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2012.06.11

레임덕은 없다

14회 다 놓으면 더 얻는다

  • 입력2012-06-11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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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국무총리, 조순형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는 이명박의 위상을 돋보이게하 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세우리당과 자유선진당의 합당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 12월 5일 세우리당으로 통합되었다. 당명을 ‘자유세우리’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트위터에서 ‘자유딸딸이’가 낫다는 어떤 놈의 글이 올라오고 나서 대번에 그냥 세우리당으로 통일했다. 2008년 12월 6일, 청와대 비서실장 조순형이 국무총리 이회창에게 전화를 한다. 오전 10시 정각이다.

    “총재님, 접니다.”

    조순형의 인사를 이회창이 웃음 띤 목소리로 받는다.

    “조 실장, 나 총재 그만두고 이젠 총리요.”

    “어이구, 실례했습니다.”



    조순형의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실렸다. 둘은 1935년생 동갑으로 향년 74세. 생일은 조순형이 3월 10일이니 6월 2일인 이회창보다 석 달 빠르다. 이회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 무슨 일이시오?”

    “총리님, 거기 공직윤리비서관실 있습니까?”

    정색한 조순형이 묻자 이회창이 대답했다.

    “있지요. 그런데 왜?”

    “이건 꽤 정확한 정보인데 거기에 ‘영포라인’이라는 조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회창은 입을 다물었고 조순형의 말이 이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에게 공직자 비리를 조사해서 보고하는 모양인데, 월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거 큰일날 일이군.”

    “그래서 제가 오늘자로 청와대 비서관들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그럼 나도 정리하지.”

    “대통령께 충성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해도 위험합니다.”

    “당연하지.”

    “비서실 인사는 제가 맡은 이상 가차 없이 정리하겠습니다.”

    “여긴 나한테 맡겨요.”

    그러고는 이회창이 자르듯 말한다.

    “앞으로는 어설픈 수작은 안 통해. 이 대통령이 우리한테 기대한 것이 바로 이것일 테니까. 대업(大業)을 망치면 안 된단 말요.”

    같은 생각이었으므로 조순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업이란 말이 조금 걸렸다. 이회창과 대업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2008년 7월 11일 발생한 박왕자 씨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무기한 중지되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이른 아침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다가 북한 경비병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이다.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는 7월 12일부터 금강산 관광을 중지했다.

    그리고 지금은 휴전선에서 대북방송이 쾅쾅 터지는 상황이다. 야당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10년 동안 구축해놓은 남북 간 신뢰와 평화공존 기반을 이명박 정권이 단숨에 깨뜨렸다고 비난했지만 여론의 호응은 미미했다. 국민은 김대중 정권 때 월드컵 분위기가 고조된 순간에 기습해온 제2차 연평해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2월 8일, 오전 10시. 청와대 정무회의가 진행 중이다. 정무회의에는 대통령과 비서실장, 그리고 해당 수석이 참석하는데 오늘은 외교안보 회의다. 외교안보수석 김성환이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

    “북한 측은 대통령 특사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그 대신 대남 비방 수준이 과격해졌고 전쟁을 불사한다는 표현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 순간 이명박의 앞에 켜놓은 컴퓨터 화면에 자료가 죽 떴다. 일목요연하게, 그것도 색깔별로 짙고 연하게 표시돼 있어 눈에 쏙 들어온다. 이명박이 머리를 들고 김성환을 보았다.

    “지금 누구 길들이려고 하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소?”

    김성환이 눈만 껌벅이고 있을 때 비서실장 조순형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떼를 쓸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나주었더니 대한민국을 호구로 본 것입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조순형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는 의연하게 계시면 됩니다. 남북회담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면 북쪽에서는 우리를 갖고 놀았으니까요. 이번에는 우리가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이명박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어디, 한번 기다려봅시다.”

    그러자 굳어졌던 분위기가 풀렸다. 지금까지 비서실장이 이렇게 가르치는 것처럼 대통령한테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조순형이 이명박보다 여섯 살 연상이기도 하다.

    # 회의가 끝났을 때 서류를 챙기는 조순형에게 이명박이 일어서며 말했다.

    “조 실장, 저 좀 봅시다.”

    “예, 대통령님.”

    몸을 세운 조순형에게 이명박이 정색한 얼굴로 묻는다.

    “저기, 민정수석실 비서관 셋하고 기획조정실 비서관, 인사비서관하고 정무비서관까지 비서관 여섯 명의 해임 결재를 올리셨던데. 행정관 14명하고 말이오.”

    그 순간 어수선하던 장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비디오 스톱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제각기 몸을 굳히고 있다. 박재완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채 멈췄고, 김성환은 이쪽에 시선을 준 채 입이 딱 벌어져 있다. 가관인 것은 민정수석 이종찬이다. 자신의 비서관 세 명의 해임 결재가 올라갔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다 굳어졌다. 그때 조순형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예, 대통령님. 모두 충신이고 공신입니다만 ‘영포라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파당색이 강합니다. 국무총리 직속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영포라인 그룹과 함께 공직자 사찰을 맡고 있는데 월권할 우려가 높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제 권한으로 해직 결재를 올린 것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정확했고 군소리 하나 끼어 있지 않다. 조용한 회의실에 다시 조순형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국무총리도 지원관실의 영포라인 그룹을 해임할 것입니다.”

    “허어.”

    이명박이 한숨과도 같은 신음을 뱉었으므로 모두 숨을 삼켰다. 김성환은 입안에 괸 침을 삼켰는데 물 한 컵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내 수족을 다 자르는구먼, 비서실장이.”

    “진정한 수족이라면 대통령을 위하여 그것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님.”

    “억울하지 않을까요?”

    “대가를 바라고 일했다면 진정한 심복이 아닙니다. 줄 것이 없으면 돌아설 사람들이니까요.”

    “비서실장한테 맡기겠습니다.”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발을 떼면서 말을 잇는다.

    “내 임기 끝나고 다시 만나보기로 하지요.”

    김성환과 박재완, 이동관은 이명박의 등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인간들이다. 대통령이 회의석상을 빌려 비서실장 조순형에게 영포라인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모두 아는 것이다. 일부러 그 이야기를 꺼내 조순형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했다. 머리를 돌린 이동관은 조순형의 두 눈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얼굴도 상기되어 있다. 조금 전 장면은 조순형과 공동 제작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조순형이 감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북한 관련 수석회의를 한 다음 날 북한 측이 군 실무자 회의를 제의해온 것이다. 군 실무자 회의란 남북 간 대령급을 단장으로 한, 말 그대로 실무회의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나 개성공단 관련 문제 등 자잘한 사건에 대비해 직통전화까지 개설돼 있었지만 효율적이지 못했다. 군 당국자 말마따나 북한 측이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회의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요청하면 응답도 안 하다가 저희들이 필요할 때는 불쑥 연락을 해온다. 물론 그때마다 한국 측이 받아줬기 때문에 그런 버릇이 들었을 것이다. 국방부 장관 이상희가 보고했다.

    “지난 7월 박왕자 씨 사건으로 군 실무자 회의를 제의했는데, 지금까지 연락도 없다가 제의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요구한 대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려는 거요?”

    하고 이명박이 묻자 이상희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님.”

    청와대 회의실에는 안보담당 장관이 모두 모여 있다. 이명박의 시선이 행정안전부 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김성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아무도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윽고 이명박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대로 나가면 안 돼.”

    # 다음 날 오후, 보병 제2사단 17연대장 조태수 대령이 국방부 장관 집무실로 들어선다. 조태수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연대에서 연대 산악훈련을 시찰하다 난데없는 장관의 호출을 받은 것이다. 오전 10시에 호출을 받고 그야말로 좆 빠지게 달려왔다. 오면서 머리가 터지도록 장관이 호출한 이유를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다. 조태수는 이제 대령 2년차지만 육사 동기 중에서 별을 딴 놈이 다섯이나 된다. 조태수는 중령 때 사고를 일으켜 대령 딴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중령 10년 만에 진급한 것이다.

    “충성!”

    들어서자마자 벽력같은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올려붙였던 조태수의 시선이 국방부 장관 이상희에서 그 옆으로 옮겨졌다. 그 순간 조태수는 얼어붙었다. 전두환이다. 전두환이 옆쪽 의자에 웅크리듯 앉아 있는 것이다. 전통이 웬일인가?

    “어, 거기 앉아.”

    하고 이상희가 말했으므로 그때서야 조태수가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옆쪽 소파 귀퉁이에 엉덩이의 반만 걸치고 앉는다. 그때 이상희가 전두환을 보았다.

    “원로께서 말씀하시지요.”

    그러자 전두환이 헛기침부터 했다. 전두환과 시선이 부딪쳤으므로 조태수는 숨을 들이켰다. 조태수에게는 전두환이 군인이었다. 박정희도 군 출신 대통령이지만 그는 정치인 같다. 그때 전두환이 물었다.

    “네가 중령 때 선배 대령을 팼냐?”

    “예, 각하.”

    얼떨결에 각하라고 해버렸다. 그러자 전두환이 입맛을 다셨다.

    “그 대령 놈이 정훈교육 때 북한의 주적 지칭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면서?”

    “예, 각하.”

    “그래서 진급이 4년이나 밀렸구나. 그렇지?”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멋쩍었으므로 조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김대중 정권 초기였으니 선배들이 덮어주지 않았다면 그때 끝났을 것이다. 다시 전두환이 말을 잇는다.

    “네가 할 일이 있다. 듣느냐?”

    “예, 각하.”

    “너, 모레 남북 간 군사 실무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가라.”

    “예, 각하.”

    “실무 지시는 여기 장관한테 듣고, 내가 널 고른 이유는…”

    심호흡을 한 전두환이 똑바로 조태수를 보았다.

    “한국 장교의 기백을 그 새끼들한테 보여 주라는 것이다. 가만두었더니 너희를 아주 졸로 보고 있지 않느냐?”

    조태수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심호흡을 했다. 이제야 자신의 용도를 안 것이다.

    #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首長)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국무회의는 총리 공관에서 열렸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앞으로 국무회의는 총리 주재로 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회의실 밖에는 기자들로 가득 차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은 조금 늦게 왔다가 기자들에게 포위되어 5분이나 늦게 회의실에 들어왔다. 회의실 문이 안에서 잠겼을 때 이회창이 장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요즘 대통령님 생각을 많이 하는데.”

    장관들이 긴장했으므로 이회창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마침내 결론을 얻었어요. 그것은 많이 버릴수록 많이 얻는다는 것이오.”

    어색한 듯 입맛을 다신 이회창이 말을 잇는다.

    “이를테면 권한과 명예, 또는 욕심까지 털어 내놓으면 더 큰 것이 오는 것 같습디다.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더니 헛기침을 하고 정색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시는데 우리가 따르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자, 일합시다.”

    # “씨발, 깝깝하구먼.”

    ‘세종시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 양상문이 잇새로 투덜거렸다. 을지로 뒷골목에 자리한 사무실에는 양상문과 고문 명함을 갖고 다니는 유영복 둘이 앉아 있다. 시간당 4000원씩 받고 ‘알바’로 일하는 미스 김이 인쇄소에 심부름을 갔기 때문이다.

    세종시건설추진위원회는 민간단체다. 아직 정부에서 공식 기구가 발족하지 않은 터라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의 지원을 받아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으로 20평 규모의 낡은 건물에 사무실을 차려놓았다. 물론 양상문과 유영복은 자유선진당 당원이며 각각 군의원과 시의원으로 한 번씩 일해본 경력이 있다. 둘은 연기군과 공주시를 대표해 서울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해당 지역의 대리인 임무를 맡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무보수인 데다 서울 상황에 압도당해서 두 달 동안 명함도 제대로 못 뿌리고 있다. 유영복이 입맛을 다시고 나서 말을 받는다.

    “네미, 광우병 소동으로 정신을 못 차리다 세우리당, 종교세 국민투표, 세대결연, 10월유신에다 이제는 이회창이 총리가 되었어. 이렇게 정신없이 휘몰아가는 통에 세종시 이야기를 꺼낼 틈이 있었나, 어디?”

    “이젠 세종시 문제가 튀어나올 때가 되었는데 말야.”

    양상문이 한 장밖에 남지 않은 12월 달력에 시선을 주고 나서 말을 잇는다.

    “이 총재가 총리가 되고 조순형이 비서실장이 되었으니 충청도가 힘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녀?”

    “글쎄, 그것이.”

    50대 중반으로 양상문과 비슷한 연배지만 유영복은 세파를 더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 부정적이다. 유영복이 말을 이었다.

    “이 총재, 조순형이 이명박의 손바닥 안에 잡힌 꼴이 된 것 아니겠어? 그러니 세종시 문제를 대놓고 밀어붙이기가 더 곤란해질 가능성도 있다구.”

    “아니, 그렇다고 우리를 배신할 건가? 이명박이도 세종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말 뒤집지는 못해.”

    “두고 보자고.”

    이번에도 둘의 대화는 이렇게 결론 없이 끝났다. 갑론을박하면서 일희일비하지만 아직까지 세종시 건설은 급박한 문제는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때 추진한 일인 데다 그때부터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지금도 논란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선 때 세종시 건설을 재확인해주었다. 둘은 그것에 의지하고 있다. 다른 건 다 소용없다. 확인서, 보증서 백 장 있어도 대통령 한마디면 다 깨진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 그렇다. 그때 양상문이 말했다.

    “지금 이명박이 기세라면 세종시는 물론 대운하를 파도 언놈도 반대하지 못할 거여.”

    맞는 말이었으므로 유영복은 입을 다물었다. 둘은 세종시를 위해 지난 대선 때 정동영을 찍었다. 정동영이 노무현의 계승자였기 때문이다.

    # 조태수는 특전사 중령 때 대령을 팼다. 그러고는 천신만고 끝에 대령을 달고 일반 보병사단 연대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조태수는 특전사용 검정 베레모를 썼다. 작업복에 대령 계급장만 붙이고 나타났더니 뒤를 따르는 제복 차림의 부대표 두 중령이 대표 같았다.

    오늘은 언론사 기자가 100명 가까이 따라 붙었다. 박왕자 사건 이후로 금강산 관광이 중지된 지 만 5개월이 된 것이다. 북한 측이 사과를 할 것인지, 아니면 대북방송을 다시 시작한 것에 항의를 할 것인지 언론은 갖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추측이나 진단이 틀려도 눈곱만큼의 책임도 지지 않는 대학교수들이 TV에 나와 또 떠들었다. 남북관계 개선, 사과, 항의 등의 말잔치가 벌어진 후라 국민은 식상한 채로 TV를 응시한다. 판문점의 테이블에 양측 대표단이 인사를 마치고는 마주 보고 앉는다. 그때 북한 측 대표 강인철 대좌가 똑바로 조태수를 응시하며 말했다.

    “대북방송을 당장 중지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즉시 대북방송을 중지하고 사과성명을 발표해주시오.”

    조태수는 눈만 껌벅인 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강인철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오. 위대한 공화국 군대는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이것은 최후통첩이오. 대북방송을 중지하고 사과할 것, 아시겠소?”

    그러고는 강인철이 어깨를 부풀린 자세로 조태수를 노려보았다. 강인철은 이번까지 네 차례 군사회담 대표로 나왔다. 그리고 지난 세 차례는 이와 비슷한 분위기로 남측을 압도했다. 세 차례 다 대표가 달랐지만 두 놈은 일그러진 웃음을 띤 채 슬슬 비켜갔고 한 놈은 놀라서 목소리까지 떨었다. 그놈은 팬티에 오줌을 싼 것 같다고들 했다. 그때 강인철의 시선을 잡은 채 조태수가 말했다.

    “양아치 새끼가 드럽게 지랄허고 자빠졌네, 씨벌놈.”

    강인철은 2초쯤 가만히 있었다. 한국말이라도 전혀 예상 밖의 단어가 나오면 ‘뻥’ 하는 것이다. 그때 조태수가 말을 잇는다.

    “야, 이 씨벌놈아. 인민군 키가 160도 안 된다며? 그 좆만한 놈들을 데리고 무슨 전쟁을 한다는 거여?”

    그러고는 어깨를 부풀리며 마무리를 했다.

    “너, 여기서 펄펄 뛰었다가는 내가 대번에 뛰어 일어나 패 쥑여버리겠어. 그러니까 잠자코 앉아 있다가 꺼져, 씨벌놈아.”

    말이 끝나자마자 조태수가 벌떡 일어서자 강인철의 상반신이 조금 뒤로 젖혀졌다. 그래서 말대꾸할 타이밍도 놓쳤다.

    레임덕은 없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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