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뭐? 재미 삼아… ‘먹튀 청년창업’

실제 창업은 소수 ‘스펙 쌓기’로 변질

  • 김민지 인턴기자 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kimminzi4@naver.com

    입력2012-07-16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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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재미 삼아… ‘먹튀 청년창업’
    “팀원을 찾습니다. 창업할 생각이 없어도 돼요. 상금도 받고 경력도 쌓는 거죠. 이미 많은 수상경력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 필요한 준비가 거의 다 돼 있어요.”

    창업경진대회 팀원을 모집한다는 글이 눈에 띈다. 글을 올린 장모(남·26) 씨는 “한 개 아이템으로 최근 1년간 정부 지원을 7번 받았다”면서 “알다시피 대기업 취업에 창업 경험과 수상 실적이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컨설팅을 연습 삼아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창업 지원을 받고도 사업화하지 않는 경우는 흔한 일”이라며 “3분의 1 이상이 스펙을 위해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상을 목적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이’들을 ‘Prize Hunter(상 겨냥꾼)’라고 일컬으며, “Prize Hunter가 수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팀들을 만나보니, 실제로 창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정부가 주최한 3개 창업경진대회에서 한 아이템으로 대상 등을 받은 김모(남·25) 씨는 현재 S전자 입사를 앞둔 상태다. 그는 “창업경진대회에서 상금만 받고 사라지는 ‘먹튀’를 많이 봤다”면서도 “물론 수상을 토대로 실제 창업하느냐 마느냐는 당사자의 자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해 상금 3000만 원을 받은 팀은 상금을 균등 분배한 후 해체했다고 한다. 그러나 팀 대표 이모(남·23) 씨는 “대상 수상 후 팀원 대부분이 이탈했다. 애초에 창업하겠다고 만난 사람들이 아니어서 수상 후 팀을 이끄는 데 문제가 많았다”며 “대학생 팀 대부분이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돈 먹는 하마’ 창업경진대회



    이처럼 청년 및 대학생이 창업경진대회에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청년창업 지원에 앞다퉈 돈을 풀기 때문이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올해를 ‘청년창업 활성화 원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창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 창출효과도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예산과 오지훈 사무관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창업 지원 예산은 4980억 원이다. 이는 올 하반기에 1600억 원을 증액한 예산이다. 중소기업청도 올해 청년창업 자금을 지난해보다 2.6배 많은 1조6000억 원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를 기회 삼아 창업에 도전하는 대학생도 있지만, 다른 목적을 갖고 정부 지원을 이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대학생 창업·창직 프로젝트’인 ‘창조캠퍼스’는 올해 전국 23개 대학에서 총 400여 팀을 선발해 팀당 600만 원 내외의 지원금과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창조캠퍼스에 참가 중이라는 한 대학생은 “창업할 생각은 없다”며 “편하게 학교 다니면서 돈도 받고 스펙도 쌓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어 재미 삼아 참가하는 친구가 더 많다”며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프린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교통비나 식비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 지원금으로 전공서적도 산다”고 말했다.

    심지어 창조캠퍼스는 참가 대학생 모집 홍보물에서 ‘지난 기수 참가자가 문화기획 기업에 취업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창조캠퍼스에 참가한 김모(남·24) 씨는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이 취업했다는 사실을 홍보한다는 것 자체가 정부도 ‘창업’과 ‘창직’을 ‘취업에 도움되는 스펙’ 정도로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부 대학생에게 창업은 단순한 스펙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 관계자는 “창조캠퍼스의 취지는 청년창업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에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것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올해 4월 한 정부기관이 주최한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한 윤모(여·25) 씨는 “상금이 커서 지원했다”면서 “공모전 게시판에 팀원 모집 글을 올리고, 수상에 필요한 임무에 맞게 전략적으로 팀원을 모집했다. 해당 대회의 심사기준이나 평가 항목에 맞게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창업의지를 갖고 창업경진대회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기회를 뺏기고 있다. 창업에 도전 중인 대학생 주모(남·26) 씨는 “최근 늘어난 정부 지원에 대해 “여기저기서 돈을 주고 판을 벌리니, 돈 좀 받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에 지원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면서 “지원만 늘릴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 선발과 검증 과정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컨설팅 기업 임팩트스퀘어의 도현명 대표도 “최근 창업경진대회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면서 “그러다 보니 상금을 받으려고, 혹은 이력서 한 줄 때문에 출전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뭐? 재미 삼아… ‘먹튀 청년창업’

    지난해 9월 정부가 주최한 창업대회에서 한 대학생이 상을 받고 있다.

    반면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팀들은 도리어 창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모(남·23) 씨는 “창업경진대회 대부분이 정부 주도의 사업 지원인 데다, 형식적인 멘토링 외에는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수상 이후 창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수상 팀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해줬으면 하는데, 현재 정부사업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수상 팀에 대한 후속 관리나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문은 청년창업 활성화보다 청년창업 생태계”라면서 “청년창업가들이 사회 경험이 부족한 만큼 창업 이후 이들에 대한 멘토링과 컨설팅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청년창업 생태계 조성 시급

    임채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정부지원 정책이 창업 활성화 부문에만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 창업 이후의 성장 단계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양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청년창업 지원 사업의 부처 간 협력은 잘되고 있지만 프로세스 간 연계가 원활치 않다”면서 “돈만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업화 지원, 창업 이후 멘토링 및 지원 사업 간 연계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상금을 받고 실제 창업하지 않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창업경진대회는 말 그대로 대회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했다고 모두가 사업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보다는 창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창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구실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금 몇백만 원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아이디어를 보고 엔젤(투자자)이나 벤처캐피털이 투자하는 식으로 민간이 협력해야 하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다시 엔젤(투자자)로 들어오는 식으로 돌아가는 청년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아직 창업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창업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강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은 것과 실제 창업은 거리가 멀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지자체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이후 3년째 창업에 도전 중인 박모(남·28) 씨는 “상을 받긴 했지만 별 효용성이 없고 사업화가 안 된다”면서 “심사위원이나 멘토가 뽑는 방식보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소비자들의 반응이나 흥행도에 따라 선발하고 지원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모(남·23) 씨도 “단적인 예로,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수십 장의 정부제출용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그걸 들고 가면 벤처캐피털(VC)들은 웃는다”면서 “정부 사업에 잘 참가하는 사람과 실제 사업을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멘토만 봐도 실제 창업해본 사람이 아니라 교수, 유명인, 일반 기업 사원들”이라며 “솔직히 멘토링 받는 내용들이 의미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이론적인 내용이나 재무제표 쓰는 방식만 알려주는 멘토링이 대다수라는 것.

    대회에서 수상한 이후 청년창업을 이어오는 한모(여·28) 씨도 “수상 후 제일 큰 문제는 그 시장과 현장을 모른다는 것”이라면서 “이럴 때 해당 시장에 이미 진입한 기업주나 실무자에게 조언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되는 만큼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현장 멘토링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0년 한 창업대회에서 수상해 청년창업에 성공한 김모 씨는 “대회 기간이나 수상 이후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년창업 자금이 새는 것을 막으려면 돈만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또 면접심사를 강화해 창업의지가 낮은 지원자들을 미리 걸러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지원기관들도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사업 창업경진대회’는 올해부터 심사기준을 ‘창업의지와 실제 창업전략, 세부 실행 계획’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강화했다. 대회 참가자 모집도 ‘실제 창업을 전제로 창업의지가 확고한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공지했으며, 상금 90%를 창업용도로 쓰도록 제한했다. 단순히 상금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면접 강화 등 옥석 가려야

    김정훈 한국관광공사 자원개발팀 대리는 “올해 창업경진대회는 100% 창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본선 통과작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심사를 벤처캐피털에서 진행해 최종 상금 대상자와 상금을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투자자 관점에서 수익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최종심사에는 벤처캐피털 등 투자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면서 “실제 창업에 대한 준비와 고민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응모했다면 최종심사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청년창업 1000프로젝트’는 상금 대신 매달 최대 100만 원씩 1년간 총 1200만 원의 현금과 사무실을 지원하며, 서울시 강남청년창업센터는 ‘중간 퇴출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규중 강남청년창업센터 매니저는 “월 60시간 이상 사무실 출근, 4시간 이상 창업교육 수강, 월 2회 창업활동보고서 제출 등 이수해야 할 시간과 요구 조건 등을 제시하고, 창업과 관련한 사유 없이 이 조건을 어길 경우 지원을 끊는다”고 말했다. 또 돈을 타내려고 명의만 빌려준 사람이 교육에 대리 출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창업센터 정문에 CCTV를 설치하고, 바코드를 부착한 출입카드로 출석까지 확인하고 있다.

    예비 청년창업가 스스로 창업의지를 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는 “창업경진대회는 창업을 결심하고 스스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기 위한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재미나 상금 수상을 목적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이들 때문에 창업의지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지원받을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클 것”이라 말했다.

    청년 창업 모범 사례Ⅰ딜라이트 김정현 대표

    작은 동아리와 봉사활동에서 출발… 20억 원대 연매출 올려


    ‘딜라이트’는 소외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수요자를 위해 고가의 보청기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청기 지원금액 34만 원에 맞춰 제작, 판매하는 회사다. 이 같은 사실이 보청기 구매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 설립 첫해인 2010년 12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 매출 20억 원대에 이어 올해는 50억 원대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딜라이트에서 일하는 임직원 5명 가운데 3명은 작은 동아리에 모여 처음부터 딜라이트 창업을 이끌어온 대학생이다. 특히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에 입학한 김정현(26·가톨릭대 경영학과 4학년) 대표는 대학생활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외국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은 물론, 평소 봉사활동으로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도왔다. 그러다 “2009년 경로당 봉사활동 중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들이 150만~200만 원이나 하는 보청기를 사야 하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2009년 4월 중소기업청에 저가보청기사업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보청기 기술력 확보를 위해 연세대 의료기기연구센터와 손을 잡았다. 김 대표는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온 500만 원을 바탕으로 기관 투자 등을 받아 자본금 10억 원으로 사업 토대를 다졌다. 보청기를 자체 기술로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첫 모델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다. 외국 기업이 독점하던 한국 보청기업계에 이변이 일어났다. 2010년 딜라이트를 설립해 시중 보청기와 동일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것이다.

    그는 창업 비결에 대해 “대학 입학 전후로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면서 “기업으로 이윤을 얻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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