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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빠지는 농구공

남녀 대표팀 런던행 좌절에 ‘그들만의 국내 리그’로 전락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바람 빠지는 농구공

바람 빠지는 농구공

4월 1일 열린 2011-2012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안양 KGC인삼공사 대 원주 동부의 4차전 경기.

한국 농구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남녀 농구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탈락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뿐 아니다. 여자프로농구단 신세계는 모기업이 팀 운영을 포기해 인수 기업을 물색 중이다. 남자프로농구단 전자랜드도 모기업의 경영난 탓에 매물로 나왔지만 아직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다. 농구 인기가 점점 하락하는 상황에서 국제 대회에서 충격적인 성적을 내고, 일부 팀은 주인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등 한국 농구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여자농구대표팀은 6월 터키에서 열린 올림픽 플레이오프에 출전했으나 8강전에서 유럽 강호 프랑스를 만나 완패했다. 5위 안에 들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지만 패자 준결승에서 일본에 져 올림픽 본선행이 물거품 됐다. 결과뿐 아니라 경기 내용도 문제였다. 숙적 일본에 1쿼터를 4대 29로 뒤지는 등 초반부터 큰 점수 차로 끌려가다 완패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보다 한일전 패배라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남자대표팀은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 러시아, 도미니카공화국 등 만만치 않은 상대와 맞붙었다. 1차전에서 러시아에 큰 점수 차로 진 한국은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분전했지만 결국 85대 95로 패하면서 올림픽행이 좌절됐다. 높이에서 밀린 데다 경험까지 부족해 초반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데 실패하며 역전패했다.

한국 남녀 농구는 분명 세계 정상급 국가들과 실력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런던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남녀 농구 대표팀 모두 세대교체를 시도했는데도 경기력이 기대 이하에 머물러 실망감이 컸다. 준비 과정부터 매끄럽지 못했던 터라 실력 발휘가 여의치 않았던 사정도 있다.

새로운 스타 발굴에 실패



대표팀 감독 등 코칭스태프 선임 과정에서 대한농구협회와 잡음이 있었고, 선수 선발을 놓고는 프로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최상의 전력을 꾸리는 데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과는 예고된 참사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한농구협회를 비롯해 KBL프로농구연맹(이하 KBL)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 농구는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 국내 리그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 대표팀 경기력은 결국 리그 경쟁력에서 나온다. 국내 리그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대표팀 경기력이 향상되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내 리그 사정을 보자. 남자프로농구는 10구단, 여자프로농구는 6구단으로 운영돼왔다.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 당시 최고의 겨울스포츠였던 남자프로농구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른바 ‘농구대잔치세대’ 선수들이 한 명씩 은퇴하면서 새로운 스타 발굴에 실패하고 팬들도 떠났다.

여자프로농구는 금융기업들이 주로 구단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듯했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혔다. 금융기업 위주로 팀을 꾸리다 보니 금융권 외의 기업이 프로농구단을 운영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 이미지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신세계가 여자프로농구단 운영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다.

게다가 남녀 모두 경기력이 예전만 못하다. 경기력이 좋아지려면 전술과 전략도 중요하지만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를 꾸준히 공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농구 인기가 하락하면서 선수생활을 하려는 유소년들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여자프로농구팀 감독들은 “현재 고등학교 포지션별로 기량이 최고라는 선수들조차 2~3년 더 가르쳐야 프로 경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다”며 “그 정도로 농구 저변이 열악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팀 성적에 신경 써야 하는 감독들로서는 나이는 많지만 준비된 선수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새로 프로에 입문해 기존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스타로 발돋움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주성 모르는 사람 수두룩

선수층이 두꺼워야 거기서 선발하는 대표팀의 전력도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감독이 돼도 선수 풀이 한정돼 있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선수층이 얇다 보니 프로팀 핵심 선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문제다. 팀 대부분이 선수 7~9명으로 한 시즌을 치른다. 그중 3~4명의 핵심 자원은 출전 시간이 길다. 그만큼 크고 작은 부상에 노출될 위험성도 크다. 그런 데다 몸을 추슬러야 할 시기에 대표팀에 합류하니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최고의 프로 선수가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팀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로 꾸린 이른바 ‘드림팀’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농구대표팀은 금메달을 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그러지 못했다. 최상의 전력이 아닌 최선의 전력으로 구성한 대표팀에 우수한 성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국 농구가 지금의 위기에서 탈출해 1990년대 전성기를 회복하는 방법은 과감한 개혁밖에 없다.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국내 리그가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몇 비인기종목이 경험한 바다.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팬들의 관심은 대회가 열릴 때뿐이다. 그러니 한국 농구가 재도약하려면 국내 리그의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만 집중했던 KBL과 WKBL은 리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프로농구의 근간이 되는 유소년 농구 발전과 저변 확대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대한농구협회도 대표팀의 국제 대회 성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농구 저변을 확대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농구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국보급 센터’로 불린 서장훈은 5월에 부산 KT에 입단하며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했던 말에 뼈가 있다.

“농구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 프로농구팀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김주성(동부)이 한국 농구의 최고 선수라곤 하지만 그가 농구선수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게 한국 농구의 현실이다. 지금 한국 농구는 ‘그들만의 리그’에 가깝다. 프로농구뿐 아니라 농구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반성하고, 인식을 전환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주간동아 2012.07.16 846호 (p60~61)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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