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6

2012.07.16

조국은 잊지 않는다

미국 JPAC, 지구 끝까지 실종 미군 유해발굴 작업

  • 윤상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sh1005@donga.com

    입력2012-07-16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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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으려고 세계 어디든 찾아간다. 그들이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 유해를 찾을 확률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었을 자국민의 간절한 기다림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군과 사정이 좀 다르지만, 전쟁 피해자이자 낯선 땅에 강제로 끌려가 희생됐다는 점에서 조국의 품이 더 그리웠을 것이다.

    조국은 잊지 않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oint Prisoners of war, Missing in Acti on Accounting Command·JPAC)가 내건 구호들이다.

    2003년 10월 미국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 안에 창설한 JPAC의 임무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구호처럼 JPAC은 단 한 명의 실종자를 찾으려고 세계 어디든 달려간다. 적진에 포로로 붙잡힌 미군이 ‘언젠가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믿는 원천이 바로 JPAC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부터 북한에서도 발굴 작업

    JPAC의 전신은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1973년 창설한 미 육군 중앙신원확인연구소(CILHI)다. 이 연구소는 보르네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미 공군 전투조종사들의 유해 확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발굴 임무에 주력했다. 이후 사령부 조직을 확대 개편해 2003년 10월 1일 JPAC 사령부로 명칭을 바꿨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고향으로 귀환시키는 국가적 작업을 거의 40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적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미군이 8만3000여 명, 그중 6·25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은 8000여 명으로 추산한다.

    JPAC 사령관은 현역 육군 소장이 맡는다. 미 국방부와 육·해·공군 관계자, 민간 전문가 등 450여 명으로 이뤄진 18개 발굴팀은 미군 전사 실종자의 유해를 찾아 매년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세계 각지를 샅샅이 훑는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JPAC 유해감식연구센터에는 석박사급 연구원 수십 명이 있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감식 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JPAC은 또 세계 각국에 흩어진 미군 유해를 찾아내려고 태국, 베트남, 라오스, 유럽, 파푸아뉴기니 등에 분소를 운영하고 있다.

    JPAC의 활동은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국방부 자료와 관련 사료를 검토해 미군의 전사 및 실종 경위와 그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고고학자와 군 전문요원이 현장에 투입돼 발굴 작업에 착수한다. 발굴팀은 대위나 소령을 단장으로 시신검안 전문가와 폭발물 해체 전문가, 통역관, 발굴 현황 기록관, 의사 등 10~14명으로 구성된다. 발굴한 유해와 유품은 하와이에 있는 JPAC 사령부로 옮겨져 인류학자가 주축이 된 감식팀의 신원 확인을 거친다.

    JPAC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JPAC 요원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는 발굴 작업의 성과와 진척 내용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최근엔 라오스에서 베트남전쟁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불가리아와 벨기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락한 전투기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아울러 6월엔 JPAC 요원들이 미국 알래스카 남부 앵커리지 인근의 빙하에서 60년 전 추락한 군용수송기 잔해와 탑승객의 뼛조각 일부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

    JPAC의 주요 조사 지역으로 북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JPAC을 창설하기 전인 1995년부터 북한에 들어가 1951년 1·4 후퇴 직전 중공군과의 격전지였던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주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미국은 2005년 5월 작업을 중단할 때까지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400여 구 유해를 옮겨오는 대가로 북측에 2800만 달러(약 330억 원)를 지불했다. 이 작업에는 북한군도 참여했다. 북핵 사태로 북미관계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미군 유해를 단 한 구라도 더 송환하려고 막후에서 노력했던 것이다.

    “미국을 떠받치는 강력한 힘”

    조국은 잊지 않는다

    지난 6월 JPAC 소속 수중탐사 요원이 베트남전쟁 당시 바다로 추락한 조종사 유해를 수색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왼쪽). JPAC 발굴 요원들이 5월 베트남 현지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5월에 북한 지역에서 발굴한 국군 용사 12명의 유해가 62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도 JPAC이 북한 지역에서 조사 작업을 벌인 덕분이다. 이 유해는 당초 미국이 북한의 장진호전투 지역에서 발굴한 미군 유해에 섞여 하와이 JPAC 본부로 옮겨졌다. 이후 유전자 감식과정에서 아시아계로 확인되자 JPAC이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통보했다. 유해의 치아 상태, 치아 보철과 함께 발견된 인식표 등을 토대로 한국군 전사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국 담당자가 서울과 하와이를 오가며 추가 조사를 벌여 한국군 전사자들의 유해라고 결론 내렸다. 추가 정밀 감식작업을 통해 최종 신원이 확인되면서 유족까지 찾아냈다.

    한편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담에서 미군 유해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올해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발굴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앞서 2008년 5월엔 JPAC 요원들이 서울 여의도 밤섬 주변 한강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이 지역에 추락한 F-7F 타이거캣 전투기 조종사와 레이더 관제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JPAC의 수중조사팀원은 수중음파탐지기(SONAR)와 금속탐지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동원해 약 한 달간 한강 밑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6·25전쟁 이후 한강은 여러 차례 대홍수를 겪었고, 1980년대에는 대규모 종합개발사업과 준설 작업을 한 터라 미군 유해를 찾을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으로 예견됐다. 실제로 수색 결과 유해나 기체 잔해 등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JPAC 관계자는 “조국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수색하는 데 확률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최소한 탐사 대상 지역을 좁힐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JPAC은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국방부는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3년 시한의 유해발굴사업에 착수했다. 이후 사업 지속 추진이 결정되면서 육군본부 내 전담조직이 편성됐고, 유해발굴사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아지면서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공식 창설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가에 헌신한 영웅들을 끝까지 챙기는 JPAC의 노력이야말로 미국을 떠받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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