버 용준형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한 일본 팬의 트위터 멘션이 가져온 파문이다.

    “어떻게 할까. 내 애는 당신(용준형)의 아이에요.”

    “용상(용준형), 언제 데리러 올 건가요? 이 아이와 나.”

    자신을 ‘유코링’이라 칭하는, 아이치 현에 거주하는 23세 여성의 멘션이 공개되자 일본 팬은 곧바로 용준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용준형은 걸그룹 카라 멤버 구하라와 연인 관계. 트위트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간에 알려진 연인을 두고 양다리를 걸친 셈이니 팬의 비난은 거셌다.

    일본 팬이 용준형에게 맹렬히 비난을 퍼부으면서 트위터상에서 한일 팬 사이에 설전이 오갔으나 얼마 후 유코링의 ‘상상’에 의한 허위사실임이 밝혀지며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류붐이 인 지 오래됐어도 일본 팬이 무질서하고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일부 일본 팬은 한국 사생팬(私生fan·연예인의 사생활을 쫓는 팬) 못지않은 폭력적 성향을 띤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일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메이와쿠(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지금까지 한류스타를 쫓아다니는 일본 팬이 한국 팬에 비해 ‘비교적 온순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고 알려진 것도 ‘메이와쿠’를 피하고자 하는 일본 팬의 팬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래서 스타가 부담을 느낄 만큼 과도하게 따라다니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스타에게 해가 될 만한 행위는 팬 스스로 자제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팬문화가 형성됐다.

    공개석상에서 성희롱 파문

    그런데 이러한 팬문화에 변화가 생겼다. 이는 배용준, 류시원 등 초기 한류스타들이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끈 데 반해, 최근 슈퍼주니어, 샤이니, 비스트 등을 좋아하는 일본 팬의 연령대가 낮아진 데 따른 것이다.

    사실 일본 팬덤문화가 모두 배려심이 넘치는 모범적인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스맙(SMAP)’ ‘아라시(Arashi)’ 등 인기 남성그룹 소속사인 ‘자니스’의 열성팬 문제는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도 문제가 돼왔다. 이들은 스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옷카케’(追っかけ·뒤를 쫓는다는 뜻), 열성 옷카케인 ‘오리키’(オリキ·옷카케에 힘을 더한 합성어로 옷카케를 일주일에 나흘 이상 하는 광팬), 매너가 나쁜 옷카케를 뜻하는 ‘야라카시’(ヤラカシ·‘저지른다’라는 뜻의 ‘야라카스’에서 온 말) 등으로 불리며 건전한 아이돌문화를 저해하고 스타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됐다.

    그런데 이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케이팝 스타 팬층과도 일치한다. ‘한류오타’(韓流オタ·한류 오타쿠)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생팬 못지않은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오타쿠는 한 분야에 병적으로 열중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한국 사생팬과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예로 일본에서 ‘야수계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2PM에 가해진 성희롱 사건을 들 수 있다.

    6월 열린 한 이벤트에 참가한 여성 팬이 ‘BUKKAKE’라고 쓴 패널을 들고 와 2PM 멤버를 향해 “읽어봐”라고 요청했다. BUKKAKE는 일본 포르노에 등장하는 성적 표현을 의미하는 일본어 알파벳 표기로, 일본 속어에 능하지 않은 2PM 멤버를 대상으로 공개 성희롱을 한 셈이다. 이 팬은 이벤트 종료 후 자기 트위터에 “멤버에게 ‘BUKKAKE’ 패널을 들고 반응을 즐겼다” “‘BUKKAKE’는 해외에서도 통한다”라고 자랑하는 글을 남겨 용준형 사태 못지않은 논쟁거리를 낳았다. 또 당사자는 ‘BUKKAKE女’라는 오명을 썼다.

    용준형이나 2PM 사례에서 보듯 한류오타들은 한국 사생팬에 비해 좀 더 성적이고 감정적인 폭력도 불사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가와이계 아이돌’ 샤이니도 한류오타 희생양이 됐다. 샤이니의 일본 데뷔 이전부터 사생팬을 자처한 한 일본 여성은 일본 누리꾼 사이에 ‘생활쓰레기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샤이니 숙소에 침입해 멤버 소지품과 자전거를 만지는 등 가벼운 스토커 행위를 벌이다 결국 샤이니 숙소를 침입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과정을 일본 인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믹시에 실황 중계한 것이다.

    “요구르트와 요구르트 빨대를 죽도록 빨고 싶다wwwwwww (웃음소리를 표현한 것).”

    그 여성이 쓰레기봉투를 뒤진 후 올린 한마디다.

    그렇다면 ‘한류오타’가 느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팬들에 대한 관리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현재 케이팝 아이돌의 일본 활동은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레코드사에서 관리한다. 레코드사의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음악적인 부분에 한정되기 때문에 앨범과 공연 티켓 판매 같은 수익 부문은 관리가 확실히 이뤄지지만, 스타의 사생활을 지켜주고 주변에 몰려드는 팬을 통제할 여력은 없다.

    반면 일본 소속사는 팬클럽에 대해 모종의 ‘행동수칙’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팬클럽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페널티를 준다. 필요한 경우에 전문 인력을 고용해 스타의 사생활을 철통 수비함으로써 팬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보호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케이팝 아이돌은 대중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일본 팬의 집중 공격이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한류오타’ 테러 적색경보

    ‘한류오타’에게 피해를 당한 비스트 멤버 용준형.

    가택 침입에 쓰레기봉투도 뒤져

    두 번째 이유는 한국에서 사생팬 문화를 접한 일본 팬이 일본에 돌아가서 한류오타로 변모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에 원정 와 사생팬에 섞여 ‘사생질’ 맛을 본 한류오타들이 사생 못지않은 강도로 스타 뒤를 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은 ‘사생투어’를 결성해 자신이 쫓는 스타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일본에 돌아와서도 일본 숙소를 알아내 주위를 맴돈다. 불법 가택 침입, 쓰레기봉투 뒤지기 등 상상도 못할 사생질을 자행한다.

    동방신기의 한류오타를 자처하는 이노우에 마키(가명·37·도쿄도 거주) 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선 자칫하면 스토커로 몰려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팬클럽에 찍혀 불이익을 당하지만 한국에선 아무 제재 없이 자유롭게 스타를 쫓을 수 있어 좋다”며 “처음엔 좋아서 따라다녔지만 요즘엔 따라다니는 것이 좋아 사생이 돼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든다”고 고백했다. “사택(사생 택시)을 타고 도로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하루 종일 스타를 따라다니면서 열광하는 사생질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에 최근 1년 동안은 휴가를 내서 일부러 사생질을 하러 한국을 찾는다”는 이노우에 씨의 사례는 한류오타 대부분에 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스타의 인격과 생활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도 국경을 넘어서 행해지고 있다. 막는 사람이 없고 법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무분별하게 한류스타를 괴롭히는 한류오타는 진정으로 자신의 스타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