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돈 앞에 일그러진 모습 되풀이

사회 지도층의 부패

  • 입력2012-07-16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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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앞에 일그러진 모습 되풀이

    ‘대통령 가족’, 보테로, 1967년, 캔버스에 유채, 203×196,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5년을 주기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대통령 측근이나 가족이 감옥으로 향한다. 이들이 신문 1면을 장식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권력 이동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또 눈으로 확인한다.

    권력은 종종 권력자가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로열패밀리의 베갯밑송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보다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없다.

    탐욕스러운 로열패밀리를 그린 작품이 페르난도 보테로(1932~)의 ‘대통령 가족’이다.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할머니는 손녀를 바라보고, 그들 뒤에는 중절모를 쓴 남자와 군인 그리고 성직자가 서 있다. 구불구불한 바닥에서는 살찐 고양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할머니가 앉은 의자 옆으로 뱀이 혀를 내밀며 기어 나오고 있다.

    여인이 어깨에 두른 여우목도리는 부유함을 상징하면서 이들이 상류층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뒤에 선 남자들은 여인의 아들로, 주변에 여자가 없는 것은 아직 미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절모를 쓴 아들은 정치인, 군복을 입은 아들은 군인, 지팡이를 들고 성직자 복장을 한 아들은 성직자가 될 운명임을 나타낸다. 할머니가 어린 손녀의 스커트 자락을 움켜쥔 것은 순결을 감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오른 인물은 탐욕을 나타내며, 뱀은 전통적으로 근심과 흉조를 나타내는 동물로 가족에게 닥칠 근심을 암시한다.



    보테로의 이 작품은 고야의 작품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패러디했다. 전체적인 형식은 고야의 작품을 패러디했지만, 화면 왼쪽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있는 인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패러디한 것으로, 대통령은 그리지 않았으며 애완견은 고양이로 대체했다.

    보테로는 스페인 유학시절 미술 교육 과정을 거부한 채 미술관에 있는 벨라스케스, 고야, 루벤스 등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고 탐구했다. 콜롬비아로 돌아온 뒤에는 미술 양식의 원류를 보여주려고 미술 전통을 패러디하거나 이미지를 차용하는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 역시 거장의 작품을 패러디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 민속미술에 경의를 표하려고 밝은 색채를 사용했다.

    로열패밀리와 달리 사회 지도층은 권력이 이동했는데도 여전히 자리를 보존한다. 절에서 새우젓을 얻어먹으려면 눈치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모든 촉수를 동원해 이미 새로운 권력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돈 앞에 일그러진 모습 되풀이

    (왼쪽)‘경찰의 찬송’, 솔로마트킨, 1882년, 캔버스에 유채, 36×62, 국립 러시아 미술관 소장. (오른쪽)‘사회 지도층 인사’, 그로스, 1926년, 캔버스에 유채, 200×108,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사회 지도층을 비판한 작품이 게오르게 그로스(1893~1959)의 ‘사회 지도층 인사’다. 맨 앞에 나이 든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맥주잔과 펜싱 검을 들고 있다. 칼에 벤 상처가 있는 그의 얼굴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귀는 없다. 또한 불투명한 맹인용 외알안경을 끼고 있다.

    맹인용 외알안경은 그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기병대 제복은 독일 민족주의와 보복주의를 나타낸다. 열린 그의 머리에는 법조항과 동방의 기사가 있는데, 법조항은 그가 법학도로서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나치스) 당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화면 왼쪽 머리에 요강을 쓴 남자는 신문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슴에 꼭 붙들고 있다. 남자는 당시 정치가이자 최고 언론 권력자였던 알프레드 후겐베르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사회 규범에 맞는 히틀러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남자는 평화의 상징인 종려나무 잎을 들었지만 종려나무 잎에는 피가 묻어 있어 그의 기만을 나타낸다.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똥이 가득 찬 남자는 깃발과 사회주의 전단을 들고 있다. 남자는 국회의원을 나타내며 작은 깃발은 국가 신조를 의미한다.

    그들 뒤에서 살찐 성직자가 설교하고 있다. 성직자의 코가 빨간 것은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설교는 현실을 외면하는 교회의 위선적인 태도를 암시한다.

    그로스는 이 작품으로 사법부, 언론, 의회, 교회 등 전후 독일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으로 민중을 도덕적으로 교육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작품을 통해 히틀러와 나치스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으며 전후 독일의 부패한 부르주아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결과 그림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 예술 분야에서 나치에게 박해받은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권력도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평범한 사람에게 권력자는 대통령도, 사회 지도층도 아니다. 하급직 공무원이다.

    하급직 공무원을 그린 작품이 레오니드 솔로마트킨(1837~1883)의 ‘경찰의 찬송’이다. 경찰관 세 명이 거실에서 노래를 부르자 상인이 지갑을 열고 지폐를 꺼내고 있으며, 상인의 아내는 귀를 막고 있다. 경찰관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인에게 돈을 달라는 것을 암시한다.

    벽에 걸린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열린 문 뒤로 숨은 여자가 웃고 있다. 시계와 여자의 웃음은 경찰관이 방문한 목적을 암시한다.

    앞에 선 경찰관이 훈장을 많이 단 것은 경찰관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시선은 상인의 지갑에 고정하고 있다. 경찰관의 시선은 그들의 방문 목적을 더 확실하게 강조한다.

    솔로마트킨은 19세기 중후반 러시아혁명을 앞두고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공직자들의 탐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는 혁명을 앞두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혼탁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관리나 성직자, 귀족까지 하나같이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에 바빴다.

    돈은 있을수록 탐욕스럽다. 돈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권력은 대중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자리 이동일 뿐이지만, 사회 지도층이 가난한 서민을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홍보용 돈이 필요한 법이다. 돈 앞에 장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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