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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넥센, 이유 있는 반란

가장 먼저 20승 프로야구 흥행 선도…영화 ‘머니볼’ 같은 신화창조

  • 김도헌 스포츠동아기자 dohoney@donga.com

거센 넥센, 이유 있는 반란

거센 넥센, 이유 있는 반란

5월 23일 LG와의 경기에서 5타수 4안타 4타점을 기록한 넥센 4번 타자 박병호(왼쪽)와 이장석 대표(오른쪽).

‘가난한 구단’ ‘변두리 구단’, 심하게는 ‘한국 야구판을 망치는 구단’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던 넥센 히어로즈가 2012년 프로야구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20승 고지에 올라섰고, 어느 해보다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줄곧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2008년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이다.

넥센의 선전은 관중 동원에도 영향을 미쳐 프로야구 흥행에도 큰 힘을 보태고 있다. 8개 구단 가운데 홈 평균 관중 수가 꼴찌(6688명)였던 지난해와 달리, 5월 25~27일 한화와의 주말 3연전이 모두 매진을 기록하는 등 올 시즌 홈 목동구장 평균 관중 수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사실 넥센은 창단 때부터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올 시즌 넥센의 돌풍은 더 의미 있는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2007년 시즌이 끝나고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 경영난으로 해체 의사를 밝히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나서서 농협중앙회, STX, KT 등에 인수를 제안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결국 이름도 생소한 투자전문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이장석 대표가 현대의 새 주인이 됐다. 당시 이 대표는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때 내놓은 400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0억 원에 현대를 차지하고 서울 연고권까지 얻었다. 그때만 해도 야구단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대표에 대한 야구계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가 곧 야구단에서 이윤을 남기고 떠날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실제로 창단 초기 넥센 안팎에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넥센의 가입금 분납 요구 및 연체, 담배업체와의 메인 스폰서 계약, 비상식적인 연봉 삭감 등이 이어진 것. 2009년 말부터는 이택근, 장원삼, 이현승 등 간판 투수와 타자를 상대 팀에 내주는 ‘현금 장사’를 하기도 했다. 2010년 황재균과 고원준을 롯데에 내주고, 지난해에는 송신영 등을 LG로 넘겨주며 “간판선수를 팔아 연명한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 무렵 이 대표는 ‘야구판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공공의 적’에서 ‘빌리 장석’으로



그런데 지난겨울부터 이 대표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2009년 말 LG에 넘겨줬던 이택근이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리자 4년간 총액 50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다시 불러들이는 등 공격적 투자로 방향을 튼 덕분이다. 수년간 끈질기게 접촉한 끝에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핵잠수함’ 김병현을 총액 16억 원(계약금 10억 원+연봉 5억 원+옵션 1억 원)에 입단시킨 것도 이 대표와 넥센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넥센은 창단 첫해인 2008년 페넌트레이스에서 7위를 하고, 이듬해엔 6위, 2010년엔 다시 7위를 했다. 지난해엔 51승2무80패 승률 0.389로 처음 꼴찌를 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김시진 감독과 소통을 계속하며 기존 선수를 육성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다. 이것이 올 시즌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창단 초기 “5년째 되는 2012년부터는 성적이나 구단 운영에서 결과를 도출해낼 것”이라고 했던 이 대표의 말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송신영을 내주고 LG에서 데려온 박병호가 ‘만년 유망주’ 타이틀을 버리고 4번 타자로 성장한 것은 넥센식 선수단 운영의 단적인 성공 사례다. 3번 이택근, 4번 박병호, 5번 강정호로 이어지는 막강 클린업 트리오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다.

넥센이 선전하면서 이 대표 별명도 어느 순간 ‘공공의 적’에서 ‘빌리 장석’으로 바뀌었다. ‘빌리 장석’은 야구계 스티브 잡스로 통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빈 단장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머니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팀 살림살이를 챙기고 장기 비전을 제시했다면 현장 사령탑인 김시진 감독은 인내와 땀으로 선수단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2009년 넥센 지휘봉을 잡았다. 창단 첫해 이광환 감독 체제로 신고식을 치른 이 대표는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사령탑이던 김 감독에게 손을 내밀어 3년 계약을 맺었다.

김 감독은 ‘가난한 구단’의 사령탑으로서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주축 선수들이 잇따라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이 대표의 진정성을 믿고 남은 선수들로 팀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 감독의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은 지난해 3월, 이 대표는 김 감독에게 3년 재계약을 제시해 2014년까지 그의 임기를 보장했다.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팀을 이끌도록 한 것이다.

‘최저 연봉’ ‘신고선수 출신’ 활약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100승을 달성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김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투수코치 시절 김수경, 조용준, 이동학, 오재영 등 4명의 신인왕 투수를 조련했다. 누구보다 화려한 길을 걸었지만 주전보다 백업 선수에게 더 눈길을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수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감화하는 인간미 있는 지도자다. 질책보다 격려로 현재의 팀을 만들었다. 그에게 ‘어머니 리더십’ ‘맏형 리더십’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팀 성적이 바닥을 기었음에도 그는 선수들에게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얘기하며 미래를 준비하도록 단련시켰다.

김 감독은 “넥센은 기회의 팀”이라면서 “그 기회는 열심히 하는 선수라면 누구든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영민과 장효훈 등 이름도 낯선 선수들이 마운드 중심으로 자리잡고, 데뷔 16년차 최저 연봉(4200만 원) 선수인 정수성과 신고선수(연습생) 출신으로 군에서 막 제대한 서건창이 주전 멤버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 이게 바로 넥센의 저력이다.

프로야구단을 대부분 재벌그룹이 소유한 상황에서 넥센은 태생적으로 주류가 되기 힘든 존재다. 그러나 모기업의 지원 없이도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만으로도 넥센은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넥센은 지난해 처음 손익분기점을 맞췄고, 올해는 성적과 관중 동원 모두 기존 구단을 위협한다. 이 대표는 창단 초기부터 “2013년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넥센의 반란은 ‘2013년 우승’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넥센이 히어로가 되는 야구 세상’, 이 대표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간동아 2012.06.11 841호 (p56~57)

김도헌 스포츠동아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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