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9

2012.08.06

무인 구글카에 운전면허증 발급

美, 네바다 주 법률까지 바꿔…영화 속 모습 성큼 다가오나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2-08-06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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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 구글카에 운전면허증 발급

    도요타 프리우스를 개조해 만든 구글 무인자동차.

    얼마 전 도로교통공단이 조사한 휴가철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휴가철에는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사고 규모도 더 컸다. 자동차에 함께 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많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아도 자동차가 알아서 움직이고,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은 가족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게임도 하는 꿈같은 일은 언제쯤 현실이 될까.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런 일이 현실화할 날이 머지않았다. 최근 구글 무인자동차(일명 구글카)가 미국 네바다 주로부터 면허를 발급받았다. 네바다 주에서는 현재 빨간색 번호판을 단 무인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린다. 네바다 주에서만큼은 움직이는 자동차 운전석에 사람이 없더라도, 혹은 시각장애인이 운전석에 앉아 있더라도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가 운전면허를 발급받은 것은 세계에서 구글카가 처음이다. 구글카 운전면허증은 일반 운전면허증처럼 사진이 박힌 신분증이 아닌 번호판 형태다. 번호판엔 미래를 의미하는 무한대(∞)와 첫 번째 무인자동차임을 뜻하는 번호 001을 사용했다. 자동으로 움직인다(autonomous)는 의미에서 번호판 가운데에 ‘AU’라고 표시했다. 색깔은 눈에 잘 띄도록 빨간색이다.

    네바다 주는 구글이 구글카를 도로에서 시험주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자 조건을 걸어 면허를 내줬다. 문제가 생기면 수동운전이 가능하도록 두 사람이 탑승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네바다 주는 구글카에 운전면허를 발급하려고 법률도 바꿨다고 한다. 사람 외에 자동차에도 운전면허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한 개정법이 3월에 시행됐다.

    한국형 무인자동차 상용화 시간문제



    무인자동차는 정말 안전할까. 네바다 주는 구글카에 운전면허를 발급하면서 두 사람이 탑승할 것을 의무화했는데, 자동차가 예정된 길로 가는지 모니터하고 도로 위험물도 살피기 위해서다. 그뿐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수동으로 위기를 모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카가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카슨시티의 시내도로와 고속도로 시험주행에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직 안전을 장담하기엔 이르다.

    구글이 구글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그렇다고 구글이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도요타 프리우스가 구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센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무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차체 전면과 좌우에 동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달고, 차체 윗면에는 레이저를 설치해 주변 차량과 보행자를 감지하도록 했다. 운전 요령과 사고를 피하는 방법 등은 구글이 수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구글카는 수백만 마일의 테스트를 거쳐 이르면 5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 무인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인 앤서니 레반도스키는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키려고 자동차 제조사들과 논의 중”이라면서 “이 시스템이 조만간 상용화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무인자동차를 개발한 것은 구글이 처음은 아니다. 무인자동차 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에 성공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다. 네바다 주가 사람이 아닌 자동차에도 운전면허를 발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 구글뿐 아니라 다른 업체도 시험주행을 진행했다.

    유럽 자동차 부품 회사 컨티넨탈은 4월에 자동으로 운전하는 기술인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시험주행에 성공했다. 컨티넨탈은 네바다 주에서 시험용 자동차에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장착한 뒤 2주 동안 일반도로 9600km 이상을 시험주행했다. 이 시스템은 센서를 통해 위험물 크기와 차 간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입체카메라, 전자제어식 브레이크 시스템, 전기식 파워 스티어링 등으로 구성됐다. 운전자 건강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등의 긴급 상황이나 장거리 운전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경쟁자는 도요타 아닌 구글?

    무인 구글카에 운전면허증 발급

    시각장애인이 구글카를 이용해 주행하는 모습.

    한국의 무인자동차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학계에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고려대에서 개발한 무인자동차가 1993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대에서 무인자동차를 개발한 한민홍 전 교수가 무인자동차로 서울과 대전을 왕복한 것만도 수백 번이 넘는다. 20년 가까이 테스트를 한 만큼 지금 당장 상용화해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고 한 전 교수는 설명한다. 이 무인자동차의 운전 영상은 유튜브에서 구글카 영상과 함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전 교수는 현재 벤처기업에서 무인자동차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무인자동차는 앞으로 산업계 융합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색서비스를 발판으로 성장한 구글이 휴대전화와 TV를 넘어 자동차 산업에까지 진출한 것은 파란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다.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당시,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개발하고 스마트폰 제조사와 제휴했다. 구글은 자동차 시장에 지출할 때도 마찬가지로 구글카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자동차 회사와 제휴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등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이 가장 진입하기 힘들어한 분야가 자동차다. 일반 IT 기기와 달리 신뢰성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편리함보다 안전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 분야도 변화 움직임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래 자동차는 고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엔진을 장착한 첨단 IT 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자동차에서 IT, 즉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2010년 25%에서 2015년 40%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에서는 향후 시장이 재편되리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현대자동차의 경쟁 상대는 도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가 아닌 구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임원들은 지난해 11월 구글을 전격 방문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현대오트론을 설립한 것도 무인자동차 시대에 대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와 IT의 융합은 자동차 업계의 지상 과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구글카 등장으로 자동차 업계와 IT 업계의 변화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업계가 이동수단이 아닌 새로운 서비스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동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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